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TRAVEL Jul 04. 2018

지도를 따라, 사라진 집으로

ARTRAVEL VOL.27



지도를 따라, 사라진 집으로

바르팍 │ 네팔 │ 윤경호 



ⓒ윤경호


그러나 당신의 웃음소리는 멀리 퍼지지 못했다. 


당신과 함께 울고 싶었던 건 오직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무덤처럼 솟은 집터를 바라보며 당신이 웃는다. 나도 따라 웃어보지만, 그것이 퍽 서툴렀음을 꺼내는 순간 깨달았다. 당신 몰래 무덤으로 걸어가 널브러진 벽돌을 집어 든다. 찢어진 채 파묻힌 몇 벌의 옷도 꺼냈다. 땅을 고르고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 당신의 집을 그려 보았다. 엉성하고 성긴 집이나마 지어보고 싶은 건, 떠나온 내가 머문 당신께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단란한 가족이었을 것이다. 당신의 눈가에 깊게 팬 주름이 말했다. 다정한 주름이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다. 아이가 뛰어놀았을 당신의 눈가. 기꺼이 손자의 장난감이 되어 주었을 당신의 주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이 황망한 무덤가에 당신의 주름만 가지가 무성하다. 옷깃의 올을 풀어 해진 옷을 기워 보았다. 빗물에 씻어 엉성하게 쌓아 올린 벽에 걸어 둔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세 명의 가족이 이곳에 묻혔다며 당신이 웃었다. 채 아물지 못한 바닥 위로 아직 다 짜내지 못한 빗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윤경호


천천히,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2005년 네팔 대지진의 진앙인 고르카 지역. 도로마저 끊겨 반나절을 걷지 않으면 세상과 이어질 수 없는 산간 마을 바르팍. 해발 2,000m에 자리 잡은 마을은 그간의 고립을 증명하듯 다가가려는 발걸음을 저만치 밀어냈다. 이미 슬픈 마음으로 나선 걸음은 밀어낸 만큼 밀려나며 지친 무게를 더했다. 한나절이 넘는 이동이야 여행자에겐 숙명 같은 일일 텐데. 대책 없이 길을 나서던 미련한 여행자에겐 더욱 익숙한 일이었는데. 불의의 사고를 당한 옛 친구의 문병을 가는 것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이미 꺼진 네 마음을 향하는 여정인 듯 길이 멀다. 


당시 네팔은 인도와의 분쟁 문제로 연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대중교통의 운행횟수가 줄어 모든 버스엔 사람이 만원이었다. 시내를 벗어나 깊은 산골을 향하는 버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의 남자는 버스 위 짐칸에 짐짝처럼 쌓였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라는 친절한 배려를 극구 사양하고선 버스 위로 올랐다. 체력이야 어쨌든 나도 남자니까. 근력이야 어찌 되었든 나도 어른이었으니까. 여행자라고 해서 그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고 싶지는 않았다. 


버스는 절벽을 깎아 만든 거친 비포장도로를, 곳곳의 산사태로 인해 더욱 위태로워진 길을 사정없이 달렸다. 반대편에 앉은 청년들은 버스가 절벽을 향해 기울 때마다 내팽개쳐지는 몸을 두 팔로 겨우 버티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꼭 안전띠가 없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서로 마주 보며 흥분된 웃음을 짓고 유쾌한 함성을 질렀다. 이런 대담한 청년들이 있나. 그러나 감탄은 거기까지. 버스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바위틈 사이로 곤두박질치려는 나 역시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옆에 앉은 할아버지와 나는 수시로 나가떨어질 뻔한 몸을 붙잡아 주며 서로의 은인이 되었다. ‘우리 방금 죽을 뻔했어!’ 흥분된 표정으로 웃으며 나이를 잊고 고단함도 잊고 우리는 대담한 청년이 되었다. 서로의 안전띠가 되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생을 의지하며 달리는 버스는 낯설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 친밀감이 고단한 여정을 달랬다. 물론, 팔이 저릴 만큼 아찔하긴 했지만. 


