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미술작품의 작품의 조건_시대성(EP.2) 예쁜이구별법(만화캐릭터)
한국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장에 가보면 유난히 잘 팔리는 작품들이 눈에 띄는데 묘하게 비슷한 특징이 있다. 색감이 밝고 예쁘거나 행복한 얼굴 표정을 한 주인공이 그림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재능 있는 작가들의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독특하고 개성이 넘친다. 특이한 재료를 써서 시각적인 새로움을 주기도 하고 평범하지만 따스한 내용으로 우리를 감동받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컬렉터들은 이렇게 느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이 정말 좋은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은데 이 작품이 투자하기에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네? 특히, 미술투자로 부자 되기에서 ‘훌륭한 미술작품의 조건’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의 작품성은? 시대성은? 대표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라도 한다면 이미 여러분은 미술투자로 부자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나 많은 아트 컬렉터들이 이런 고민은 하지 않는다. 색감이 예쁘고 기분 좋은 작품에 눈길이 가고 인기가 많은 작품이 좋은 작품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당대에는 잘 나가고 존경받던 작가의 이름이 반 세기도 채 넘지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례들은 수도 없이 많다. 게다가 21세기에 들어와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작품과 패러디, 키치는 그 구분마저 모호하다. 그렇다고 미술대학 교수가 될 것도 아닌데 ‘피터 뷔르거’나 ‘발터 벤야민’의 아방가르드 이론 책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시대마다 찰떡같이 잘 맞는 예술 이론과 철학은 있는 법이다. 지금 시대에 아직도 ‘칸트’의 예술이론을 언급하면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마치 한때는 잘 나갔지만 ‘미투’ 운동 등으로 명망을 잃은 늙은 꼰대 평론가가 쏘 핫한 척하며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젊은 작가들에게 ‘라테는 말이야’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꼴과 같다. 약하고 뭣 모르는 힘없는 자들에게 있지도 않은 권력을 휘두르려 어려운 말이나 줄줄 내뱉는 것만큼 치졸하고 우스꽝 스러운 것은 없다.
한 시대를 읽는 데에 철학자들만큼 깊이 있고 냉철한 시각을 가진 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위대한 사상가의 철학을 알아야만 좋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것이라면 나 조차도 자신이 없다. 그래서 ‘미술투자로 부자 되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시대는 변하고 사람들의 취향도 변하고 돈의 흐름도 바뀐다. 그러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훌륭한 미술작품의 본질에만 집중하자!! 나머지는 대입해서 응용해보고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그러면 여러분은 좋은 예술 작품 본인 스스로 발견하는 감동과 함께 금전적 보상도 얻게 되는, 미술투자로 부자가 되는 진정한 아트 컬렉터로써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작품에서 시대성을 읽는 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크게는 작품의 메시지를 개인과 사회로 나누어 보고 작은 개념으로는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 지어 이 작품이 어디에 속하는 지를 찾고 어떤 시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지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뜻 보기에 예쁜 작품들은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아볼까? 이번 기회에 인기 있는 작품에 괜스레 마음을 빼앗겼다가도 예쁜 작품이 가벼울 것이라는 편견 사이에서 선택 장애 상태를 앓고 있는 당신의 고민을 해결해 보자. 그리고 색이 쨍하게 원색적이면 팝아트라고 오해하는 ‘미 알 못’의 단계도 한번 벗어나 보자.
예쁜데 가벼운 작품 VS 예쁜데 깊이 있는 작품
깊이가 있다 없다를 여러분이 구분할 수 있을까? 없을까? 비구상 작품이나 개념미술이면 몰라도 구상작품에서 작품의 깊이감은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색감이나 그림 속 캐릭터의 예쁨 때문에 작품의 깊이를 보려는 마음은 잠시 사라지고 그 표면적인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비판의식을 잃어버린다. 게다가 잘 팔리는 작품이라는 외부적 요인까지 더해지면 판단력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외적 정보에만 집중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럴 때에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어떤가? 비평과 해설은 비구상 작품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미술을 감상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라는 비평가가 도무지 무엇을 그린 건지 모를 잭슨 폴락의 물감 뿌리기 작업을 비평하면서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 사건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회화에서 구상작품의 경우 비평이나 해설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그림 그 자체가 해설이고 도상이고 설명이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눈에 다 보이지 않은가? 묘사하는 대상, 색감, 붓터치 등으로 화가의 감정과 의도는 그대로 드러난다. 미술이라는 것이 전문인의 영역이라 무조건 어렵고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라는 편견은 버리고 자신의 눈을 한번 믿어보자. 지금부터 만화 캐릭터의 형식을 차용한 평면적 작품들과 서사가 있고 일러스트 형식과도 비슷한 예쁜이 작품들을 비교해서 알아볼 것이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카우스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요즘 사람들
