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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RAVEL Oct 18. 2017

파도의 중심에 서다

artravel vol. 21

파도의 중심에 서다

하와이│미국│추연만


ⓒ추연만



귓속에 하와이가 가득하다. 고개를 이리저리 저을 때마다 귓속에서 떼구르르 떼구르르 모래가 굴러다니는 소리가 떠나질 않는다. 남태평양 에메랄드 빛 물결이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매년 700만명의 여행객이 찾는 하와이는 서핑의 천국으로 불린다. 그 만큼 매일 좋은 파도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하는 서퍼부터 프로서퍼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며 국제 서핑대회까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그런 하와이를 찾는 이유는 하나이다.


파도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이다.


ⓒ추연만



183cm의 키를 훌쩍 넘기는 파도. 그 중심에 서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기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날씨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물 색깔. 바람의 세기에 따라서 또 바뀌는 파도의 무늬. 파도의 크기에 따라 매 순간 변하는 바다는 한번도 똑같은 적이 없다. 수시로 바뀌는 파도를 잡기 위해 깊은 물 속 압도적인 파도의 벽을 넘어야 하지만. 언제나 그 정도는 감수해야 만날 수 있는 파도이기에 파도를 찍는 것 못지 않게 파도를 피하는 성취감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추연만



파도의 중심에 들어 서기 위해선 파도의 피크가 내 머리를 스치듯 지나쳐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야 한다. 말이 그렇지, 높이 3-4m의 파도를 온몸으로 받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 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타이밍이 중요하다.


처음에 파도를 보는 눈이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어떤 타이밍에 파도를 피해야 하는지, 어디서 올라오는 파도가 좋은 파도인지 몸소 체험하고 배우기까지 오랜 시간과 몸의 통증이 필요했다. 그제야 비로소 감각이라는 게 생겨났다.


파도를 만나는 매 순간은 모든 게 신기했다. 강한 파도가 밀려 왔다 나갈 때 다음 파도가 밀려오며 서로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때 수백, 수천의 물방울이 튀어 오르면 파도를 피하면서도 순간 나도 모르게 파도를 향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추연만



가끔은 위험한 순간도 있다. 파도에 휩쓸려버릴 때나, 휘말리는 파도 속에서 서퍼 혹은 다른 촬영자가 함께 나뒹구는 순간. 또 있다. 쇼어브레이크를 찍기 위해 해변가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촬영 하던 중 파도의 피크에 잘못 걸려서 모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순간. 그때의 위험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추연만



파도를 촬영 하면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노스쇼어 파이프 라인에서 찍은 수중 파도 촬영 컷이다. 노스쇼어 파도는 그동안 만났던 다른 파도보다 훨씬 힘이 있었다. 거칠게 몰아쳐서 파도를 피하는 순간 물속에서도 파도의 파장이 온몸으로 느껴졌는데, 그 순간 크고 파란 파도의 물결이 말리면서 기묘한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원한 파도에서 크리스탈이 서로 부딪쳐서 음악을 연주하듯 맑은 유리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나는 그 후 이 놀랍고 아름다운 크리스탈 연주 소리를 듣기 위해 노스쇼어 앞 바다 커다란 파도로 더 자주 뛰어 들기 시작했다.


ⓒ추연만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지난 11월 샌디비치에서였다. 샌디비치는 나에게 파도에 대한 설렘을 갖게 한 바다였고, 가장 멋진 사진을 남겨 준 바다였다. 가장 많은 시간 촬영한 바다인 동시에 내가 가장 잘 아는 지형의 바다이기도 했다.


11월은 하와이의 계절이 바뀌는 달이기에 파도가 무척 거칠었다. 불규칙하면서도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탓에 촬영은 얼마 하지도 못하고 힘은 두 배로 들었다. 그러던 중 나쁘지 않은 날이 찾아왔다. 길도 잘 나고 가장 중요한 파도가 무너지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파도들이 밀려 들기 시작했다. 이런 날엔 현지 사람들도 더 많이 찾아 드는데, 부기보드서퍼들이나 나같은 사진가들이 대부분이었다.