ⓒ윤경호


반나절을 달려 내린 곳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마을을 향하는 산길의 초입이었다. 힘껏 기합을 넣고 산행을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없던 체력이 생겨날 리는 없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내게 그들은 “비스탈리, 비스탈리” 하고 말했다. 천천히, 천천히, 그러나 계속해서 걸으면 언젠간 도착할 것이라며, 더딘 걸음에 그들의 속도를 맞춰 주었다. 느리게 걷자고 스스로 말하곤 했지만 그건 자주 주저앉고 쉽게 포기하던 박약한 의지에 대한 핑계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내키는 대로 걷다 금세 주저앉아 버리고는 그제야 보이는 주위의 풍경에 자신을 달래곤 했다. 그래, 이만하면 됐지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그래도, “비스탈리, 비스탈리” 그들의 말을 아이처럼 종알거리며 멈추고픈 마음을 추슬러 본다. 나의 느린 걸음 탓에 해가 지고도 산행을 이어가야 했지만, 어느새 일행이 되어버린 그들은 내색도 하지 않고 힘을 준다. 천천히,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곳곳에 팬 생채기가 부끄러웠던 것인지 산은 서둘러 어둠의 옷을 껴입었다. 어둠이 깃들어도 산은 그대로였을 테지만, 나는 어둠보다 빛에 의지하던 이유로 가파른 비탈의 산길은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의 골짜기가 나를 응시하는 듯했다. 그들의 꽁무니를 쫓으며 두려운 마음을 잊어본다. 손을 꼭 쥐고 엄마의 뒤꽁무니를 쫓으며 낯선 시장통을 헤쳐 나가는 아이처럼, 그들의 든든한 뒷모습과 자주 나를 돌아보며 길을 터주던 다정함에 기대 낯선 어둠의 시선을 가로질렀다. 


얼마나 걸었을까. 휴대폰 불빛에 의지한 채 가파른 산길을 거듭 오르자 드문드문 희미한 불빛들이 멀리 보였다. 그곳에서 들려오던 흥겨운 노랫소리가 아니었다면 그저 반짝이는 별빛이 저 아래까지 펼쳐진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런 마을이었다. 어둠이 산의 경계를 지우면 무엇이 별빛인지 무엇이 불빛인지 구분할 수 없는 히말라야 언저리의 마을. 하늘을 자주 바라봐야겠다는 다짐 같은 건 애초에 필요하지 않을, 이미 하늘에 지어진 마을, 바르팍이었다. 


그러나 흥겨운 노랫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낯설었다. 나도 모르게 그곳이 깊은 슬픔으로 잠겨 있을 거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건 나의 이기적인 바람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슬픔을 보며, 나의 슬픔이 위로되길 바라는 좀스러운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한가하게 아파하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설픈 나의 슬픔과 상관없이, 직면한 처절한 현실을 견뎌야 했을 테니까.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나의 슬픔만 제자리였다는 걸 알았다. 우리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왔음을, 아니 나만 멈춰 있었음을 알았다. 시험 범위를 착각한 수험생의 난처한 마음이 되어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멀리서 찾아온 나를 반기는 마을 사람들의 환대와 환한 웃음에 서둘러 부끄러운 마음을 숨긴다. 소복한 밥을 받아 들고 환영의 노래를 들었다. 추운 밤이었지만 손을 뻗으면 그득한 온기가 곁에 있었다. 


ⓒ윤경호


늦은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은 무너진 집 근처를 향하지 않았다. 아직, 여진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공포와 절망이 여전히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조심하라며 재차 당부하던 염려를 등에 지고 무너진 집터를 향했다. 처참하다고 말할 수도 없게 이미 땅이 되어버린 집들. 돌 틈 사이 파묻힌 몇 벌의 옷들만이 이곳이 집이었음을 증명했다. 어느 포근했던 보금자리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쉬이 돌이킬 수 없을 어느 평온했던 하루, 그 하루가 자꾸만 떠올라 걸음을 멎게 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모두 놀라 이 비탈을 뛰어 내려갔어.” 절벽처럼 가파르게 깎인 비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3일간의 고립. 온통 두려움으로 젖은 채 맨몸으로 견뎌 내야 했을 고통의 시간. 내리는 비를 맞고 바람을 견디며, 추위와 허기 속에서 흘러간 절망의 하루들. 누군가는 떠났고 남은 이는 오래 앓아야 했을 것이다. 여전한 아픔을 잊어보려 사람들은 그렇게 자주 웃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을 따라 서투른 웃음을 지어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응원일 뿐이었다. 


