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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발장 May 29. 2019

마라톤과 인생의 공통점

설레이던 첫 경험, 나의 10km 마라톤 도전기

1994년 출간된 ‘인생은 예행연습 없는 마라톤이야’라는 책은 방황하던 나의 사춘기 시절 어머니의 책장에서 슬쩍 빌려 읽었던 책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영호 전 체육부장관이 암 투병을 하며 자녀들에게 쓴 편지들을 엮은 인생에 대한 조언들이 담겨있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울림이 남았던 구절은 이러했다.


인생은 정해진 거리가 없는 경주야.
초반이나 중반에 남보다 앞섰다고 우쭐댈 것도 없고,
반대로 남보다 다소 뒤졌다고 절망할 것도 없어.
남은 코스에 최선을 다해야 할 뿐이야.
[출처 : 인생은 예행연습 없는 마라톤이야, 이영호 지음]



그 당시 공부도 운동도 딱히 잘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되어 의기소침해있던 나에게 이 구절은 용기를 낼 수 있는 마음가짐을 일깨워주었고 ‘그래 잘 못하더라도 한번 해보자.’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갖게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책, 음악, 영화 등등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다. 그만큼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 동반되며 직선 곡선도로와 오르막 내리막길을 거쳐 결승점으로 도달하는 과정이 마치 굴곡 있는 인생의 큰 흐름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마라톤을 나가는 사람들은 힘들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겨낼까?  

모든 과정을 이겨내고 완주메달을 목에 거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런 생각들은 내게 한 번쯤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고 몇 년째 다이어리 앞쪽 하고 싶은 것들 목록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마라톤 첫 도전은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


새벽 6시 반, 코스의 출발지인 상암 월드컵 공원에는 그 이른 아침부터 많은 인파가 모있었다. 

생기발랄하게 몸을 풀며 준비하고 있는 그들 속에 함께 있으려니, 뭔가 도전한다는 느낌에 설렘도 있었지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던 참이었다.


그리고, 출발!! 


막상 뛰기 시작하니 스스로에 대한 걱정은 점차 사그라들며 온전히 달리고 있는 몸과 호흡에 집중하게 되었다. 몸도 가볍고 아침 공기는 무척 상쾌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대인원이 다 같이 달리기를 한다는 게 정말 재미있고 볼만한 풍경이었다.


진짜.. 볼만한 풍경이다.. 마포구청역 언저리를 가득 메운 인파들의 행진
차량이 통제된 양화대교를 뛰는 기분은 아주 신선하고 새롭다.


차량이 통제된 양화대교 위를 달리는 기분도 정말 일품이었다. 차로만 다니던 다리 위를 뛰고 있노라니 참 신선한 기분이 들어 뛰는 와중에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달리기 시작한 지 5킬로가 넘어가자 슬슬 숨이 가빠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하.. 좀 천천히 갈까? 조금만 쉴까?’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쉬면 의지가 꺾일까 싶어 쉬지 않고 천천히나마 계속 뛰었다. 몸이 고통을 호소하는 게 느껴졌고 그때부터가 진정 나와의 싸움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결승선에 들어가서 기뻐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뛰었고 그 생각도 더 이상 약빨이 받지 않자 마라톤 마치고 사우나에 가서 몸을 푹 담글 생각, 어떤 점심을 맛나게 먹을지 생각하며 정신을 몸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애를 썼다.


8킬로가 되어가자 슬슬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온다.


8킬로가 조금 넘었을 때, 오른쪽 무릎이 조금씩 아파왔다. 연습을 좀 더 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밀려왔다. 힘들다고 그냥 주저앉아 쉬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면 안 되겠기에 뛰는 대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잠시 걸으면서 체력을 충전하고 있으려니, 아주 천천히 뛰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쉬지 않고 뛰고 있었다.


천천히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속도를 내었다. 체력이 조금 회복되었는지 다시 기운을 차렸고 잃었던 점수를 회복하기라도 하듯 천천히 달리던 그를 금방 앞질렀다. 하지만, 한번 걷고 나니 두 번 걷게 되는 것은 아주 쉬웠다. 빠른 속도로 뛰다 보니 금방 다시 지쳤다. 그래서 잠시 걷다 보면 천천히 뛰던 그가 나를 앞질러갔다. 나는 충분히 쉬고 난 뒤 또다시 빠른 속도로 그를 앞질렀다. 상대는 전혀 의식 못했을 수 있지만  어느새 그는 나의 목표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9킬로를 넘어 결승선에 도달하기까지 목표가 생긴 나는 머릿속 경쟁을 하며 그 누군가와 엎치락뒤치락 피 터지게 싸웠고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달렸던 그와 잠시 쉬어가면서 빠르게 달렸던 나의 경쟁은 결국, 5초 정도 먼저 들어간 그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완주 메달과 함께 먹는 도시락은 진짜 꿀맛이다.. 이 세상 맛이 아님ㅋㅋ


물론, 애초에 누군가와 경쟁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무사히 결승선을 밟을 수 있었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많은 글들의 의미를 뼈 속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이 되었기에 전문 마라토너는 아니지만 마라톤 초심자의 눈으로 바라본 마라톤과 인생과의 닮은 점을 몇 자 적어본다.



<마라톤과 인생의 공통점>

1. 속도보다 방향이다.

2. 페이스 조절이 관건이다.

3. 지금 빨리 뛴다고 꼭 먼저 가는 것은 아니다.

4. 지금 천천히 뛴다고 꼭 늦은 것은 아니다.

5. 선의의 경쟁상대는 나를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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