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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찬희 Sep 02. 2024

남에게 관심이 없어진 계기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

고등학교 시절 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지내다 보니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을 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떤 말이든 간에 잘 들어주는 능력이 뛰어났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지만.

가만히 있어도 친구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러 온다.
"누구랑 누구랑 싸웠대~"
"쟤네 왜 같이 다니는지 알아?"
"나 이번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찌 보면 친한 친구들끼리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난 그것을 모두에게 전해 듣는다.


처음엔 마냥 좋았다. 중앙 컨트롤타워가 된 느낌이랄까.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위급한 상황에서 중재를 하기 편하다는 것이 난 너무 좋았다.

예를 들자면,
a와 b가 사소한 오해로 싸우고 있다.
a는 b가 돈을 훔쳤다고 생각하고 b는 억울한 상황.

사실 진범은 c다.
직접 봤다고 말해준 친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에 b와 c가 각각 어디에 있었는지 동선을 체크해 보면 진범은 c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항상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본능 때문이었을까, 우선 b의 억울함을 푸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크기에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서 b를 보호한다. "근데 b 너 그때 나랑 같이 있었잖아." 알리바이를 만들어둔다. 그리고 a에게만 조용히 정보를 흘린다. "c가 그때 교실에 있었다는데..." 이후로는 알아서 해결이 된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는, 친구들이 내 말을 신뢰했다. 솔직히 신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조용하고 거짓말을 안 하는 성격 때문이었을까? 평소에 말을 많이 하지 않기에 내가 말을 꺼낸다면 믿을만하다고 생각한 거였을까? 어찌 되었든 나는 이 능력으로 많은 친구들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었고, 싸움을 말리기도 했다.


위와 같은 아름다운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어렸기에, 화살이 나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a와 b가 사귀는 걸 아무도 모른다. 나만 알고 있다. 그 상황에서 갑자기 c가 고민 상담을 한다. 사실 나는 a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은근히 티를 내 보기도 했는데 a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관심이 없지.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비밀은 지켜져야 하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천천히 다가가봐" 가 전부였다. 사귀는 사람이 있음을 알리지 않으면서 그가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란 나의 최선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a와 b의 연애 사실이 공개된다. 더 이상 비밀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축하를 받으며 행복해하는 그들이 너무나도 보기 좋았다. 하지만 c는 그러지 못했다. a가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꽤나 슬퍼했고, 미움의 화살은 나에게 향했다.

"넌 알고 있었지?"

난 그저 알고 있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물론 이 친구와 사이가 안 좋아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알고 있다는 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님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이런 경우도 있다.
"나 이번에 a랑 친해졌는데~ a가 비밀이라고 나한테만 말해주는 거라고 이런 얘기를 해줬어~"
"아 그랬어~? 오~ 처음 듣는 얘기네." (이미 알고 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반응해야 한다. "이미 알고 있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어떻게 알고 있어..? 나한테만 말해준 거라 했는데..?"
라는 반응이 돌아오기 때문.

'내가 알고 싶어서 알았나.'
'너희들이 좋다고 말한 거잖아.'
'내가 이걸 퍼트리지도 않고 비밀을 잘 지켰는데 왜 안 좋은 말을 들어야 하지?'

나로 인해 원치 않는 갈등이 생겨난다. 그것이 나는 싫었다.


이런 일이 반복이 되다 보니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남의 이야기에 관심을 끊은 게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대략 고3 때쯤이려나... 은근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았고, 내 일도 아닌 것에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게 이젠 의미 없다고 느껴졌다.

귀를 닫고, 남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한다.
마음이 편해진다. 부담도 없고, 더 이상 억울하게 미움받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지금까지 소문이나 구설수에는 관심을 갖지 않으며 살고 있다. 비단 친구들의 상황만이 아니라 연예인, 정치인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아예 관심이 없다. 가끔 친구들과 길을 가다 보면 이런 말을 한다. "방금 저 사람 옷 엄청 예쁘지 않았어?" 슬프게도 안 보였다. 주변에 관심을 안 가지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니 앞만 보고 내 갈 길만 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때때로 '소통'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이 든다. 모든 것에 무관심해지기보다 내 마음의 평화를 지키면서도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행복과 의미 역시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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