이들은 요즘 사람들의 요즘 이야기를 요즘 방식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이다.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의 제작이나 홍보, 판매까지 브랜딩을 하는 방식조차 작품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화에서나 볼 법한 캐릭터 따위에 무슨 깊이감을 느끼라는 말인가? 키워드는 함축성이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함축성이라는 단어를 붙들고 작품을 봐야 한다. 함축성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예술작품을 관통하는 마법의 단어이자 예술을 예술답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조건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들이 미키마우스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심슨을 그렸지만 심슨이 아니고 도라에몽을 그렸지만 도라에몽이 아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자신의 작품을 만화처럼 캐릭터화 한 작가들의 원조 격이다. 게다가 ‘카이카이 키키’라는 회사를 세워 공장형으로 작업실을 운영하는가 하면 작가들을 고용하여 작품 제작에 참여시키고 그들 중 뛰어난 작가는 작가로서 성공적 데뷔를 시키기도 했다. 지금은 루이비통이나 디올 같은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무라카미 다카시의 루이뷔통 칼라 모노그램 디자인만큼 임팩트가 있는 것은 없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량생산과 대중문화의 시대와 맞물려 공장에서 찍어내 듯 실크스크린 기법을 사용한 팝아트의 아이콘 앤디 워홀이 있다. 그 위로 한 단계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도날드 저드나 에바 헤세 등의 미니멀리즘이 있다. 이 시대에는 아방가르드 예술을 근간으로 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철학 이론들이 풍년을 맞는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사회와 예술을 읽기 위해 비평가나 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철학자들의 시대를 관통하는 깊이 있는 해설 없이는 스케일 크고 단순해 보이는 이 작품 같아 보이지 않지만 심오하고도 생소한 예술 작품들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작품들은 아직까지도 컨템퍼러리 아트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21 세기로 들어와 팝아트는 네오 팝아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 맥락을 이어나가고 있다.
먼저, 카우스와 무라카미 다카시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찾아서 늘어놓아 보자.
인기 작가? 맞는 말이다.
만화 캐릭터? 맞다.
색감이 원색적이고 컬러풀하다.? 맞다.
입 채 감 없이 평평하고 단순하다. 맞다.
공장형 작업실에서 대량 생산하고 아트상품을 많이 만든다. 그렇다.
작품이 비싸다. 딱이다.
조각, 설치 등 입체작업과 그림, 판화 등 평면작업 모두 있다. 맞다.
유명 브랜드와 협업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있다. 그렇다.
더 찾을 수 있겠지만 일단 여기까지 나열해서 작품 내적 특징과 외적 특징을 나누어 볼까?
작품 내적 특징
만화 캐릭터/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 원색적 색감/ 단순하고 평평한 표현
작품 외적 특징
비싸다/ 공장형 작업 생산 방식/ 브랜드와 협업/ 판화, 입체작업, 아트상품 등 제작 판매/인기가 많다
자 특징을 나열해 놓고 보니 무언가 보이는가?
작품의 내적 특징으로 만화 캐릭터가 아주 큰 특징인데 카우스의 경우 미국 최고 인기 만화 심슨가족의 한 장면을 차용하여 자신만의 캐릭터를 입힌다. 때로는 캐릭터가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명품 쇼핑을 하고 휴가를 가거나 유행하는 스니커즈를 신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슈퍼플랫’ 이라고도 불리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안에는 입체감이나 소실점도 없고 배경과 대상은 분리되지 않는다. 캐릭터는 언제나 웃고 있고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일본 문화의 일부인 만화 광적인 오타쿠 문화를 작품에 담아냈다. 실제 본인이 만화광 임은 물론이다. 이 두 작가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 대중들이 선호하는 것, 대중들이 열광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캐릭터와 시각적 독특함으로 나타내었다. 작품 외적으로는 어떠한가? 공장에서 찍어내고 브랜드와 협업하여 이름을 알린다. 판화와 입체 작업 등을 하여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고 아트토이 등의 아트 상품으로 보다 많은 대중들이 열광하도록 유도한다. 이것이 바로 ‘브랜딩’이다. 작가 자신을 브랜딩하고 있다는 말이다. 요즘은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누구나 예술을 하고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 시대에 현재 살고 있지 않은가? 작품 안에서 해설하고 설명하여 요즘의 브랜드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작품을 알리고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예술 작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전시 광고, 홍보와는 전혀 다르다. 광고하는 방식조차 예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인기 많은 스타작가가 아니라 이 시대의 정체성과 우리들의 이야기를 작품 안에서 그리고 작품 밖에서 하나의 스토리로 묶어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앞서 ‘함축성’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이 작가들의 작품들 속에서 함축성이 느껴지는가? 기계적으로 웃는 캐릭터의 모습 뒤에 약간의 서늘함이 느껴지는가? 