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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Apr 15. 2019

교육적 도구로서의 영상

1 영상제작의 간편함과 일상성


빅데이터와 유튜브, 네트워크 TV, 모니터가 일상적으로 우리의 주변에 머무르게 된 시대에 영상은 일종의 눈의 역할을 대신한다.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나의 내적 관심과 동기가 머물게 된다. 그곳에 내적인 애착, 즉 마음의 뿌리가 내려지게 되는 것이다. 영상을 산업적인 오락물이 되도록 내버려 둘지 아니면 하나의 표현이나 교육의 도구로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인지는 오로지 선택의 문제이다. 우리의 눈의 역할을 하는 영역에 어떠한 도덕적 가치가 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곳에는 무엇이든 담길 수 있는 그릇에 불과하다. 비평을 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 기술,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든 교육의 재료가 된다. 


이미 많은 영상물들이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적, 정보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율적인 문화 자체의 필터링 효과를 기다리기엔 그 폭과 범위가 광범위하다. 또한 개방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영상을 교육적 도구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영상과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좋은 문화는 세대 간, 문화적 분열성을 띄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인 개방성과 지각 능력을 다양하게 촉진하게 하는 교육적 성격을 띄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영상은 다가오는 변화의 시기에 지각과 감정을 함께 사용하여 교육 참여자의 성장을 유도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미디어를 사용하여 진행했던 영상 창작 프로그램을 나름 진행해보았던 경험을 참조하여 교육 도구로서의 영상의 주요한 요소들을 몇 가지로 짚어 보고자 했다.




2 자기 관찰의 단추를 끼우자


감각이 경험과 지식을 만나서 지각이 된다. 오감을 통해 우리는 마음의 상을 만들고 기억을 저장한다. 인간의 감각이 제한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은 뇌과학자들이 자주 지적하는 점이다. 우리가 기억에 저장하는 영상을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해 볼 수 있다. 영상이 현실을 자주 왜곡하거나 세밀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영상을 도구로 하여 우리의 기억을 어느 정도 객관화할 수 있는 좋은 실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상은 다양한 감각을 기술적으로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구체화를 통해서 우리는 단순히 외부세계를 관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무엇을 주목했는지에 관해 자기 관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상을 관찰하면서 스스로의 주목하고자 하는 관심들을 이해하는 경험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아를 주목하는 것이 아니다. 자아를 둘러싼 환경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경과 나 사이를 매개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이를 매개하는 마음의 렌즈, 즉 프레임이다.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에 담긴 매개적인 렌즈를 그때 확인할 수 있다. 자아의 상처는 현실세계를 만나게 하는 데에 왜곡을 발생시킨다. 즉 트라우마(균열)를 만들게 된다. 관찰자는 자신의 관심사를 관찰하고 구체화하며, 자아보다는 이를 둘러싼 외부세계를 더 주목하게 한다. 이때 기술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좋은 해결책이 되어 준다. 그러므로 영상 교육의 출발점은 일종의 마인드 셋업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3 자아는 결론을 내리는 곳이 아니라 전달의 도구이다.



자아를 분석하거나 언어로 체계화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결론을 내려줄지는 모르지만, 성장하는 아이 또는 성인에게 때로는 유용하지 못할 수 있다. 그 보다는 외부환경을 매개하는 마음의 렌즈를 부지런히 사용하는 것이 교육적 효과, 성장을 돕는 데에 더 활용가치가 높을지도 모른다. 단지 영상에만 국한된 명제는 아닐 수 있다. 거의 모든 기술적 과정을 단계적으로 숙련한다는 것에는 이러한 성장과 자기 발견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교육은 행동설계에 가깝다. 환경을 이해하거나 주목하는 데에 스스로를 매개체로 삼아 '관심'을 발견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확립하는 것은 높은 교육적 성취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자아의 개념은 현대로 올수록 지나치게 높이 과대 포장되어서 다루어진다. 영상을 통해 관심의 대상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지식의 습득이 아닌 참여자 스스로 '경험의 지도'를 꾸려보게 할 것이다. 성장의 과정에서 미디어를 체계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시도해 본다면 자아를 하나의 관찰의 도구, 혹은 전달의 메신저로서 사용하며 시야의 확장을 도모하게 된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에게 언어적, 정서적, 관찰이나 분석적 지능을 다각도로 활용하게 하여 다양한 지각 요소를 모두 활용하게 하는 효과를 유도해 낼 수 있다. 우리는 지나치게 자신의 내면의 우물로부터 해답을 끌어올릴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우리의 눈이 향하는 관심과 환경을 발견하게 함으로써 내적 동기를 이루어 낼 수 있다. 




4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요소들   

우리는 우리의 감각기관의 스크린에 맺히는 외부세계를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가 아니다. 이것이 마음이라는 렌즈에 와 닿을 때는 좀 더 복합적인 관련성을 띠고 전달된다. 참여자와 진행자는 마음이라는 프레임에 몇 가지 고려사항을 가지고 관찰의 과정으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갈 수 있다. (학기나 프로그램에 이 요소들을 A부터 E까지 단계적으로 반영하여 시차를 꾸려볼 수 있다.) 


