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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RAVEL Jan 23. 2018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들

ARTRAVEL VOL 25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들 

HAPPINESS CITIES IN THE WORLD

아트래블 편집부


요즘 행복하니? 라는 친구의 질문에 대답이 망설여진다. 행복하지 않아서라기보단,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서였다. 어느 교수는 웃으면 행복해 진다 했고, 또 다른 연구자는 행복한 유전자는 타고나는 것이라 했다. 제 3자들의 논문이나, 주석 말고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젊은 엄마를 본 적 있다. 죽은 친구의 영정 앞에서 한 시대를 함께 보냈던 이들이 부둥켜 안고 우는 장면도 있었다. 중간고사가 막 끝난 중학교 교실에서 많은 학생들이 컴퓨터 사인펜을 집어 던지며 환호하는 풍경이나,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금새 키스를 나누는 연인의 모습도 있다.


행복이란 단어와 함께 머리를 스쳐간 장면들이다. 행복은 기쁨이나, 슬픔, 기억, 감동, 해방감이라는 개개인의 감정과 감정이 만나는 모든 순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행복은, 절대 혼자서 만들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누군가와 함께 웃고, 울고, 싸우며, 사랑하는 모든 순간이 결국, 행복이다.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그 모든 순간의 기억이 만나고 결합하며 만들어낸 행복의 도시들, 지금부터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들을 찾아볼 생각이다.


따듯한 수프는 고양이 거예요 

ISTANBULㅣTURKEY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 사실 이스탄불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지만, 가장 행복한 도시로 인정받는 장소는 아니다. 행복을 나름의 기준으로 수치화해 도시마다 순위를 정한 유엔 행복 보고서에서도 이스탄불은 상위권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행복이 함께 감정과 기억을 공유하는 모든 순간이라면, 이스탄불은 충분히 행복한 도시다. 단, 감정과 기억을 공유하는 대상이 꼭 인간이어야만 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이스탄불 골든혼 해협을 따라 나있는 해변길에는 푹신한 방석과 이불이 곳곳에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위해 마련해준 보금자리다.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는 낚시꾼들도 어렵게 잡은 물고기를 기꺼이 고양이에게 나누어 준다.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소피아 대성당과 블루 모스크 근처도 길고양이로 넘쳐난다. 2009년 이 곳에 사는 수십 마리의 고양이 중 한 마리를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쓰다듬어 주는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스탄불의 길고양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고양이와 사람이 나눈 기억은 언제나 따듯했다. 이스탄불 사람들이 유독 길고양이를 아끼는 이유는, 이슬람의 예언자 마호메트가 고양이를 유독 아꼈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이유야 어쨌든 간에 이스탄불의고양이들과 주민들은 서로에게 애틋한 기억을 매일 쌓아가고 있다.


이스탄불의 거리를 걷는다. 일광욕을 즐기던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온다. 사람과 고양이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도시에선 행복도 틀림없이 고작 한 뼘 거리에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 

HELSINKIㅣFINLAND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를 꼽을 때,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도시. 핀란드의 헬싱키다. 핀란드하면 자일리톨이나, '휘바- 휘바-'하는 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렇다고 치아가 건강해서 헬싱키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헬싱키의 행복은 교육에 있다. 어떤 이들은 핀란드의 교육법을 가지고 교육 혁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속도와 효율에 초점을 맞춰 발전했다. 뒤쳐지는 사람이 낙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세계는 경쟁을 통해 인간이 발전한다고 믿었다. 핀란드의 교육은 이러한 믿음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핀란드 교육청에는 이런 말이 써있다.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는 교육" 핀란드 교육의 핵심은 일등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학업을 끝까지 마치는 것에 있다. 성적이 좋은 학생과 좋지 못한 학생을 한 조로 편성해, 앞서간 학생이 뒤쳐진 학생을 도와가며 서로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혼자보다 함께. 경쟁보단 협력을 배우게 된다. 학생들은 조별로 주어지는 다양한 교육 과제를 함께 헤쳐나가며 세상에 모든 사람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사람은 넘어서야 하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협력하며 공존해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학교에서 배우는 도시-헬싱키다.


빵 한 조각의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LUANG PRABANGㅣRAOS


'가난하지만 행복한'이라는 문구만큼 무책임 한 것이 없다. 가난의 무게를 직접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서 쉽게 내뱉어질 말이 아니다. 가끔 가난이라는 단어를 행복과 대치시켜 빈곤층에 대한 모종의 책임감을 덜어버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기도 하니 더더욱 조심스러운 문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트래블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중 하나로 라오스의 루앙 프라방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소개할 것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도시 루앙 프라방.


