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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RAVEL Feb 27. 2018

어떤 침묵과 별난 명상가들

ARTRAVEL VOL.26

어떤 침묵과 별난 명상가들

PLACE FOR SILENCE

아트래블 편집부




세상에서 가장 마주하기 껄끄러운 사람이 있다.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으며, 오래전 숨겨 놓았던 너저분한 감정까지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 그러나 살면서 한번은 마주해야 하는 사람이다. 바로 자기 자신. 좋은 모습들은 모두 끌어다가 겉모양을 치장하는데 다 써버리고, 찌꺼기만 남아있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일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여기,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적인 방식도 좋고, 뭐 다른 정신적인 방식도 좋다. 혹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방법도 괜찮다. 그들의 여행지는 자신의 내면 세계다.


떼제 공동체

TAIZE COMMUNITYㅣTAIZEㅣFRANCE



평화와 화해의 명상 공동체 떼제. 1940년 개신교 수사 로제가 프랑스 중부 도시 떼제에 만든 공동체다. 사실 로제 수사가 처음부터 공동체를 만들려고 작은 도시 떼제에 온 것은 아니었다. 결핵에 걸려 전원마을로 요양온 것. 그러나 성직자로서 그는 지나치지 못할 시대의 부름을 받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고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대인과 집시 등 나치의 타깃이 된 민족들은 살기 위해 어디로든 숨어들어가야 했다. 로제는 떼제에 수도원 공동체를 만들어 난민들을 숨겨 주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떼제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떼제는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를 융합해 놓은 종교 단체로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곳. 공동체 안에서 사유 재산은 가질 수 없으며, 오직 노동에 의해서 생산된 음식만 먹는다. 이곳에서 노동은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노동을 명상의 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일을 하며 기도문을 읊조리거나, 성경의 한 구절을 되뇐다. 성경에 따르면 노동은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진 벌이자, 신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떼제의 명상 예식은 언제나 평화의 기도로 시작한다. 대표자가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는 이웃의 평화와 안녕을 간구하는 기도문을 낭독하면, 다른 공동체원들은 짧은 성가로 답한다. 그리고는 긴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신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침묵의 시간 중간중간 대표자가 짧은 성가를 선창하고, 공동체원들이 제창하는 형식이 반복된다. 이 역시 기독교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방식이다. 음악의 선율이 영적인 계시의 통로라고 믿기 때문이다.


노동, 평화의 기도, 침묵, 음악으로 하는 명상. 어느 수사는 말했다. 천국은 사후에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마음에 찾아오는 평화라고. 떼제에서 말하는 마음의 평화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과 자연에 평화가 깃들 때, 진정 천국이 이 세상에 도래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종교, 인종, 성별, 나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동체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절차도 까다롭지 않다.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신청서를 작성하기만 하면 된다. 단, 노동은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땅에서는 진실이 돋아 나오고 하늘에선 정의가 굽어 보리라.

<시편 85편> 중에서


ADDRESS The Taize Community, 71250 Taize, France

WEB www.taize.fr/ko

RESERVATION meetings@taize.fr


암리차르 황금 사원

AMRITSAR GOLDEN TEMPLEㅣAMRITSARㅣINDIA




시크교는 15세기 힌두교와 이슬람 사상이 융합해 탄생한 종교다. 영국 밴드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이 심취했던 종교로도 유명하다. 시크라는 이름의 유래에 관해 두가지 가설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교육 또는 학습을 가르키는 단어 시스야(Sisya)에서 왔다는 설과, 가르침이라는 뜻의 단어 식사(Siksa)에서 유래됐다는 설. 무엇이 정답이든 배움과 가르침이라는 단어에 묘한 접촉점이 있으니, 시크교의 정신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다. 시크교의 핵심은 개인의 수행과 명상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인도 암리차르의 황금 사원은 시크교의 성지다.


시크교의 창시자 나나크 데브가 명상하던 자리에 세워진 황금 사원은 약 400kg에 달하는 순금으로 뒤덮인 사원이다. 겉 모습만 보면 감히 사원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휘황찬란하다. 그러나 황금 사원은 누구나 들어와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종교가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명상하는 것도 괜찮다. 시크교에는 독단적인 신조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의 신념도 받아들인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방식과 형태로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도를 다녀온 배낭여행자가 말하길, 인도 암리차르에선 숙소를 따로 잡을 필요가 없다 했다. 황금 사원에서 숙식을 모두 제공해 준다고. 그렇다. 황금 사원 안에는 24시간 식당도 있고, 숙소도 있다. 예약이나, 숙박료도 필요 없다. 그냥 들어가서 먹고 자면 된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이 질릴 때면 사원 정문에 앉아 있으면 된다. 사원을 방문하는 시크교도들은 사원 앞에 앉은 나그네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당장 손에 쥔 음식이 없으면 근처 가게에서 먹을 것을 사와 전달해 주기도 한다.


암리차르 황금 사원에선 오롯이 명상에만 집중 할 수 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면 되는 곳이다. 그렇다고 종교의식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 세계에 집중하면 된다. 그것이 진리여도 좋고, 아니면 또 어떤가. 황금 사원에서의 명상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다지는 일이다.


