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개인전 <Kryptos 3>

Conation

by Art n Money in New York

Dan Ji solo Exhibition <Kryptos 3>

Nov 22 ~ Dec 30 2023

In person Show Nov 22 ~30 2023, ART NYC Sydney (RSVP)

Online Dec 1 ~Dec 30 2023


ART NYC announces Dan Ji's 'Kryptos 3' solo exhibition in Sydney, Australia. This show will be displayed in our artist residency in Sydney. We have an online exhibition and YouTube video, too. You can enjoy the exhibition anywhere, anytime.


작가노트

<Kryptos 3>

크립토스 시리즈 세번 째는 "과거의 상념에 갇힌 단지. "이다. 태엽을 돌려야 움직이는 인형의 태엽이 멈춘것처럼, 단지는 'OUT OF ENERGY'에 이어서 이번 시리즈에서는 스스로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단지의 신체를 통해 억압과 상실 그리고 자유의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단지는 과거의 기억속으로 들어간다. 기억속에 단지는 스스로 움직이는 인형이 되기를 바랬지만 누군가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었다. 그들은 왜 인형을 조종하려 할까? 그들은 피노키오 Puppet을 여러줄에 매달아 움직이기도 하고,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을 인형에 끼워 입을 움직이게도 한다. 더 먼 옛날로 돌아 가 보니 종이인형에 나무막대기로 뒷면을 고정하여 움직이게 한 기억도 있다. 그 인형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인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기억속에 단지는 인형이 되기도 하고 인형을 조종하는 인간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근원을 찾아 과거의 기억속을 여행하던 단지는 1871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Goeoge Pemberton Clarke의 'Creeping baby' 를 발견한다. 이것은 태엽과 톱니바퀴 장치에 의해 기어다닐 수 있도록 고안된 인형이 있었다. 이것은 아기의 형상을 하고있다. 아주 단순한 움직임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기억속 단지는 혼란스럽다. 같은 시대에 비슷한 모습으로 살았던 것 같기도 한 과거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하다. '단지는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왔는가?' 단지는 떠오르는 이미지들로 머릿속이 또는 눈 앞이 복잡해 견딜 수 없다. 충전을 하고서도 메모리를 많이 써 여전히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든다. 단지는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고 현재로 돌아올 수 있을까?


단지는 하나의 단어 현재로 돌아올 수 있는 하나의 해결 키워드 코네이션을 떠올린다.



에필로그 by Dan Ji

나는 끊임없는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다. 고된 현실과 노동을 통해 얻어낸 경험과 깨닳음, 그럼에도 채워지지 못하는 갈망, 욕구, 의지의 마음을 독서를 통해 채워 보기도 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기계적인 루틴을 수행하는 로봇처럼 살기로 마음을 먹고 매일을 나태한 스스로와 싸우며 때로는 타협하며 지냈다. 어느 날은 인지하지 못한 채, 또는 인지하더라도 태연히 모르는 척 시간을 허비하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열심히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길 바라는 내 모습에 비참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거나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동굴로 들어가기 바빴던 내 모습을 바라 보았다. 단지의 <Kryptos> 시리즈는 이러한 나의 내면과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상상 속에 그려진 원하는 나와 현실세계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을 버무려 솔직하게 털어놓고자 하는 고해성사 같은 작업이다.


크립토스 시리즈에서는 주인공 단지가 차원을 넘나들 때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키워드를 찾는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이번 시리즈의 키워드는 conation 이다.


CONATION


이 용어는 철학에 기원을 둔 심리학적 개념으로는, 인지와 감정적 능력과 구분하여 행동에 대한 갈망과 욕구, 의지 등과 관련된 마음의 능력을 말한다. 근대심리학에서 의욕, 인지, 감정이라는 세 용어는 서로 다른 능력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심리적 과정에서 개념적인 특징적 측면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능동적 의지는 행위에 대한 실제적 힘이나 충동, 즉 의식적인 의지가 될 수 있는 충동 혹은 균형의 결여상태, 혹은 변화하고자 하는 경향 등을 언급한다.


이 단어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까? 이 단어의 뜻을 오롯이 이해한다면 다른 차원으로 이동 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능동적 의지 (CONATION) 가 없어지는 때가 온다면 이 단어만큼 마음을 무겁고 부담스럽게 하는 단어가 있을까? 능동적 의지의 개념은 결과가 아닌 찰나의 과정은 아닐까? 한편, 내가 능동적으로 해결하려는 문제가 정말로 문제이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단지는 이 차원에 존재하는 자신을 스스로 해방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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