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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RAVEL Mar 30. 2018

그러니까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졌습니다_2/2

ARTRAVEL VOL.25

그러니까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졌습니다 

부탄 | 최갑수


ⓒ최갑수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부탄은 불교국가다. 부처가 세운 나라다. 국민의 거의 100%가 불교 신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부탄의 불교는 8세기경 인도 북부에서 태어난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가 전했다. 거리 곳곳에는 불경을 적은 깃발인 룽다가 펄럭이고 사람들은 곳곳에 설치된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다. 팀푸 중앙에 3대 국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거대한 탑인 메모리얼 초르텐(Memorial Chorten)이 있는데, 팀푸 사람들은 출근할 때 이 탑을 세 바퀴 돌고 퇴근할 때 다시 세 바퀴 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토록 간절한 걸음과 아득한 눈빛은 본 적은 없고 그토록 행복한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부탄 서부 지역 왕디(Wangdue)에 자리한 네젤강 사원은 부탄 불교의 시원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부탄의 불교는 티베트 불교에 인도의 불교가 더해진 것으로 주문과 주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밀교다. 파드마삼바바는 경전을 부탄 곳곳에 숨겨놓았는데 네젤강 사원은 그 가운데 하나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왕디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한 사원은 고요하면서도 장엄하게 서 있다.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사원은 아마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그다지 모습이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곳에 머물며 수행하는 스님들이 읊조리는 경전 역시 당시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사상가 다치바나다카시는 그의 책 「사색기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역시 이 세상에는 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직접 그 공간에 몸을 두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그런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육체를 그 공간에 두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부탄의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백과사전과 인터넷에서 파드마삼바바와티벨 밀교의 계보를 파악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직접 부탄의 사원을 찾아가 '옴마니반메옴'을 발음해 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부탄 불교의 경건함과 비밀스러움은 절대 문자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때로는 하나의 경험과 학습을 위해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최갑수


ⓒ최갑수


ⓒ최갑수



부탄 불교의 하이라이트는 탁상사원이다. 부탄을 찾는 모든 여행자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불교를 전파하러 부탄에 온 파드마삼바바가 이곳에서 수행하며 명상에 잠겼다. 해발 3,120m 지점,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탁상상원은 부탄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2시간쯤 트래킹을 해야 닿는다. 만만한 길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무거운 걸음을 떼며 이곳에 오른다.


어쩌면 당신은 탁상사원에 오르는 동안 마음을 찾을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나무 그늘에서 쉴 때, 까마득한 산 속에 만들어진 라타(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세워놓은 만장)를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결핍이 간절함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에 대한 결핍이 간절함을 낳고, 그 간절함이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행복 앞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건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당신에 대한 결핍이 당신을 가능하게 하고 당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처럼.


탁상사원에서 내려와 머문 파로의 숙소에서,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지구 반대편에 있을 당신을 생각했다. 당신을 생각하며 부탄의 진한 맥주를 마셨다. 맥주는 달지는 않았지만 쓰지도 않았다. 그냥 맥주맛이었을 뿐이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아마도 그러했으리라. 모든 것이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불행하지도 않았으리라. 어쨌든 당신을 만난 후 마음이라는 게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사원의 종소리처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제 승패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글러브를 벗고 조용히 마운드를 내려와 끝없어 어두워져가는 산맥을 바라보며 맥주나 마시고 싶다. 당신을 끌어안고 포도를 까먹으며 인생을 낭비하고 싶다.


나는 당신에게 "이제 그곳은 아침이겠군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썼다. "여기는 어둡습니다. 당신은 어느 시간에 계신지요. 당신을 생각하며 비 내리는 산장에서 찬 손을 비비고 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봄이 더 깊어지겠지요. 어서 돌아가렵니다. 당신과 함께 그곳의 봄을 함께 걷고 싶으니까요. 당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감쌌던 그 밤의 기쁨과 설레임이 아직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답니다. 사원으로 가는 길, 산허리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길 끝에는 당신이 서 있더군요. 당신 생각이 멀리까지 밀려갔다 밀려왔던 오늘이었습니다. 당신 생각의 끝에서 끝까지 바람이 불었던 오늘이었습니다."


펜을 내려놓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한 사랑을 그리워하며 먼 산맥을 바라보는 한 사내가 있다. 그의 앞에는 맥주잔이 놓여있고 사내의 눈은 그리움과 설레임으로 젖어있다. 어떤가 그다지 나쁜 인생은 아니지 않는가. 이만하면 행복하지 않은가. 나는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최갑수
ⓒ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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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천천히 돌아봅니다. 전봇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고 단골 카페의 입간판도 제자리에 서 있습니다. 600번 버스는 여전히 잘 다니고 있고요. 저물 무렵이면 같은 농도의 노을이 거리를 보랏빛으로 물들입니다. 자전거를 세우고는 팔짱을 끼고 이 풍경을 바라보며 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군,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는 집 앞 슈퍼마켓에서 맥주 두 캔을 사서는 핸들에 매달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죠. 삐걱삐걱. 페달을 밟다보면 '존재에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어. 그냥 고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지 뭐'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하루가 가고 우린 그 시간 속에 조용히 서 있다 어느 날 사라지는 거죠. 그런거죠. 네 그런 겁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네요. 그동안 우리는 조금 더 낙관적이 되었고 조금 더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그리움을 만들었지만, 그리움을 그리움대로 남겨두는 법을 배우게 됐습니다. 그리움이 커져 하나의 큰 파도가 되고 그 파도가 내 앞으로 스스로 밀려들어 우리의 발목을 따뜻하게 적실 것이라는 걸 알게 됐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졌습니다.


ⓒ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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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갑수

사진│최갑수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www.artrav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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