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미술작품의 조건_작품성(EP.1)내용과 형식
최근 여자 아이들이라는 걸그룹이 Nxde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신곡을 냈는데 반응이 아주 뜨겁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외설적인 누드 따위는 없다 우리는 당신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나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줄 것이다.”라는 내용의 노래이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 ‘변태는 너야’라고 외치며 뱅크시의 ‘풍선을 든 소녀’가 나오는데 경매장에서 낙찰되자마자 작품이 조각으로 잘려버리는 그 사건을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장식했다. 그 장면 하나로 이 노래의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다. 사람들의 기대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도발적인 행위!! 예술이다. 미술 전시회를 열어 ‘나 예술가야’를 외치는 연예인들 사이에서 진짜 예술을 알고 예술을 하고있는, 어떻게 해야 예술가로 보이는지를 알려주는 요즘 아이들의 발칙한 도발행위를 보니 통쾌함이 느껴진다.
뱅크시(Banksy)는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1990년대 이후로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예술가로 아무도 그의 얼굴을 모르지만 모두가 그를 안다. 뱅크시는 대중으로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미술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밤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건물 외벽에 낙서를 해놓고 사라지는 일을 반복했는데 외벽의 갈라진 콘크리트의 모양이나 창문 등을 이용하여 그림과 연결시키는 창의적인 형식의 독특한 그라피티였고 역설적인 정치풍자와 사회적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몰래 작업을 해야 했으니 쉽게 도망가기 위해 시트지에 미리 밑 작업을 해놓고 벽에 붙인 후 몇 분 만에 스프레이를 분사하고 자리를 떠난다.
그라피티라고 하면 건물 벽에 그린 무허가 낙서인데 예전에는 뉴욕의 할렘가 거리에서 도시 미관을 해치는 거리 무법자들의 횡포이기도 했다. 이런 낙서에 담긴 메시지들이 관심을 얻기 시작하면서 거리 예술가들도 점점 독창성과 미적 가치를 담은 예술작품을 경쟁하 듯 건물 외벽에 남겼다. 특히, 롱아일랜드 시티, 지금의 MOMA Ps1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었던 Five Points 아티스트 스튜디오의 외벽 그라피티는 뉴욕을 상징하는 상징물이기도 했다. 지금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7 트레인을 타고 지나갈 때마다 그림을 볼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스튜디오에서 한 화가가 밤에 술을 먹고 창문에서 떨어졌는데 미국에서는 안전과 보상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서 건물주가 모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화가 난 건물 주인은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이 빌딩을 팔아버렸고 그들은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부숴버렸다. 안타까운 일 이였다. 빌딩이 아니라 이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뉴욕 예술의 중심이자 상징이었는데 말이다. 이후, 그라피티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마음대로 철거한 이들에게 소송을 걸었고 그들은 천문학적인 금전적 보상을 얻게 되었다. 건물 주인이 자신의 자산이라고 해도 건물 외벽에 그려진 몰래 그린 낙서에 대해서는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술가의 창작물은 예술가와 공공의 것이라는 결론이다. 유형의 자산과 무형의 지적재산권을 동일한 가치로 취급한 판결이었다. 현재 뱅크시의 그림이 그려진 건물을 사고팔 때 건물주는 어떻게 하는가? 그림이 그려진 부분만 채석하여 전시하거나 보존한다. 아니면 뱅크시의 그림 덕에 건물 가치가 올라가 아주 비싼 값에 건물을 매도하고 작품은 따로 떼어 또 유통한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돈을 좇는다. 뱅크시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아무리 비판하고 조롱해도 시장은 돈을 좇는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에서 변기통은 권위를 파괴하는 하나의 선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찬양을 받는 순간 더 이상 저항은 저항이 아닌 것이 된다. 저항은 또다시 권위가 되는 것이다. 뱅크시는 계속해서 이런 것을 말하고 있다. 풍선을 든 소녀 작품에서도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낙찰되는 순간 파쇠 해버리는 퍼포먼스를 보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마저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니 저항은 더 이상 저항이 아니고 조롱하고 비판할수록 사람들은 더 높은 값을 지불하고 그것을 소유하고자 한다. 역설적이게 비판당하고 조롱당하는 짜릿함!! 이것에 사람들은 돈을 지불한다.
자!! 아래에 있는 그림으로 보라. 수색당하는 소녀와 군인이 반대로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뭔가 폭력성을 알리는 것이긴 하지만 직접적이다. 꽃을 던지는 저 남자가 꽃이 아니라 수류탄이나 돌을 던진다고 생각해보자. 뻔한 내용이다. 한국에도 민중미술이 있는데 그들은 사회의 부조리 함을 고발하고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조롱과 비판이 단순한 사실을 그대로 알리는 것이냐 아니면 역설적으로 뒤통수를 제대로 치느냐에 따라 작품성과 수준이 결정된다. 민중미술이 정치적인 의도에 따라 주목받지 못하고 묻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술작품의 작품성을 판단하는 근거는 이리도 단순하다. 직접적이고 해설적인 것은 한 차원 낮은 예술이고 은유적이고 역설적인 것이 한 차원 높은 것이다. 함축성의 의미를 아시겠는가?
왼쪽 아래에 한 소년이 마치 첫눈을 맞이 한 듯 해맑은 표정으로 떨어지는 눈발을 입으로 먹고 있다. 이 그림은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있던 2018년 어느 겨울날 한 철강 노동자의 집 벽에 그려진 벽화이다. 아! 뱅크시가 가난한 노동자의 집에 해맑은 소년을 그려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라고 선물을 준 것이구나!! 만약 그렇다면 이 작품은 B급이다. 아래를 보라 소년이 맞이한 것은 한겨울 첫눈이 아니라 옆에서 활활 타고 있던 하얗고 풀풀 날리는 잿가루이다. 영국의 한 철강도시의 환경 문재를 고발한 작품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소년이 잿가루를 해맑게 맞이하는 이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요즘 한국에도 벽화마을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그 벽화들과 뱅크시의 벽화가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 차이를 한번 보라. 색감이나 테크닉, 어떤 대상을 그렸느냐 그런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은유와 역설이 담긴 함축성이다. 이것이 작품의 수준을 결정한다.
작품성은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이렇게 뱅크시는 사회문제를 역설적으로 고발하는 내용과 작품을 제작하고 보여주는 형식 모두에서 작품의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대중에게 자신을 미스터리 한 인물로 각인시켜 모두에게 이름을 알린 마케팅 전략!! 마켓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작품을 사고 싶어 안달 나게 하고 메이저 아트마켓 랭킹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서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마켓에서의 인기!! 그는 작품성 시대성 대표성 모두를 충족시키는 훌륭한 예술작품의 조건을 갖춘 이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