모든 상처는 결국 내가 된다. 잊은 듯 살아가도 결국은 내 몸 어딘가,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문신처럼 새겨져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불면의 밤들과 수시로 머문 자리를 벗어나고 싶던 여행의 갈증이 이미 내가 된 상처의 증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안을 들여다봐야 하는 거라고. 어딘가에 새겨진 상흔을 찾아 어루만져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아물지 않은 그날의 상처가 당신을 얼마나 바꿔놓았을지, 뒤바뀐 당신의 삶을 바라보면서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당신이 간직한 상처는 너무 깊이 파여서 그저 모른 척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매만지는 것이 어쩌면 새로운 상처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잊히지 않을 것이지만 부디 그 상처를 닮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급하게 지어진 움막은 끼니때가 되면 자욱한 연기로 빈틈이 없었다. 멀쩡한 마을 사람들과 달리 눈물 콧물을 찔끔거리며 소복한 밥과 채소가 담긴 쟁반에 얼굴을 파묻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눈물이 난다는 말을 미안해하지 않고 꺼낼 수 있었으니. 밥을 떠넘기는 만큼 착잡하던 마음을 비워낼 수 있었으니. 그들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관심일 뿐이라고 말했다. 무능한 정부는 대답이 없고 사람들의 관심에 그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주저하던 마음을 접어둔 채 마을 사람들의 거친 손과 따스한 눈빛을 텅 빈 배낭에 담는다. 늦은 마음으로 그 시간을 뒤쫓는다. 천천히, 천천히, 그러나 잊지 않고. 


ⓒ윤경호
ⓒ윤경호


밤은 투명하다 


조악한 어둠이 히말라야의 설산을 타고 눈처럼 내리면 분설 같은 밥알이 봉우리처럼 소복이 쌓였다. 조급한 바람이 집도 없는 마을을 서둘러 찾으면 휘청거리는 촛불 아래로 오래 삭은 육포가 소박한 종지에 담겨 귀한 손님에게 내어졌다. 씹어도 물러지지 않는 육포를 질겅거리며 불어도 꺼지지 않을 그들의 얼굴을 두 손에 새긴다. 두 개의 촛불이 길을 밝히고 다시 하나의 촛불이 길을 밝히고 나는 끝없는 초대가 반가워 눈을 감고 빛을 따른다. 이가 아픈 줄도 모르고 물러지지 않을 그리움을 꼭꼭 씹어 뼛속에다 새긴다. 


그리고 그가 웃으며 울었다. 당신의 멍울진 가슴은 나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한 굳은살 같았다. 흔들리는 촛불 위로 일렁이는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니 세상이 온통 뿌옇다. 빗물이 나뭇가지를 적시고 소복한 눈덩이에 자국을 남긴다. 그제야 나는 그 웃음을 이해했다. 어찌 울고 싶지 않았겠는가. 울기는 쉽다. 다만 그 울음을 그치는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겪어 보았기에 그 깊은 주름에 슬픔을 숨기고 허탈한 웃음으로 아픔을 게워내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처절하게 참아낸 울음이었을 것이다. 


