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을 안 한다는 게 무슨 말이냐면, 대화를 할 때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이 없다. 항상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건네고, 나는 대답을 한다.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고 가만히 있는 게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전체적인 틀은 변하지 않았지만, 많은 노력 끝에 먼저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따져보자면 이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말을 할 수 있게 된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정말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엔 대답조차 길게 하지 않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유를 묻는다면, '부끄러움'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발표를 할 때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아이였으니, 누군가 말을 걸어도 대답을 짧게 끊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차도남'이라는 별명을 가지기도 했고,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중학교 때는 아주 작은 변화가 생겼다. 대답을 조금 더 성의 있게 했다. 공감을 하기 시작했고,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일부러 연기를 한건 아니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었기에 자연스레 그랬던 것 같다. "오 그래~? 그래서?" "아이고..." 이런 리액션을 많이 했다.
고등학생이 되자 대답하는 능력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연애, 학업, 진로 등 참 많은 고민이 생길 나이인 이때, 나는 누구보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기에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일까? 같이 고민을 해주기도 하고, 해결을 해주기도 하는 등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답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학교에서 자기소개서를 쓰는 연습과 면접 연습을 많이 했기에 말하는 능력이 향상된 것도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누군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먼저 말을 건네는 법은 알지 못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 크지 않았을까. 항상 주위 친구들은 말이 많았고, 나는 듣는 역할이었으니까.
성인이 되고 나서도 다를 건 없다. 친구를 만나도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안부만 물은 후 조용히 밥을 먹고 헤어졌으니.
여자친구 또한 말이 많았다. 너무나도 많았다. 말을 많이 하길 좋아하는 그녀와 말을 많이 들어주는 나는 잘 맞았고, 역시나 나는 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군대에서도 긴말할 것 없이 조용했다.
많은 변화가 일어난 건 회사를 다니고부터다. 한 1~2년은 똑같이 조용했다. 코로나 시기라 재택근무를 오래 한 것도 있고, 애초에 팀원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컸다. 말을 많이 하게 된 건 코로나가 끝나고 입사한 지 2년이 지난 3년 차부터인데,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위치가 되었다. 일을 하다 보니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어있었기에 팀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거나, 회의를 진행한다거나, 신입사원이 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케어를 한다거나 하는 일이 빈번해져서 나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또 하나는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피우러 갔던 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나는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혼자 앉아있는 게 싫어서 같이 옥상에 따라올라갔다. 담배를 피우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하더라.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담배라는 매개체가 주는 편안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1시간마다 10분씩 매일 말을 하다 보니 말을 하는 능력이 점점 피어나기 시작한다.
약 1년 전,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하고 야간에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데, 야간시간을 활용해서 말하기 연습을 시작했다. 이것도 일부러한건 아니다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가상의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혼잣말을 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질문을 떠올리고 그에 맞는 대답을 하는 연습을 매일 10시간씩 몇 달은 한 것 같다. 다양한 상황, 다양한 입장, 다양한 나이. 최대한 생각나는 많은 이야기를 혼자 떠들었고, 이것은 인터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지난 몇 달간 지인들을 인터뷰하며 돌아다녔다. 지인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말을 거는 행위이지 않나.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말을 걸고... 약속을 잡고... 질문을 준비하고... 참 부담이 많이 되는 일이었지만 몇 번 해보니 자신감도 많이 올라왔고, 이제는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대화를 요청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직도 말을 걸 때면 두근대고 떨리지만 말이다.
말을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다. 나 같은 ISTJ 에겐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물론 이런다고 mbti가 변하진 않는다만... 성격을 바꾸고 싶은 건 아니기에 괜찮다. 그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
이제는 말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사소한 주제로도 이야기를 꺼낼 수 있고, 같이 있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게 많은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나의 들어주는 능력과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금, 나 자신에게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이다. 심지어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기도 하니 말이다.
언제나 듣기만 하는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은 못 해줄 것 같고, 그저 시간이 지나니 해결되었다고밖에 말을 못 하겠다. 엄청난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