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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 Oct 19. 2022

루이 비통의 그녀, 쿠사마 야요이

Kusama Yayoi




쿠사마 야요이는 루이 비통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죠. 루이 비통은 1990년대 후반 미국인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아트 디렉터로 영입하면서 예술가들과 활발한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는데요. 무라카미 다카시에 이어서 쿠사마 야요이와 콜라보했어요. 2012년 쿠사마와의 콜라보 제품들 기억하시나요? 










당시 루이 비통은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의 ‘야요이 쿠사마 회고전’을 후원하면서 동시에 야요이와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품들을 뉴욕의 소호, 파리의 쁘렝땅 백화점, 런던, 도쿄, 홍콩, 싱가포르 등의 루이 비통 팝업스토어에서 판매했어요. 쿠사마 야요이의 트레이드 마크인 물방울무늬의 의상, 핸드백, 구두, 시계, 스카프 등 그녀의 작품과 콜라보레이션 된 제품들이 진열, 혹은 전시되고 판매되었습니다. 


사실, 저 물방울무늬를 보면서 땡땡이도 예술이 될 수 있는건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쿠사마의 저 물방울무늬는 그녀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쿠사마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종묘사업을 운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해요.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요. 늘 혼자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열 살쯤 되었을 때, 어느 날 식탁보의 빨간 꽃무늬가 공간 전체를 뒤덮는 환영을 본 후로 계속해서 꽃, 그물, 점의 형상들이 모든 사물, 그리고 그녀 자신까지 뒤덮어 버리는 환영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쿠사마는 오직 그림을 그릴 때만이 그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해요. 당시 어머니를 그렸던 그림을 보면 어머니의 얼굴뿐만 아니라 그림 전체에 물방울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그녀는 교토 시립공예미술학교에 진학해서 전통 일본화를 배웠지만, 일본화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때도 역시 점과 그물, 망사 패턴의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당시에 그녀의 그림이 일본 정신신경학회에 보고되었을 정도로 어린 시절의 환각증세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런 정신질환을 겪으면서도 그녀는 반드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고 말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작은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책을 보고 그녀에게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편지를 썼는데요. 오키프는 흔쾌히 그녀를 도와주었습니다. 


195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뉴욕에 도착한 쿠사마는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뿐만 아니라 미니멀리즘을 이끌었던 도널드 저드와 프랭크 스텔라 등을 소개받고 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게 되었어요. 미국에 온 지 18개월 만에 브라타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듬해 독일에서 열린 모노크롬 회화전에 마크 로스코와 함께 미국 대표로 참가하면서 미국과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무한 망 Infinity Net, 1959


1959년 첫 개인전에 출품했던 작품이에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작품이죠. 작품과 벽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그물망이 캔버스 가득 그려져 있는데요. 쿠사마가 직접 그린 그물망입니다. 이 그물망은 끝도 없이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그려진 이 무한 그물, 혹은 무한 망은 앞에서 보셨던 물방울무늬와 함께 쿠사마의 대표적인 작품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나르시스 정원 Narcissus Garden, 1966


쿠사마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어요. 1966년 제33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받지 못했던 그녀는 이탈리아관 밖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은색 거울 구슬들을 늘어뜨려놓고 ‘나르시스 정원’이라는 팻말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황금색 기모노를 입고 나타나서 “당신의 나르시시즘을 판매한다”라며 그 거울 구슬을 2달러에 팔기 시작했어요. 당시에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동양 여인에게 관심을 보이며 나르시시즘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하는데요. 이 퍼포먼스는 곧바로 전 세계 각 신문들에 대서특필 되었고 어찌 되었든 쿠사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쿠사마의 또 다른 설치 작업들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조각으로 불리는 작품들이에요. 1960년대 초반, 쿠사마는 자신의 옷을 뜯어 중고 재봉틀로 수많은 부드러운 남근상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것들을 캔버스나 가구 등 다른 사물들에 가득 붙여서 축적한, 집적 시리즈를 제작합니다. 


집적: 천 대의 보트 쇼 One Thousand Boats Show, 1963


1963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집적: 천 대의 보트 쇼’라는 작품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남근으로 가득한 보트 한대가 있고, 전시장 벽에는 999개의 보트 이미지가 빼곡히 붙어있습니다. 굉장히 강박적으로 반복하여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을 쿠사마는 성적 억압에 대항하는 자신의 의지라고 표현했어요. 기괴해 보이는 이 작품이 유명해진 또 하나의 이유는 쿠사마가 앤디 워홀이 이 작품의 컨셉을 카피했다고 주장하면서입니다. 워홀의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작업들이 언뜻 보면 이것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쿠사마의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이 작업들은 워홀이 팩토리에서 작가의 고유성에 도전하면서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했던 작품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한히 뻗어나가는 그물, 망사 모양이나 물방울무늬를 반복해서 그리는 행위,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할 당시에 만들었던 남근 모양의 집적 설치물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자신의 편집증적 강박증을 인정했습니다. 

1973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후 시, 소설 등 글쓰기에 전념하다가 1977년 그녀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어요. 병원 근처에 쿠사마 스튜디오를 열고 병원과 스튜디오를 오가면서 93세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뉴욕, LA, 런던, 도쿄 등에서 쿠사마의 전 세계적인 대규모 회고전이 연이어 개최됨에 따라 그녀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2000년 시드니 비엔날레, 2001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등 대규모 국제전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마크 제이콥스와 루이 비통 라인을 디자인하면서 대중적으로 더 유명해졌어요. 국내외 유명 미술관들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나 '무한 거울의 방'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셨을 것 같은데요. 작품에서 무한히 증식하는 점 혹은 형형색색의 불빛들은 그녀가 환영으로 보았던 점들, 그리고 공간의 개념을 관람객 또한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것 같습니다.


무한 거울의 방 Infinity Mirrored Room






“저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예술가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강박증 환자’라고 단언하죠. 끊임없이 반복되는 환영이 없어질 때까지 그림을 그린다는 쿠사마에게 어쩌면 예술은 없어서는 안 될 필연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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