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쿠바에서 태어난 곤잘레스-토레스는 1979년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 프랫 인스티튜트와 뉴욕대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습니다. 1989년까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 강사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어요.
1988년부터 시작했던 종이 더미 작품입니다. 이미지나 텍스트가 인쇄된 포스터를 쌓아 올린 작품인데요. 작업의 외형은 미니멀리즘의 조각들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죠. 작가가 종이에 삽입한 텍스트나 이미지에서는 개념미술의 전략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쌓여있는 종이들, 즉 작품을 관객들이 원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면서 작가만의 미학을 만들어냅니다. 이미지, 텍스트가 인쇄된 종이를 나누어 가지면서 모두가 공유하고 가질 수 있는 공동의 예술품을 만든 것인데요. 단지 공공의 장소에 설치된 ‘야외 예술’이 아니라, 진정한 소통, 진정한 공공성에 대해 고민했던 그의 작품들입니다.
작품 ‘베테랑 데이 세일’과 ‘메모리얼 데이 위켄드’는 매년 11월과 5월에 돌아오는 미국의 국정 공휴일인 재향군인의 날, 그리고 전몰장병 기념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실 작품에서는 흰 종이 중앙에 작은 글씨로 ‘베테랑, 데이, 세일’ 그리고 ‘메모리얼, 데이, 위켄드’라고 적혀있을 뿐이에요.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한 기념일에 죽음을 기념하기보다는 ‘쇼핑’을 하는 모습, 대대적인 세일 기간의 경쾌한 광고들, 관객은 별다른 언급 없이 세 개의 단어로만 이루어진 작품 한 장을 집어 들고 그 작품을 또 다른 장소로 가져가게 될 텐데요, 작품의 의미는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공유되겠죠.
작품 ‘총기로 인한 사망’은 1990년 미국에서 일주일 동안 일어난 총기 사건으로 인해서 사망했던 464명의 얼굴 사진과 이름, 나이 등을 적어 인쇄한 종이를 쌓아놓은 작업입니다. 타임지에 실린 이미지를 재구성한 이 작품은 당시 총기 규제법의 완화로 인한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작가의 ‘사탕’ 작업에서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은 희생자들의 몸을 어루만지듯, 작품 한 장을 들고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공유하면서 애도의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종이 더미 작품들 역시 전시 기간 동안 관객들에 의해서 점차 소멸되다가 다시 채워지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보셨던 빌보드 작업들이에요. 작가는 옥외 광고물 중 하나인 빌보드 판에 사진이나 글을 적어 많은 공중에게 노출되기 쉬운 공공장소에 작품으로 전시했습니다.
1989년 공공미술 기금의 지원을 받아 뉴욕의 세리든 광장,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등에 설치되었던 이 작품은 보시는 것처럼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무언가 적혀 있죠. 작품을 자세히 보면, ‘에이즈 연합 1985 경찰의 가혹행위 1969 오스카 와일드 1895 대법원 1986 하비 밀크 1977 워싱턴 행진 1987 스톤월 항쟁 1969’라고 적혀있습니다. 에이즈 연합회가 설립되었던 1985년, 동성애자들에 대한 경찰의 가혹행위 1969년,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연애로 피소되었던 1895년, 대법원이 동성애 문제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1986년, 동성연애 지지운동을 벌였던 하비 밀크가 상원의원이 되었던 1977년, 워싱턴에서 게이 권리를 위한 거대한 시위가 일어났던 1987년, 그리고 1969년 게이 권리를 위한 운동을 촉발시켰던 스톤월 항쟁을 나타내는 문구들이죠. 동성애에 대한 주요 사건들을 공공장소에서 언급하면서 소수자의 권리와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1980년대는 에이즈가 공식적으로 인식되었던 때인데요. 1981년 LA에서 다섯 명의 건강했던 젊은 동성애자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폐렴 증상을 보이면서 사망한 일이 처음으로 보도되었어요. 때문에 에이즈가 동성애자들만의 질병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의 암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이후 그들에게는 직간접적인 억압이 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전염병인 ‘후천성 면역결핍증’ 에이즈로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차별과 억압 속에 세상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그의 연인 로스와 함께 했던 침대 사진을 보여주는 빌보드 작품이죠. 1991년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의 프로젝트로 발표되었던 작품인데요. 당시 뉴욕 시내 여러 장소에 24개의 빌보드가 동시에 설치되었어요. 이 작품이 만들어지기 이전 1986년에는 미국 대법원에서 정부가 동성애자들의 행동을 점검하기 위해 그들의 침실에 무단으로 들어갈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었습니다. 이 판결 이후 적어도 동성애자들에게는 사적인 영역이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죠. 법률의 통제 아래 법적인 규제를 받게 되면서 더 이상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개인적인 장소’가 사라졌음을, 작가는 공공의 장소에 놓인 자신의 침대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인과 함께 했던 침대 사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한 그의 사진이 사실은 작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상처 너머에 존재하는 사회적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어요. 개인적인 공간마저도 사회 정치적인 틀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현실. 개인의 죽음을 넘어 선 공공의 죽음. 그의 비어있는 침대는 연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이자, 동시에 사회적 차별과 배제에 대한 성찰이기도 할 것입니다.
2012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아시아 최초로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개인전이 진행되었는데요. 당시 서울 곳곳에 설치되었던 작가의 침대 사진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벌써 꽤 오래전 일이기도 하지만 길을 오가며 마주쳤던 그의 침대, 그의 작품을 통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나의 작품은 공공조각을 만드는 것과 관련 있다. 내가 종이 더미 작품을 시작했을 때, 공공미술이란 용어도 유행했었다. 그 당시 날 놀라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야외에 있는 것과 공공에 있는 것의 차이에 관해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미술은 보통 형태가 크거나 내구성이 강한 재료로 만들어져서 어딘가 놓여진다. 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진정한 공공조각이었고 그때 더미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점이다.”
종이 더미, 혹은 사탕 더미.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만지거나 소유하면서 단지 작품의 ‘아름다움’만을 감상하는 관조자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에 직접 개입하면서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것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통해서 관객은 작품과 동화되고, 비로소 작가의 작품은 온전히 완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