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와 김희경의 그림책
우연하게 서점에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하나 사게 되었다. 어린이 그림책이라는 분야를 사실 조금 우습게 보던 나의 편견은 이 책을 보고 난 후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었다. 나는 <마음의 집>이라는 책을 들고 아래위로 펼쳐보며 또한 이것이 '책에 대한 책'이라는 것에 놀랐다. 삽화를 반듯이 펼치면 하나의 그림이지만, 접어서 천천히 열어 직각으로 세우면 어느새 사물은 동작을 취하는 놀라는 공간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삽화 가운데에 새겨진 김희경 작가의 글자는 일종의 설명과 이야기임과 동시에 또 하나의 시각적 체험이자 시가 된다. 책을 펼치고 열어 보아야 그림을 통해 온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접근이야 말로, 디지털로 전해지는 감각적 정보와 선을 긋는 얼마나 참신한 발상인가.
한국의 작가 김희경이 ‘사람의 온도’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생각을 폴란드 출신의 아동 일러스트 작가인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와 만나서 ‘불꽃같은 생각들’을 나눈 뒤에 만든 책이 ‘마음의 집’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권위의 이탈리아 볼로냐 도서 페스티벌에서 한국 서적으로는 처음 대상을 수상한다. 이미 유럽에서 독창적이며 풍요로운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인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세계는 폴란드 아동 일러스트의 전통과 함께 유명한 상태이다. 아동 일러스트 분야의 세계적 수준을 다시 한번 눈여겨보게 된다. 흐미엘레프스키는 이 분야에서는 이미 유명한 작가이며 한국에도 여러 번 다녀 갔다고 한다.
<마음의 집>은 각각 다른 공간과 다른 동작을 취하고 있으나 열리고 닫히고 반사되며 들기도 나기도 한다. 거울에 비친 것, 대칭되는 것, 대비되는 것들을 우리는 품고 안으며 나름의 온도와 공기를 만들어 낸다. 나는 이 흐미엘레프스키가 이미지와 형상에 대해 지닌 독특한 공간적 인식을 감명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채워진 의미, 모든 것이 나누어진 경계, 그리고 움직일 수 없는 그림! (혹은 구도)에 대한 강박적인 엄숙함을 지니고 살고 있지는 않을까. 특별히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공기가 들고날 여유가 있는 그녀의 조형적 자유로움은 다양한 차원으로 펼쳐지며 생각과 마음이 만나는 공간이 된다.
기호와 상징, 상상과 사실감, 또는 글자가 주는 의미의 강박을 천천히 허물고 있는 그녀의 일러스트는 사람과 아이의 상태에 대한 깊은 교감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실지로 흐미엘레프스키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집안의 낡은 종이와 폐품을 찍어서 붙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음 정말 잡지사에서 좋아할 만한 이야기이다?) 특별히 옷감의 질감이 두드러지는 터치는 그녀가 어릴 적 경험했던 할머니가 다녔던 섬유공장에서의 노동과 삶이 묻어난 결과이다.
사람의 온도는 헤아림이나 소망, 혹은 원형적 토속성이라는 감성의 미덕을 잊어버린 채 살고 있는,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이나 꿈에서 가장 잘 되찾을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일은 우연이나 기획적으로 통제된 산물이 아니라, 무언가 보고 반응하며 마음의 집을 들고 나는 마음의 공기로 설명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공간과 출입구에 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겹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엇이든 상상과 놀이의 산물이었던 어린 시절에 글자와 물건은 흥미를 구체화하는 교감의 도구였다. 그것들은 조합이 되고 새로움을 일깨웠으며 사람을 만나게 했다. 물건들이 비로소 흥미로움을 일깨워 세상과 누군가의 온도를 나타내는 매개가 되었는 시기는 극히 짧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그림책을 작업하면서 사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요, 아주 익숙한 사물 뒤에도, 사람과 일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해요. 단순한 일, 일상적인 일, 매일매일 반복해야 하는 일은 시시한 일이 아니라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따뜻하게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는 이 폴란드 작가의 작지만 경쾌한 상상력은 이러한 비움, 여백을 통해 무엇보다도 우아하게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설명해 주고 있다. 사람의 온도는 무엇일까? 우리는 글자와 이미지, 기호와 공간에 대한 구분 없는 빈 여백을 통해 그 사이를 거닐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만들었던 사물들, 내가 사는 공간들과 마음이 연결과 공감의 통로라는 것을 잔잔하게 느끼게 해 준다.
세상을 단지 훔쳐보며 욕망하는 차단된 개개인의 방에 던져진 우리의 일상에서, 단지 '바라봄'이라는 조용한 행위가 때로는 헤아림이라는 무한한 공감의 감정으로 변화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한다. 끝으로 이 책은 ‘그래도 괜찮아. 다른 마음은 많아. 반드시 그 마음들이 도와줄 수 있어.’라는 말로 사람의 만남, 협력을 긍정적으로 소망하며 맺고 있다. 문학가와 그림작가의 깊은 교감의 과정을 새겨놓은 이 그림책 자체가 마음의 공간을 성공적으로 오고간 통로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