A 첫 번째는 단연코 실제 하는 외부세계이다. 조금 더 세부적인 대상 object을 떠올릴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객관화할 수 있고 이를 개념적으로 설정하는 외부세계를 전제해야 한다




B 다음 단계는 이를 시각화하는 과정이다. 선택, 촬영, 편집, 소리 채집 모두가 이러한 시각화의 과정이다. 참여자마다 아마 관심의 대상, 포착하는 순간과 상황이 모두 다를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기 관찰의 기제가 개입됨을 알 수 있고, 참여자들을 비교하며 드러나는 차이에 관해서 주목한다면 좋을 것이다. 시각적으로 이를 채집하기 이전에 촉각, 향기, 소리, 시각 모두를 활용하는 감각에 주목할 수 있게 해 준다. 교실 바깥 모든 환경, 공간을 교육적 과정 안으로 끌어 올 수 있는 좋은 접근이다.  





C 다음 단계는 소통과 교환의 과정이다. 이는 시각화한 작품, 혹은 관찰의 결과물이 있다면 이를 전시하거나 발언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의미로 발현될 수 있다. 일종의 퍼포먼스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전략적 교환, 또는 다른 참여자를 향한 교육이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되풀이하는 것이 점차적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좀 더 유기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을 하는 훈련이 될 수 있다. (작품이 현실세계에서 기획, 전시되고 평가받는 과정도 이 교환의 과정에 속하는 것이다.)

 

 

D 내적 정화는 성장의 단계에서 성공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점인지도 모른다. 글쓰기, 기술의 단계적 성취, 관심의 발견은 모두 자기 정화라는 한 가지 성취로 귀결되는 접근들이다. 자기 정화와 내적 발현들은 외부세계에서 좌절되었던 어떤 균열(틈)을 메우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은 좀 더 내적 상태를 외부세계와 타인을 연결하는 올바른 전달의 도구로서 자신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계기로 작용될 수 있다. 천재적인 작품을 남긴 대가들이 처음에는 이를 통해 어떠한 경지에 오르는 단계를 밟아 나갔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 가장 차원이 높은 단계에서 참여자가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고유한 테마를 표현하고 전달한다면 의미 있는 미적 표현을 성취하는 것이다. 대부분 높은 평가를 받는 예술품들은 이러한 차원을 성취하고 있다. 그만의 표현법, 기술, 탁월함을 다 지니고 있다. 이러한 미디어 프로그램에서 어떤 자신 만의 고유한 방법과 탁월함을 미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도 또 하나의 성취할만한 지점이 된다.


프로그램의 시차별 구성의 예 


이것은 교육적 단계에서 각각의 지점이 충분히 고려된다면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본다. 기성의 예술교육에서 지나치게 강조되어 왔던 마지막 과정 - 미적 차원의 성취로 가면서 C, D의 과정을 간과한다면, 이는 심각한 무리를 낳게 된다. 실지로 미디어 프로그램 과정을 진행해 보면 C, D의 과정에서 대다수 참여자가 높은 만족도를 가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의 교육적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이러한 지점을 모두 고려한다는 것은 결국 글쓰기, 자기 관찰을 보다 내면화하는 교육을 진행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각각의 지점을 모두 고려하여 균형을 잡아 나가는 일이야 말로 내면의 렌즈를 닦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술 교육이 단지 기량의 성취나, 글쓰기나 표현의 내면화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내면화된 관심들이 올바르게 외부세계와 만나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상의 교육적 프로그램은 각각의 균형 잡힌 시각화를 통해 내면의 다양한 자기 관찰을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특별히 두각을 보이는 부분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5 누구에게나 고유한 #(해쉬태그)가 존재한다.  



영상의 교육적 활용은 최종적으로 나와 관련을 맺는 일상에 관한 색다른 시각이나 통합적 관점을 가지는 결과로 귀결된다. 성장해야 하는 시기의 학생이나 혹은 성인들에게 위험한 것 중의 하나는 곧잘 해답을 주는 교육, 사상에 매몰되는 것들이다. 교육이 필요한 지점은 아직은 다양한 질문이나 분별을 통해 나만의 관점을 계속적으로 지속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를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호기심을 멈추지 않는 시각이나 마음의 상태는 우리를 의외의 문제 해결의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이것이 생기를 잃지 않은 사람들,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들이 지니는 커다란 혜택이다.


영상은 즉각적인 실제성, 감각으로 인해 청소년이나 젊은 학생들에게 곧잘 대중 소비사회의 저항하기 힘든 이미지의 세례를 받게 한다. 영상은 반드시 교육적으로, 관찰자의 입장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영상이 민주적으로 외부세계의 누구와도 올바른 관련을 맺는 소통의 도구로 학습되어야 한다. 계몽적 교육의 기준을 일방향적으로 주입하기보다 영상의 교육은 자신의 내적 관심이 향하는 외부 환경과 결부될 수 있다.


문화의 강력한 힘을 떠올려 볼 때, 영상에 대한 교육적 활용은 지식의 습득 못지않게 시급한 과정이 되어야 한다. 영상을 교육적으로 활용하게 될 때에 우리는 문화의 강력한 힘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일상을 제대로 관찰하는 내적 힘을 지니게 될 수 있다. 변화의 환경에서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창의적인 호기심의 도구로써 스스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 위의 내용은 필자가 2년여 동안 (혹은 10여 년 동안 대학에서) 진행했던 <나도 아티스트 : 영상과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을 기초로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사항들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관한 문의나 진행 참여에 관한 문의는 작가 제안으로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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