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앙리 마티스는 자연 또는 사물을 재현하는 기존의 미술에서 벗어나 화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색채의 사용으로 모더니즘의 한 형태를 이끌어냈던 예술가입니다.
마티스는 1869년 12월 31일 프랑스 르 샤토 캉브레지에서 곡물과 도료를 판매하는 아버지 에밀 마티스와 아마추어 화가인 어머니 안나 엘로이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률 공부를 하고 공증인 사무실에서 일했던 마티스는 스물한 살 때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죠. 루브르 박물관에서 푸생, 라파엘로, 샤르댕의 그림을 모사하고 연구하면서 1895년에는 프랑스의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티스는 죽기 직전까지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20세기의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마티스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 프랑스에서는 고흐, 고갱, 세잔, 쇠라 등 후기 인상주의 혹은 신인상주의 회화가 미술에서 지배적이었고 마티스는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쇠라에게는 시각적 효과를, 세잔에게는 회화적 구조, 반 고흐에게는 회화의 표현적인 차원, 그리고 고갱에게서 회화에서의 영적 환영의 가능성을 배웠습니다.
마티스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아직은 신인상주의 화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마티스만의 개성적인 표현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품 <사치, 고요, 쾌락>은 조르주 쇠라, 폴 시냑의 영향을 받아 점묘법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당시 쇠라와 시냑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색채를 분할하고 그것을 캔버스에 수많은 색점으로 찍어 그림을 그렸어요. 마티스는 생트로페에서 시냑을 만났고 그의 조언에 따라 점묘 화법을 실험했습니다. 하지만 시냑의 그림이 윤곽선은 사라진채 수많은 점들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면 마티스의 그림은 색점들과 함께 가늘고 굵은 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자연의 색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할하여 그렸다기보다는 마티스만의 독자적인 색채가 눈에 띕니다. 마티스는 이 그림에 대해 ‘순수한 무지개 빛깔로 그려진 그림’이라고 했는데요. 작품의 제목인 사치, 고요, 쾌락이 그의 색채를 통해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우아한 여인의 얼굴에 초록색 물감이 거칠게 칠해져 있는 이 작품이 바로 당시 포비즘, 즉 야수파를 탄생시켰던 작품입니다. 1905년 마티스는 그의 부인의 초상 <모자 쓴 여인>을 살롱 도톤 전에 출품했어요. 그의 화가 친구들인 드랭, 블라맹크 등과 함께 전시에 참여했는데요. 이 전시에서 비평가 루이 복셀은 “이것 봐, 야수들 사이에 도나텔로가 서있네”라는 말을 하면서 도나텔로의 점잖은 조각과 함께 전시되어 있던 마티스와 동료 화가들의 작품을 야수라 불렀습니다. 바로 이 전시에서 ‘야수파’가 시작된 것이죠. 작품을 보면 사물 또는 인물의 고유색에서 벗어나 화가 내면의 감정을 주관적인 색채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색이 더 이상 자연을 재현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복셀이 야수라고 불렀을 만큼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작품의 모델인 마티스의 부인조차 이 그림을 싫어했다고 해요. 화가 모리스 드니는 이 그림을 “고통스러울 만큼 현란한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티스는 이 그림을 시작으로 색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그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에 제작된 다른 인물화인 '마티스 부인, 초록색 선'과 '앙드레 드랭의 초상'에서 역시 자유로운 색의 사용과 붓의 터치를 볼 수 있습니다.
1906년에 제작된 <삶의 기쁨>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 역시 빨강, 노랑, 초록, 분홍 등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면서 마티스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 감동을 그림에 그려 넣었는데요. 하지만 이전 그림처럼 추해 보이기보다는 낭만적이고 관능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전 그림들에서 보였던 거친 붓터치는 사라지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화면 전체에 리듬감이 느껴지죠. 형태가 단순해지면서 인물과 자연의 추상성이 돋보입니다. 마티스는 이 그림을 다섯 달 만에 완성했다고 해요. 사실 각각의 인물들은 독립적으로 구상되었지만 이 작품에서 한 화면 안에 조화롭게 배치되었고 이후 다른 그림들에서 각각의 이미지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이 작품으로 마티스의 추함이 새롭게 인식되었다고 해요. 마티스가 야수파 시기에 그렸던 그림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1907년 앙데팡당 전에 출품했던 작품 <파란 누드>는 '삶의 기쁨'에서 비스듬히 누워있는 여인을 또 다른 모습으로 표현한 그림입니다. 파란 누드의 몸에서 알 수 있듯이 여인은 푸른색의 강렬한 색채로 표현되었고, 굵은 윤곽선과 함께 역동적이고 강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마티스는 야수주의에서 벗어나 작가 특유의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온통 강렬한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붉은색의 조화>라는 작품이에요. 벽과 식탁이 모두 같은 붉은색으로 그려져 있고 동일한 무늬가 반복되면서 공간 구분이 모호해졌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또한 액자에 걸려있는 풍경화처럼 보이면서 외부와 내부가 하나로 연결되고 있어요. 아카데믹한 원근법이나 명암법은 모두 버리고 마티스 특유의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느낌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는데요. 알제리 여행을 통해서 아라베스크 무늬에 관심이 많았던 마티스는 점점 평면적이고 단순화되던 그의 그림에 화려한 장식성을 더해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춤을 추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 역시 앞에서 본 작품 '삶의 기쁨'에서 화면 중앙에 멀리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이죠. 이 그림은 러시아의 한 컬렉터가 자신의 아파트를 장식하기 위해 특별히 주문했던 작품이라고 해요. 그림에서 형태는 더 단순해졌고 색채 또한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 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근법, 명암법이 없이 단순한 형태와 색채만으로 균형감 있는 구성을 통해 역동적이면서도 이전 그림에서의 삶의 기쁨, 환희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시기 마티스 작품의 특징인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장식적인 요소가 모두 담겨있습니다.
1908년에 출간한 <화가의 노트>에서 마티스는 “내가 꿈꾸는 것은, 주제를 우울하게 하지 않는 균형, 순수, 안정의 예술이다. 모든 정신노동자, 기업인, 문필가들을 위한 예술, 예를 들어 마음을 고요하게 위로하며, 육체적 피로에 휴식을 주는 좋은 안락의자 같은 예술 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티스의 그림들을 보면서 그가 추구했던 예술을 어떻게 표현하고, 실현해 나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