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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진 May 28. 2020

하늘을 보는 까닭

한승원 & 고흐

한승원 시집 [달 긷는 집]을 펼쳤다. 토굴 다담 18번째 시.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에 꽂힌 책갈피를 집어 들었다.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그 한복판에 수직으로, 수직으로만 상승하고 있는

새 아닌

한 마리가 거기 있어서입니다.


첫 번째 연을 읽고 나니,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 밭 그림이 생각났다. 저 멀리 상승하고 있는 까마귀 무리. '수직'이라는 단어를 보아서 일까, 검게 그린 까마귀는 우울해 보이지 않고 상승하는 듯 '생명력'이 있어 보다.

Van Gogh, Wheatfield with Crows, 1890 oil on canvas, Van Gogh Museum, Amsterdam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하나가 거기 떠 있어서입니다.


고흐도 정신병원에 있을 때 창밖으로 본 별을 그렸다. 귀를 자르고 스스로 들어간 생폴 드 모졸 정신병원에서 바라본 밤하늘. 창밖은 산과 하늘,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힘차게 수직 하고 있다.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는 역동적인 하늘의 느낌을 준다. 그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나타낸다. 밤하늘이 푸른색이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색이 아닌 내면에서 선택한 색으로 칠했다.

Van Gogh, The starry Night, 1889 oil on canvas, Museum of New York

고흐의 나무는 생명력이 있다. 외롭고 괴로웠던 자신의 내적 고통을 이길 수 있다는 듯 힘차게 솟아 하늘과 닿아있다.


하늘을 보며 한승원은 연필을 들고, 고흐는 붓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가장 선하게 느껴지는 밤. 고흐는 하늘을 보며 자신의 감정을 밀도 있는 색채와 붓 자국로 표현했다.

Van gogh, 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 oil on canvas, 72.5x92cm Orsay Museum

내가 늘 하늘을 보는 까닭은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내가 최후에 남겨야 할 말 아닌

하나가 거기 있어서입니다.


하늘. 거기 떠 있는 말 하나. 지금 떠올려 보면 나도 그런 말 하나가 있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고등학교 시절. 창밖 밤하늘을 바라보다 편지를 썼다. 하늘에게 나 대신  말들을 전달해 달라 편지다. 주소 없었다.

하늘은 그 자리에서 매년 피고 지는 꽃을 바라본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생명들을 바라본다. 쓰러질 듯 힘겹게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틈이 되준다. 못다 한 말 한마디.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표현 수 있는 흰 캔버스, 백지 한 장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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