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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재종 Dec 07. 2017

타임머신


벌레들이 파먹은 자리를 보면 완전 무공해 배추라는 사실을 알리라.


지난여름, 생가 마당 한편 텃밭에 심었던 배추가 떡대같이 자랐으나 내박쳐두었더니 벌레들이 난도질을 해놨다. 김장 대신에 배춧국을 끓일 요량으로 덩치 큰 놈 순서로 뽑아서 벌레 먹은 겉절이를 다듬어 마대자루에 넣었다.


변소 구석에 넣어둔 지게를 꺼내 빗자루로 탁탁 털었다. 지게 작대기는 오이 줄기 지지대 나무를 뽑아 즉석에서 만들었다. 대략 15년 만에 다시 지는 아버지의 지게. 배추 한 포대와 화구 등을 챙겨 지게에 얹으니 어깨를 짓누르는 하중이 만만찮다. 


뒷골재 너머 부모님 묘소를 지나 5릿길 해방촌을 넘어 읍내 평해 버스정류소에 당도했다. 백암온천으로 가는 버스 출발 5분 전, 지게를 지고 버스에 승차하는 수염 난 사람을 보더니 운전기사가 기겁을 하며 뇌까린다. "내 살다 살다 별 희한한 걸 다 보네...!"


시내버스와 지게꾼

구불구불.... 백암온천으로 가는 길가로 이미 어둠이 깔렸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현재 - 셀카를 통해서 들여다본 속없이 웃는 사내의 표정과 배경이 생경하다. 그럼에도 문득 보니 "이질적인 신선감"이 드는 것이 고무적이다. 스스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산다는 것,

현대적인 것,

자존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 

예술이라는 것,

자유 영혼이라는 것,

그리고 인생이라는 것과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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