해변에 서서 내가 움직일 동선과 위치 잡을 곳을 지켜보다가 파도를 향해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1시간 버티기 힘들었던 파도는 차분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흥분한 탓일까? 바다에선 항상 위험 상황에 대해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통 정신이 팔려 내가 원하는 데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2-3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하고 있는 현지 사람과 동시에 큰 파도를 피하지 못해 같이 휘말려 버린 거다!


휘말린 것까진 별 일 아닐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보통의 경우 파도에 휘말릴 땐 몸에 힘을 풀고 잡고 있던 하우징에서 손을 놓고 머리와 멀리 손을 뻗어 주면 된다. 파도의 강함을 힘으로 맞서기 보다 이렇게 힘을 풀고 그냥 파도에 맞기는 게 그동안 내가 몸으로 익혔던 방법 중 하나이다. 그리고 파도에 휘말릴 때 하우징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꽉 잡고 있다간 오히려 손목이 나갈 가능성이 크다. 손을 최대한 머리와 멀리 쭉 뻗는 이유는 알루미늄으로 된 하우징이 머리를 치게 되면 크나큰 부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하우징을 놓고 손을 쭉 뻗어 파도에 몸을 맡겼는데, 이상하게 다리에 뭔가 뻐근하고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한번도 경험해 본적 없는 느낌이기에 순간 함께 휩쓸렸던 그 사람이과 부딪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보니 역시나 서로 다리가 엉켰던 것인데, 비교적 작은 사고라서 천만 다행이었다. 만약 얼굴이나 몸 쪽으로 서로의 하우징이 부딪혔다면 정말 큰 부상을 피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었다. 상상하기도 싫다. 나는 휘말렸던 파도가 지나가고 그 친구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너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순간 그 친구가 나를 향해 놀라며 손가락을 뻗는다. 그는 내 뒤를 가리키고 있었다.


ⓒ추연만



아차 싶었다. 그 뒤로 더 큰 파도가 올라오고 있었다.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낮게 이동했으나 강한 파도 앞에서 나는 다시 휩쓸리고 말았다. 커다란 파도는 나를 아주 내동댕이 치고 말았는데 왼쪽 어깨와 왼쪽 얼굴이 모래 바닥 위로 내리 꽂혔다. 일어서지 못하고 바닥을 기어 해변 안쪽으로 간신히 나왔다.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 덕에 오른쪽 어깨도 말썽인데 왼쪽 어깨가 이젠 더 아파서 윗옷을 입을 때마다 팔이 잘 올라가지 않아 불편하다.


파도를 만난 후부턴 쉼 없이 이어지는 부상의 연속이라지만 이번 일은 보통 위험했던 게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떨 땐 프로처럼 샌디 비치에서 서핑을 해보세요." 또는, "하와이에 가면 샌디 비치에 가서 물속에 들어가 파도 사진을 찍어 보라"고. 하지만 아주 심각한 일이 될 수 있다. 오죽하면 샌디 비치가 Death beach(죽음의 해변)나 Broken Neck Beach(부러진 목의 해변)라고 불리겠는가.


ⓒ추연만


ⓒ추연만


ⓒ추연만


ⓒ추연만




이번에 하와이 파도 사진을 담으며 참 많은 걸 느꼈다. 샌디 비치 주변엔 그 비치에서 서핑을 하거나 부기보드서핑을 즐기다 죽은 사람들의 사진과 작은 돌무덤이 있다. 이번에 보니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곳까지 더욱더 많아진 돌무덤을 보고 새삼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참 이상한 것이, 이 공포감의 역할이 딱 거기까지였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곳에 다시 오지 않을까? 다시는 샌디 비치에서 파도를 찍지 않을까? 그리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아마도 두고두고 저걸 찍게 될 것만 같다.


샌디 비치의 파도를 한참 바라본다. 다만 내 사진이 Sandy'z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글│추연만

사진│추연만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www.artrav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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