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마티스는 1905년 그의 동료들과 함께 참여했던 살롱도톤전을 시작으로 야수파를 이끌게 됩니다. 강렬한 색채로 재현의 의무에서 벗어나 예술가 내면의 심리 또는 경험을 주관적인 색채로 표현하였습니다. 하지만 야수파는 예술가 개개인의 느낌, 개성을 중시했던 만큼 뚜렷한 공통점이나 원칙 없이 1906년 절정을 이루다가 점차 해체되었어요.
1913년에 그린 마티스 부인의 초상입니다. 이전의 화려했던 그림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 느껴지시나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13년부터 1917년까지 그의 작품에 다소 억누른 색채를 사용하면서 추상적이고 단조로운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전의 그림들에서 강렬한 색채로 그림에 생동감을 주었던 것에 반해, 이 그림을 보시면 어두운 색과 경직돼 보이는 인물의 모습이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시 마티스의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피카소의 분석적 큐비즘의 특징들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표현법을 실험했던 작품이라는 평도 있는데요. 실재 마티스와 피카소는 세기의 라이벌이기도 했으나 동료 화가로서 활발한 회화적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마티스는 약 10년간 니스에 머물면서 실내 풍경과 여인들을 그리면서 오달리스크 시리즈에 몰두했습니다. 이전 시기 와는 또 다른 특징들을 볼 수 있어요. 굉장히 장식적이고 화려한 공간과 관능적인 여성들의 모습을 그림에 표현했습니다. 오달리스크는 원래 터키 황제인 술탄의 여성 노예이자 애첩을 의미하는데요. 유럽의 화가들은 당시 이국적인 동양의 이 여인들에게 호기심을 갖고 오달리스크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동양적인 무늬의 패브릭 장식들과 고요하고 나른한 여성들의 모습이 마티스의 화려한 색채로 감각적으로 살아나는 듯합니다.
1930년 마티스는 미국인 컬렉터 앨버트 반스로부터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반스 재단의 벽화를 장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반스 재단은 1922년에 설립된 사립 재단으로 이미 그 건물 안에는 세잔, 르누아르, 쇠라의 그림 등 주옥같은 걸작들이 많이 걸려있었어요. 마티스는 재단 건물 중앙 홀의 한 벽면에 그의 작품 '삶의 기쁨'에서 가져온 모티프인 <춤>을 그렸습니다. 마티스는 이 작업을 구상하면서 처음으로 색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좀 더 단순하고 자유로워진 형태가 눈에 띄죠. 작품에서 추상적인 형태와 구성이 돋보입니다. 3년간의 작업 끝에 1933년 반스 재단 중앙홀에 설치된 이 작업을 통해서 마티스는 새로운 작품세계를 펼쳐 나가기 시작합니다. 색종이를 오려 붙여 작품을 구상했던 것에 착안하여 직접 작품에 색종이를 잘라 붙이는 ‘컷-아웃’ 기법을 만들어냈습니다. 과슈 물감으로 칠한 색종이를 가위로 잘라 다른 종이에 재구성하는 작업인데요. 1941년 암수술로 작품 활동이 어려웠던 마티스는 휠체어나 침대에 누워서 이 새로운 방법으로 작품 활동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마티스는 1943년부터 시작된 색종이 작업을 하나로 묶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1947년에 출간된 작품집 <재즈>에는 그의 작품과 함께 직접 적은 글들이 수록되어있어요. 책의 제목을 '재즈'라고 한 것은 그가 색종이를 오려 만든 작품들이 재즈 음악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즈의 표지로 사용된 작품 <이카루스>입니다. 그리스 신화인 이카루스 이야기에서 아카루스는 건축가이자 조각가, 발명가이기도 했던 그의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함께 아버지가 만들었던 미궁 속에 갇히게 됩니다. 아버지는 미궁에서 탈출하기 위해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이카루스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는데요. 이카루스는 너무 높이 날아오르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고 하늘 높이 날다가 결국 태양 빛에 밀랍이 녹아 바다로 떨어져 죽고 맙니다. 색종이의 단순한 형태로 빨간 심장을 지닌 이카루스의 모습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이카루스 혹은 인간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재즈’의 제한된 크기에서 벗어난 폭 3미터가 넘는 대작인데요. 폴리네시아 바다, 폴리네시아 하늘입니다. 역시 과슈를 칠한 색종이를 오려 붙여서 제작한 작품이에요. 색종이를 오려서 최소한의 표현 만으로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티스는 ‘가위는 연필보다 감각적이다’라고 했는데요. 이 컷-아웃 기법의 작업들은 마티스만의 굉장히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48년, 마티스가 머물고 있던 프랑스 남부지역의 방스에서 도미니크회 수도원의 요청으로 로제르 성당 건축에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마티스는 성당의 벽화뿐만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십자가 제단, 제의까지 모두 직접 디자인하고 작업했어요. 마티스 생애 모든 작업의 결실이라고 할 만큼 그의 노력과 열정이 집약된 예술 프로젝트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마티스 스스로도 이 성당을 “예술작품에 헌신한 전 생애의 완성”이었다라고 이야기했죠. 건강이 안 좋았던 노년의 마티스가 그토록 애착을 갖고 작업했던 이 성당은 그의 진지하고 힘겨웠던 예술적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당이 완성되고 3년 후인, 1954년 11월, 85세의 마티스는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벽화, 동판화, 직물 디자인 그리고 컷-아웃 기법의 작업들까지 다양한 작업 속에서 색채의 표현 가능성을 실험하고 완성해나갔던 마티스. ‘정확함이 진실은 아니다’라는 의미 있는 발언으로 20세기 미술을 이끌었던 위대한 색채 예술가 마티스의 작품에서 그의 삶과 열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