그날, 아이처럼 울다 지쳐 잠이 든 그를 두고 바라본 새벽하늘엔 별이 참 많았다. 투명한 술에 얼룩진 술잔처럼 추운 줄도 모르고 차가운 이슬을 밟았다. 별이 이토록 많은 건 저곳에도 수많은 그와 그들이 초를 들고 어둠을 밝히고 있는 것이리라. 돌아가면 양초를 한 다발 사 그리울 때마다 불을 피우리라. 불어도 꺼지지 않을 뜨거운 별을 피우리라. 그럼에도 그리울 땐 햇반을 돌리고 가장 딱딱한 육포를 장만해 그가 더는 울지 않기를 바라며 질겅질겅 오래도 씹어야겠다. 


부디 어둠에도 지지 말고 그 투명한 눈물에도 지지 마시라. 울어서 달라질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울어서 개운해질 마음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미 울보가 되어버린 내가 당신을 대신해 울 테니 당신은 그저 그 깊고 아량 넓은 주름 속에 떠나간 아이와 남겨진 아이를 품고 다시 무덤으로 걸어가 벽돌을 올려 주시라. 고개를 들면 그곳에도 당신과 같은 별들이 셀 수도 없이 빛을 내고 있을 테니, 나도 하나쯤을 보태고 있을 테니. 


아침 햇살이 추위에 얼었던 몸을 데우고 간밤의 그을림을 지운다. 하얀 구름이 걷히고 그보다 새하얀 설산이 부은 눈을 쓰다듬었다. 하루만큼 자라난 유채꽃밭을 걸으며 아이들의 샛노란 웃음소리를 들었다. 아이들도 하루만큼 피어났다. 저마다의 움막에선 이슬을 잔뜩 머금은 장작을 태우며 뿌연 연기를 몰아내기 한창이었다. 얼룩진 베개를 햇살 아래 널어놓고 그가 웃는다. 나도 따라 노랗게 웃었다. 


ⓒ윤경호


그립다 말을 하면 견딜 수 있었다 


마당을 뒤덮은 은행나무 잎이 행여 다칠까 조심스럽게 무게를 덜어 떠났던 발걸음은 십일 남짓한 시간에도 천근의 무게를 얹어 돌아왔다. 돌아오니 겨울이다. 떨어진 낙엽들은 미련만을 남긴 채 사라졌고 어느새 수북이 쌓인 눈은 그 미련마저 녹여 차가운 땅 밑으로 스몄다.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혀 두 손으로 움켜쥔 눈덩이에선 어쩐지 푸석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제 신발 따위 젖어도 상관없으니 더욱 터벅거리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텅 빈 방문을 열고 무거운 짐을 탈탈 털어내고, 그렇게 여행은 끝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며칠을 앓았다. 계속된 고된 여정 때문이었는지, 좀체 생겨나지 않는 식욕에도 꾸역꾸역 삼켜냈던 거친 식사 때문이었는지, 차가운 바닥의 냉기가 몸 안으로 스며든 것이었는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아파야 할 이유가 충분했으므로 차가운 바닥에 앉아 미지근한 소주를 기울이고 뜨거운 담배를 꺼냈다. 나는 당신을 앓는 것이리라. 그러니 이 아픔은 분명 달가운 것이었다. 


당신의 이야기는 너무도 단단해서 번번이 목에 막혔다. 수차례 꺼내보려 했으나 다시 삼키고는 눈시울만 붉혔다. 빛나는 당신의 탓이었다.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누군가의 투명한 시선 때문이었다. 허나 속으로만 삼키던 말들을 이제 입 밖으로 꺼내야 할 것이다. 주저하던 마음을 쓰다듬고 환하게 웃는 당신의 얼굴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느리지만 또박또박 당신을 말하려 한다.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난다면, 눈물로라도 당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당신을 꺼내두고 그립다 말을 하면, 나는 다시 그곳에서 숨을 쉬었다. 


여행이란 하나의 삶을 선물 받는 것이라 여겼지만, 세 번의 여행에도 아직 그곳에서의 삶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겠다. 엇나간 시간을 되돌리고 우리의 다음을 향해 웃음 지어본다. 당신의 얼굴이 천천히,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윤경호


글│윤경호

사진│윤경호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www.artravel.co.kr


매거진의 이전글 ARTRAVEL VOL.3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