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_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미국 뉴욕 주에 위치한 허드슨 강변의 시골마을인 나이액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와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고 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상업미술학교에서 일러스트를 배우다가 뉴욕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회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 그는 수차례 유럽을 여행하면서 마네, 드가, 모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보았고 고야, 렘브란트 등 대가들의 그림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그들을 연구했습니다. 1924년 42세의 나이로 조세핀과 결혼을 했는데요. 그녀는 호퍼의 그림에서 ‘젊은 안내원’이나 비서, 누드 여인 등 여성인물 모델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호퍼를 20세기 미국 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이야기합니다. 그는 양차 세계대전과 경제공황에 따른 정신적인 혼란과 산업화의 성공이 가져다준 경제적인 풍요, 그리고 그 이면의 사회적인 모순을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었어요. ‘고독한 관람자’ 혹은 ‘침묵의 목격자’로 불릴 만큼 고독과 소외라는 주제를 통찰력 있게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오토 매트'는 당시에 자동판매기로 음식과 음료를 팔던 자급 식당입니다. 현대 기계문명의 진보를 보여주는 장소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에 한 여성이 조용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창밖을 보아 밤늦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이 여성은 당시에 유행하던 종 모양의 모자를 쓰고, 최신 유행의 미니스커트와 스타킹, 우아한 모피 코트를 입고 있습니다. 앞머리를 거의 덮을 정도로 깊숙이 모자를 눌러쓰고 자신의 커피잔을 보면서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 듯한 모습니다. 살짝 의기소침하고 피곤해 보이기도 하죠.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는 캄캄한 어둠만이 보일뿐인데요. 그래서인지 그와 대조적으로 강한 형광등 빛으로 가득한 카페 안이 더 공허하고 삭막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 혼자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이 더욱더 외롭고 쓸쓸해 보입니다.
호텔 방 안에 다른 한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최소한의 옷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습니다. 등 뒤에서 발산하는 강한 인공조명 때문에 숙이고 있는 얼굴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그로 인해 그녀의 표정까지 굉장히 어둡게 보입니다. 이 여인의 벗어놓은 옷가지들은 자급 식당의 여인이 갖추고 있던 것과 거의 비슷해 보이는데요. 소파 앞에 놓인 두 개의 가방을 보아 그녀가 현재 가벼운 여행 중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고개 숙인 그녀의 모습에서 어딘지 모를 고독,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여기 또 다른 여성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이제 늙고 지쳐 보이며 창 밖을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는 그녀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비장식적이고 비낭만적인 여인의 신체는 감각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황량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빛을 받고 있는 여인의 발 아래로 보이는 사각의 틀은 그녀가 빛을 받고 있지만, 결코 틀 밖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죠. 그림 속 인물은 불안한 시대의 말없는 목격자로서 고독하고 외로운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늦은 밤, 열린 창문을 통해서 이웃한 건물의 실내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그림입니다. 그림 속에서 두 인물은 한 공간 안에 있지만, 서로 무심한 듯 각자의 생각에 몰두해 있어요. 천정에서 드리운 조명의 그림자로 어두워진 그들의 얼굴, 그리고 그들의 단절된 행동에서 언뜻 화려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 역시 공허함과 소외감이 느껴집니다.
<밤은 지새우는 사람들>은 호퍼가 1920년대부터 반복해온 소외의 표상을 집약시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호퍼가 그리니치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한 식당을 그린 그림이에요. 한밤중에도 불이 환하게 켜있는 한 식당 안에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화면에서 등진채 앉아있는 한 남성, 그리고 같이 온 남녀 커플, 식당 점원이 보이죠. 창 밖은 시간을 알 수는 없지만 인적이 없이 고요하고 침묵에 잠긴 거리로 보아 자정을 훨씬 넘긴 것처럼 보입니다. 자급 식당과는 달리 유리창을 통해 바깥 거리가 보이기는 하지만 어둠에 싸인 밤거리가 왠지 더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식당 테이블의 모서리 쪽에 혼자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남성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만의 묵상에 잠겨있는 듯 보입니다. 밝게 묘사된 다른 인물들에 비해 어둡게 그늘져 있지만 호퍼는 이 남성을 화면의 정 중앙에 그려놓았습니다. 옆쪽으로는 함께 온듯한 커플이 보입니다. 이 둘은 함께 나란히 앉아있지만 서로에게 무심한 듯 각자의 시선,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아요. 식당 점원만이 살짝 입을 벌려 무언가 말을 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유리창으로 밀폐된 공간 안의 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외부세계를 완벽히 차단하고 있는 커다란 유리벽은 그들을 한 공간 안에 공존하게 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 그들은 소통이 단절된 채 고독한 모습으로 앉아있습니다. 함께함과 외로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도시인의 모습이 호퍼의 그림을 통해 느껴집니다.
1951년에 그린 '바닷가의 방들'과 1963년에 그린 '빈 방의 햇빛'입니다. 두 그림 모두 인물은 사라진채 방과 빛만을 보여주고 있어요. 사람을 비워낸 텅 빈 공간을 비추는 빛.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텅 빈 마음속 소외, 고독, 외로움, 우울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호퍼는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1967년 뉴욕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8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는데요. 그림 속 우울한 인물들은 어쩌면 호퍼 자신 내면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낯설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