라오스 상좌부 불교의 탁발식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물론 상좌부 불교 국가 중에 탁발을 하는 곳이 많지만, 루앙 프라방이 탁발에 있어 가장 상징적인 도시인 것을 감안했다. 루앙 프라방의 남자 아이들은 청소년기가 되면 6개월 정도 절에 들어가 승려 생활을 한다. 상좌부 불교는 따로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오직 시민들이 나누어주는 음식에 의존해 생활하는 곳. 매일 아침마다 머리를 민 청소년 승려들이 줄지어 걸어 나오는 것으로 탁발식이 시작된다. 탁발식은 탁발을 든 승려가 줄 지어 지나가면 그 속에 시장에서 산 밥이나, 빵 등을 넣어주는 행사. 탁발에 음식을 넣어주는 사람들은 그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종교 행사가 행복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기억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군가가 주는 음식을 받아 먹어 본 기억. 적어도 이 기억은 잠시 승려 생활을 하는 루앙 프라방의 청소년들이 성장한 뒤에 누군가에게 서슴없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어느 어른이 이야기 했다. 잘 받아먹을 줄 알아야, 또 잘 나눠줄 수 있다고. 기꺼이 음식을 나눌 줄 알고, 받아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의 도시, 루앙 프라방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도시다.


그 도시에서 사라진 것들 

SAN JOSEㅣCOSTA RICA


국민총생산 등 경제적인 지표로만 행복한 도시의 순위가 매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 호세는 언제나 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사람들은 경제적인 것만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깨달음에서 시작된 것이 매년 발표되는 유엔 행복 지수다. 경제와 사회 복지에 더해 도시 시민들의 건강, 도시의 공기, 안정도, 교육 등을 조사해 새로 만든 행복 지표. 이 지수가 발표된 뒤 코스타리카의 산 호세는 2009년과 2012년 가장 행복한 도시 1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에도 산 호세는 항상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산 호세의 행복 지수 순위가 높게 나오는 이유는 자연환경 등의 영향도 있지만, 결국 군대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1948년까지 코스타리카는 국경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특히 1948년 벌어진 쿠데타로 2천여 명의 시민이 사망하기도 했다. 증오가 증오를 낳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던 시절, 호세 피레구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피레구스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쟁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1949년 그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코스타리카의 군대를 철폐한 것이다.


피레구스 대통령은 남다른 외교력으로 국경 분쟁을 해결하고, 군대를 폐지한 뒤 남은 국비를 모두 복지와 교육에 쏟아 부었다. 자연스레 시민 삶의 질은 올라갔고, 그를 향한 지지층도 두터워 지기 시작했다. 피레구스 대통령은 중남미의 국경분쟁을 한층 완화 시켰다는 평을 받으며, 198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쟁으로 매일 불안한 삶을 살던 시민들은 더 이상 총성을 듣지 않아도 됐다. 그 대신 국가에서 지원하는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살수 있게 된 것. 현재도 코스타리카는 유일하게 군대가 없는 국가다. 적어도 누군가와 총 뿌리를 겨누고 싸워야 한다는 불안감이 없는 도시 산호세.


어이! 여보게, 

여기 술 한잔만 가져다 주게 

SAPANTAㅣROMANIA


행복한 삶에 대한 평가는 결국 죽음에 가까워서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행복한 삶이 있다면, 행복한 죽음도 있어야 마땅하다. 누군가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역시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루마니아의 작은 시골 마을 사판차는 가장 유쾌하게 죽음을 기억하는 곳이다. 상실의 아픔을 유머로 승화시킨 곳. 사판차의 유쾌한 묘지(Merry Cemetery)다.


사판차 마을의 공동묘지에는 푸른 빛의 묘비가 가득하다. 당연히 무채색이어야 할 묘지가 형형색색 빛나게 된 것은 1935년 한 청년이 오크 나무로 묘비를 제작해 무덤 앞에 세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사판차 마을은 옆 집 숟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 서로 알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이런 마을에서 비밀이 있을 리 만무했다. 마을 사람 중 누가 죽으면 온 마을이 알았고, 함께 슬퍼하는 곳이었다. 묘비에 색칠을 했던 청년도 죽은 이들의 성격이나 사연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망자의 묘비에 유머러스 하면서도 진솔한 문구를 새기기 시작했다.


오크 나무로 만들어진 푸른 묘비에는 망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나, 칭찬, 때로는 잘못한 일까지 적어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묘비에 적힌 문구를 보며 죽은 사람을 회상했다. "맞아. 이 사람은 이랬지." 이 묘지가 특별한 것은 단순히 유쾌하고 웃겨서가 아니다. 한 사람 이웃의 인생을 기억하려는 노력과 죽음 하나를 쉽게 흘려 보내지 않는 마음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사판차 마을 사람들은 죽은 이웃을 아래와 같이 기억한다.


"시비우에서 온 망할 놈의 택시야, 루마니아 땅이 이렇게 넓은데, 하필이면 우리 집 근처를 지나서 나를 치고, 우리 부모님을 슬프게 하냐! 지옥 불에나 들어가라!"


"내 이름은 포프 그리오게. 트렉터는 나의 기쁨, 슬픔은 와인에 빠뜨렸어. 나는 힘들게 살았어. 아버지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지. 그건 운명이었어. 죽음이 나 또한 일찍 데려갔지. 내 나이 겨우 33살에."


"내 이름은 스테판. 나는 사는 동안 술을 참 좋아했어. 아내가 떠났을 때는 너무 슬퍼서 술을 마셨는데, 이상하게도 마시면 마실수록 행복해졌지.뭐 술을 같이 마실 친구들이 있어 오히려 좋았어. 근데 이보게. 나 여전히 목이 마르다네. 거기 누구, 나에게 술을 조금만 갖다 줄 수 있겠나?"


글│아트래블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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