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과잉의 시대에서 선택의 폭을 줄여야 할 필요성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첫 번째 작품인 ‘햄릿’에서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삶의 무게를 드러내는 잘 알려진 명대사가 등장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고민거리를 달고 다니는 그는, 복수할 절호의 순간이 왔음에도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다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우유부단한 행동을 보인다.
최근, 우스갯소리로 등장했다가 일상용어로 정착되어버린 ‘결정장애’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행보다. 그래서 '결정장애'는 다른 말로 '선택 장애' 또는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이라 부른다. 그러고 보니, 그저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뿐인 줄 알았는데 짜장 짬뽕 중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결국 짬짜면을 시켜먹던 나도 한때 ‘결정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 같다.
중고딩 시절 나는 도서대여점에서 책 한 권 고르는데 20분은 기본이었다. ‘이 책 볼까 저책 볼까.’ 하며 여러 책들을 음미하며 보내는 시간은 나름 즐거운 쾌감이었지만 30분이 넘어가게 되면 결정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짐을 느꼈다. 이미 오랜 시간 공을 들였으니 좀 더 후회 없는 결정을 하고 싶어 졌고 결국,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는 지경에 이르곤 했다.
'아씨.. 나는 왜 이럴까? 왜 매번 결정을 못하지??' 과자 하나를 사 먹어도 한정된 돈 안에서 최대치를 뽑아내려던 그 효율성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기 십상이었다. 결국, 가게 안을 3바퀴나 돌고는 매일 먹던 '감자깡'을 골라서 나왔다. 그것도 주인 눈치를 보느라 그나마 빨리 고른 편에 속했다.
하지만, 사춘기 내내 이런 모습에 스스로 질려하면서도 쉽사리 변할 수 없었다. 그만큼 결정을 내리는 것이 힘들었으며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스스로를 힘들게 했으니 얼핏, 기회비용이라는 말보다 후회 비용이란 말이 더 어울렸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행동경제학과의 콜린 캐머러 교수는 국제학술지 ‘자연 인간 행동’에서 “인간을 위한 최적의 선택지는 대략 8~15개 사이가 될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선택지가 많다 보면 되려 선택에 대한 어려움이 커지고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를 손실로 받아들여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또한, 선택이 어려웠던 만큼 최종 선택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그에 따른 실망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사춘기 시절의 내가 특정 서적에 대한 정보를 미리 염두에 두고 두 권 정도만 추려놓고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두권 사이에서만 고민을 하니 선택이 조금은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먹고 싶은 과자 후보를 먼저 정했다면? 그 많은 종류의 과자들 속에서 무분별하게 고민하기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했을 수도 있다.
현세는 선택 과잉의 시대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지금 매일같이 무수한 정보를 받아들이며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삶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선택의 폭도 넓어지다 보니 선택에 대한 고민이 잦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선택을 통해 긍정적인 기회를 갖기 위했던 기회비용이 무수한 기회를 통해 후회를 낳는 후회 비용이 될 뿐이라면 선택의 폭을 조금 좁혀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