아트페어장에 가면 그냥 이쁘다, 즐겁다, 귀엽다, 좀 쓸쓸해 보인다 등의 감정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바라보면 기분은 좋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예술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오락적 기능이다. 오락적 기능을 하는 것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미술작품은 티브이 드라마도 아니고 개그콘서트도 아니다. 예술은 보이는 시각적 자극 뒤에 응축된 숨은 의미가 있어야 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유레카’를 외칠만한 깨달음의 엔도르핀을 선물해 줘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요즘 유난히 돋보이고 성장하고 있는 작가 ‘루시 스패로우’에 대해 알아보자.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2018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 기간 열린 ‘Context 아트페어’ 에서다. 아트페어장에 설치된 작품들은 언뜻 보고 데미안 허스트의 오마주인가 싶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물성도 다르고 소재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른 독특함이 느껴졌다. 좀 더 자세히 작가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날 저녁 뉴욕 파티 플래너가 주최한 뉴욕 사람들이 만나는 파티가 마이애미의 한 바에서 열리고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 가지 이겠지만 미국에서는 이렇게 아트페어 기간이 되면 여기저기서 파티가 열린다. 아트페어가 주최하는 파티,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 홍보 파티, 작가들의 작업실 파티, 갤러리 파티 등 너무 많아서 하루 저녁 동안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전시를 보기도 한다. 나는 그날 친구가 초대한 뉴요커 VIP 파티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앤젤리나 졸리를 보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녀는 여자인 내가 봐도 말이 안 나오게 아름다웠고 계속 쳐다보는 나에게 윙크와 손키스를 날렸다. 팬 서비스를 하는 걸 보니 그녀가 확실했다. 파인애플 주스를 주문하러 바에 갔다가 그 앞서 서서 소박하게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 그녀를 보고 주문하는 것을 잊었다. 거기에서 뉴욕에서 온 아트 딜러들을 만났는데 내일 어디 어디로 오면 루시 스페로우의 작품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딜러들에게 언급되고 있는 걸 보니 무언가 핫한 것은 확실하다. 작가의 작업실인지 스토어 인지 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내일 그곳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일찍 잠에 들었다. 12월의 마이애미는 한국의 한 여름처럼 따듯해서 비키니를 입어도 될 정도인데 이번에는 유달리 추웠다. 뉴욕에서부터 가져온 패딩 재킷을 입어야 할 정도였다. 마이애미 다운타운의 한 빌딩으로 갔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곳은 계발이 한창 진행되어 고층 아파트들이 막 들어선 브리켈 지역이었다. 거기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아파트에 데이비드 베컴도 산다지? 코로나 팬데믹으로 셧다운이 되었었지만 몇 년 새에 브리켈의 개발은 활발히 진행되어 멋지게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아트 마이애미는 아예 그 근처에 전용 전시장을 마련했다. 이런 동네 건물 한편에 루시 스패로우는 마트를 차렸었다. 간판도 있고, 점원도 있고, ATM 기도 있었다. 계산대 앞에는 검정색 쓰레기 봉투 같은 커다란 비닐에 작품을 잡히는대로 잔뜩 담아 계산하려고 줄을 선 뉴욕에서 온 아트 딜러도 있었다. 아트페어장에서 본 액자는 없었다. 과자, 약, 담배, 조각피자 등 마트에서 파는 모든 물건들을 마트 에서와 똑같이 자신이 작품으로 진열해 놓았다. 병원이나 약, 상품을 소재로 하는 작업은 흔하지 않은가? 그렇다 진부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진부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었다. 먼저 재료다. 그녀는 푹신푹신한 솜이 들어간 팰트 소재(일명 부직포)로 모든 상품들을 재현했다. 물성!! 그리고 기존의 것을 다르게 보게 하는 아방가르드 적인 해석!! 마르셀 뒤샹의 변기가 기성품을 전시장으로 가져가 개인의 창조성에 대한 주장을 비꼬았다면 그녀는 반대로 제도권에 있는 작품을 제도권 밖으로 가지고 나와 아방가르드 적 도발 행위 자체를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작품의 큐레이팅 방식은 일종의 퍼포먼스다. 그리고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방식과 똑같이 작품을 판매 함으로써 한 번 더 제도권을 비꼬와 주고 실제로 경제적 이윤도 창출한다. 최근에는 지금은 국왕이 된 찰스 황태자를 영국의 차 문화인 애프터 눈 티 파티에 초대했다. 물론,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프리즈 아트페어에서는 아이스크림 트럭을 가져와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판매했다. 여기에도 실제 아이스크림은 없었다.
작품은 예쁘고 귀엽다. 작가는 때대로 바나나, 초콜릿 등에 눈과 입을 붙여 의인화하기도 한다. 그녀의 작품은 대량생산 가능함은 물론이다. 누가 만들어도 똑같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아티스트를 브랜딩 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셨는가? 작품 자체의 독특함과 미적 가치는 기본이다. 전시나 작품을 홍보하고 광고하는 것과 브랜딩은 다르다. 흩어진 모든 스토리가 하나로 이어져야 하고 마케팅을 하는 방식 그 자체가 예술이 되어야만 브랜딩에 성공할 수 있다. 여러분은 이 작품에서 이 시대의 패러다임을 읽을 수 있는가?
다음 시간에는 이어서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김홍도와 마르크 샤갈의 서사, 현실이지만 현실 아닌 내 마음속 그 어디 즈음을 담아내는 작가들을 예시로 살펴볼 예정이다. 대작이나 조수를 써서 공장에서 생산하듯 찍어내는 작품들이 일반화되면서 이에 대한 법적 논쟁 사례도 있었다. 대작을 해도 되는 작품과 하면 안 되는 작품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다음 편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