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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발장 Aug 15. 2019

독립한다는 것의 의미

가족으로부터의 물리적 독립 그리고 정서적 독립

인천 토박이였던 내가 서울에서 첫 직장과 첫 자취방을 얻었을 때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던 나는 인천에서 잠실까지 수도권에서 악명 높은 1,2호선 지옥철에 몸을 싣고 출퇴근 통틀어 3~4시간을 왕복하며 회사를 다녔었다.

신입사원인지라 직장 눈치는 얼마나 매서운지 어쩌다가 야근이라도 한번 잡히면 차 시간 맞춰 나간다는 말도 못 하고 막차가 끊기면 집에도 못하는 상황이라 근처 찜질방에서 신세를 지는 일도 많았었다.

이런 생활을 두 달 정도 반복하면서 개인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도, 누군가를 만날 시간도 없이 쫓기는 느낌과 스트레스가 반복되던 어느 날, 나는 문득 말해버렸다.


"엄마 나... 집 나갈래! 더 이상은 이렇게 못 다니겠어!"


어머니는 자취하면 드는 비용과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저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만류하셨지만 늘 피로에 찌들어 치열하게 출퇴근을 하는 아들의 모습이 딱했는지 한 달 있다 결국 승낙을 해주셨다.


함께 룸메이트를 하기로 한 친구와 나는 일주일간 발품을 팔아가며 건대입구역 앞 조그마한 방 두 칸짜리 반지하를 계약했다. 비록 방 크기가 매우 아담하긴 했지만 접이식 라꾸라꾸 침대가 들어갈 정도는 되었으며 두 개의 방 옆에 작은 거실도 하나 딸려있어 둘이서 함께 밥을 먹기에도 충분했다. 다만 화장실 천장이 낮다 보니 샤워할 때마다 허리를 굽히고 매우 겸손한 자세를 취했던 것 빼고는 모든 게 다 신이 났던 것 같다.


얼핏, 본가에 있는 공간에 비해 불편할 수도 있던 상황인데 무엇이 그렇게 신이 났을까?

무엇보다, 사회인으로서의 첫 출사표를 던졌던 그 순간은 마치 막 태어난 갓난아이처럼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나간다는 것에 대해 ‘혼자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그런 불안감 이면에는 설렘을 동반하고 있었으며 부모님의 안전하고 아늑한 둥지를 떠나 황무지 벌판을 가로지를지언정 나만의 색깔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더욱 컸던 것 같다.


홀로서기는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독립한다는 것은 이렇게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단지 집을 나왔다는 물리적인 의미뿐만이 아니라 힘이 들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선택을 직접 감당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정서적인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상담 현장의 여러 사례들을 보면 부모와의 정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해 도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이 많다. 그런데 이미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결혼도 하고 아이를 아 기르는 등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한 독립을 한 것 같아 보이나 아직 원래의 가족에 대한 원망 및 여러 정서적인 부분에 얽매여있는 성인 내담자의 경우도 많이 있다. 이것은 결국 경제적, 물리적인 독립이 꼭 정서적인 독립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신역동적으로 정립된 체계적인 접근 방식으로 인간 행동과 문제에 대해 포괄적인 견해를 갖는 보웬의 가족치료 이론에서는 자아 분화라는 개념이 있는데 개인이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된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즉, 자아 분화 수준이 낮은 경우 가족원들과 정서적으로 얽매이는 정도가 높고,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반응에 민감하고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타인 중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반면에, 자아 분화 수준이 높아 가족과 심리적인 독립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가족원들과 친밀한 정서적 접촉을 하면서도 확고한 자아정체감과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자신과 타인의 신념과 가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애기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이렇게 컸다니


이렇게 정서적인 독립은 삶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니며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정말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정서적인 독립이 그렇게 쉽사리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한 가족 안에서도 서로 간의 독립된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기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자녀가 심리적 독립을 위해 떠날 때가 되었다면 믿고 보내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서로가 각자 독립된 한 명의 개인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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