아무것도 나의 세계을 바꿀 수 없어. 스승이시여, 진정한 깨달음을 주소서.
Jai guru deva om

비틀즈 <Across The Universe> 중에서


ADDRESS Golden Temple Rd, Atta Mandi, Katra Ahluwalia, Amritsar, Punjab 143006


플럼 빌리지

PLUM VILLAGEㅣBORDEAUXㅣFRANCE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명상 공동체 플럼 빌리지. 이곳에서 출가한 승려만 천 명이 넘고, 세계 8곳에 웬만한 대학교 캠퍼스만한 플럼 빌리지가 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젊은이들은 적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3개월까지 이 마을에 거주하며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공동체이지만 내부 건물들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전자기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자연을 감각하며, 침묵 속에서 자신을 만나는 것이 이곳 플럼 빌리지의 명상이다.


플럼 빌리지의 시작은 프랑스 보르도 지방 한 시골마을의 작은 외양간이었다. 베트남 출신 승려 틱낫한을 비롯한 12명의 승려가 외양간을 개조해 명상을 하기 시작한 것이 전부였다. 이들은 경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피폐해진 유럽인들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유럽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정신과에서 치료하지 못하는 병을 고치는 곳으로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플럼 빌리지에서 특별한 의료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침묵의 시간을 주었고, 적당한 노동과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인도해 준 것이 전부였다. 사실 당시 유럽에서 종교적 치료행위라함은 귀신을 내쫓는 엑소시즘 같은 것이었다. 강하게 몸속의 귀신을 몰아내고, 병을 치유 하는 방식. 그러니 틱낫한이 제시한 치유 방법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나무라지도 않고, 인간을 개조하려 들지도 않았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플럼 빌리지에서 치유를 경험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게 되거나, 보지 못하는 사람이 보게 되는 기적적인 신체적 치유가 아니다. 사람들이 치유 받은 것은 마음의 병이었다. 자신이 가진 우울과, 고독, 질투 등의 근원을 명상을 통해 찾아냈다. 스스로를 얽매이던 감정들을 찾아 추스르고 나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 것. 지금도 전세계에서 마음의 병을 지닌 사람들이 몰려온다. 플럼 빌리지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이 치유되고 있다.


자세히 보라 / 나는 매순간 도착하고 있다
봄날 나뭇가지에 움트는 싹 / 새로 만든 둥지에서 노래연습을 하는
아직 어린 날개를 가진 새 / 돌 속에 숨어 있는 보석그것들이 바로 나 자신이다

틱낫한 시 <세상을 떠나는 자의 시> 중에서



ADDRESS Meyrac, 47120 Loubès-Bernac, France

WEB plumvillage.org


휴메니버시티

HUMANIVERSITYㅣEGMONDㅣNETHERLANDS



명상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꼭 침묵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고 눈물겨운 명상 공동체가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약 한시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도시 에그몬드의 휴메니버시티다. 사람을 만드는 학교라는 의미의 이 공동체는 상처 입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만들어졌다. 불교나 시크교처럼 고도의 정신 수양 방법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내면의 아픔을 끄집어 낸다.


명상 시간이 되면 둘씩 짝을 짓는다. 그리고는 서로를 보며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한다. 처음 그 광경을 마주한다면 분명 웃음이 날 것이다. 명상을 하는 당사자들도 처음에는 어색한지 멋쩍게 웃는다. 하지만 웃음도 잠시다. 이내 여기저기서 울음 섞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한쪽에선 춤을 추는 사람도 있다. 가슴에 묵혀 두었던 아픔과 슬픔, 괴로움, 분노의 소리와 몸짓이 커다란 강당을 가득 메운다. 보이지도 않는 감정이 이렇게나 무섭고 섬뜩하다. 또 가엾다. 인생을 살아가며 수없이 억눌러왔던 감정의 모양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러니 현대인이 병에 걸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휴메니버시티 사람들의 명상은 결국, 자신의 불안을 인정하고 공표하는 일이다. 자신의 앞에 선 사람에게 가장 깊고 어두운 감정을 꺼내 놓는다. 한번도 보여준 적 없던 마음이 이곳에서 나체 상태가 된다. 그렇다고 창피할 것은 없다. 앞에 선 사람도 이미 마음을 벌거벗은 채 서 있으니. 모두의 마음이 나체 상태가 되어서야 겨우, 한 차례 명상이 끝난다. 따듯한 포옹을 나눈 뒤, 이제 마음 한 켠의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우는 일을 시작한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이야말로 인간의 속성이라 했다. 혹여 누군가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는 말들, 사회에서 도태될까 매일 밤 자신의 한계를 넘어가며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일상의 모든 순간이 불안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키에르케고르가 낸 불안에 대한 해답은 하나였다. 자신이 태어날때부터 불안한 존재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휴메니버시티의 사람들은 오늘 한 뼘 더 자유로워 지고 있다


당신이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네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그 자리에서 그냥 서 있거나,
혹은 그들에게 다가갈 수도 있죠.
휴메니버시티의 치료법은 사람에게 다가서는 것입니다.

휴베미버시티 교장 베레쉬


ADRRESS  Humaniversity, Dr. Wiardi Beckmanlaan 4, 1931BW Egmond aan Zee, Netherlands

WEB www.humaniversity.com





글│아트래블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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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artrav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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