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종묘는 한국이다!

종묘 미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보존해야 하는 진짜 이유

by 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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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 한국의 정수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미래: https://youtu.be/ooK2h_mm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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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운4구역 개발 논란과 종묘

2025년 10월 30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의 고도제한을 기존 종로변 55m에서 98.7m로, 청계천변은 71.9m에서 141.9m로 대폭 완화하는 세운상가 재개발 수정계획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오 시장의 계획은 즉각 논란을 발생시켰습니다. 종묘에서 불과 직선거리 180m 앞인 세운4구역에 최대 35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종묘의 문화적 가치 훼손 가능성이 높아진 게 그 핵심입니다.


news-p.v1.20251120.35660bdc3dea4cd0bb7ba40cb7c05603_P1.jpg 종묘와 세운4구역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Cultural Heritage)에 등재될 당시 유네스코(UNESCO) 측으로부터 세계문화유산 구역의 경관을 해칠 수 있는 고층건물의 인허가 제한을 권고 받았고 이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200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영국 리버풀(Liverpool)은 이 권고를 지키지 않아 2021년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종묘 역시 안심할 수 없습니다. 이에 소관 부처인 국가유산청과 문화체육관광부 뿐만 아니라 김민석 국무총리 역시 우려를 표명하며 오세훈 시장에게 계획 철회를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오 시장은 세운4구역 고도제한 완화 결정은 종묘의 경관 훼손이나 세계문화유산 지위 박탈에 영향을 줄 수 없다며 반박에 나섰습니다. 심지어 세운4구역 토지주들은 2025년 11월 11일 세운상가 광장에서 김민석 총리와 국가유산청 규탄 집회를 개최하며 자신들의 재산권 행사에 불이익이 발생할 경우 관련 민형사 소송 제기를 예고하고 나섰죠.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한 세운4구역 고도제한 완화 계획과 관련한 문제는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입니다.


2. 유일무이한 종묘의 어제와 오늘


202062435_500.jpg 종묘 정전(宗廟 正殿): 국보 제277호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 19명의 국왕과 30명의 왕비의 총 49개의 신위가 모셔진 정전(正殿)과 16명의 왕과 18명의 왕비의 총 34명의 신위를 모신 영녕전(永寧殿)이 핵심인 국가 사당입니다.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한 장소에 모두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서 현재 남아 있는 건 전 세계에서 종묘가 유일합니다.


1614044.jpg 종묘 영녕전(宗廟 永寧殿): 보물 제821호


역대 왕과 왕후의 신위를 모시고 제례를 드리는 종묘의 모습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에 잘 드러납니다. 8폭 병풍인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은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걸로 추정되는데 1폭 하단에 기록된 종묘 신실에 관한 설명이 철종(哲宗, 1831-1864)에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철종은 조선 제25대 국왕으로서 이로써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이 철종의 승하(1864) 후 제26대 고종(高宗, 1852-1919) 연간에 제작된 걸로 추정됩니다.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은 상단에는 그림이 아래에는 글이 적혀 있는 형태로서 종묘의 정전과 영녕전에 대한 묘사와 제사 의식(親祭)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은 기록 문화유산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녔습니다.


unnamed-7.jpg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 (조선시대)


하지만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의 예술적인 가치는 크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예술적인 목적을 위해 제작된 작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7세기에 등장한 실제 풍경을 그린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나 풍속도 등의 세속적인 조선시대 서화(書畫)에서 종묘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유교가 국교인 조선왕조에서 국가의 정점인 왕실 그리고 그들을 기리는 종묘는 단순한 건축공간을 넘어 조선왕조의 혼(魂) 그 자체인 성역불가침이기 때문이죠. 그런 신성한 장소를 그저 감상과 즐거움을 위해 그린다는 건 왕정 국가인 조선시대에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조선왕조가 폐망함에 따라 신성불가침이었던 종묘 역시 더 이상 성역으로 보존되기 어려웠습니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철저히 장악하기 위해 조선왕조의 혼이 깃든 종묘를 훼손하고 파괴하며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심리적 무력감을 주는 데 성공합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어도 종묘는 과거의 위상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광복 직후 일제로부터 주권을 회복하며 국가를 재건하기 위하여 여운형(1886-1947)을 주축으로 조선건국위원회(朝鮮建國委員會)가 발족되지만 이들은 대한제국의 부활 대신 공화국 체제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종묘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성공해 그 문화적 진가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보존해야 하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본격 보존·복원 사업이 추진됩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종묘공원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며 현재의 종묘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 결과 종묘는 서울의 주요 사적지이며 관광명소이자 500년이 넘게 지속된 조선왕조의 혼과 정신이 깃든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article_202208_03_05.jpg.png 성역화 사업 이후의 종묘 공원


3. 현대미술로 재탄생한 종묘

조선시대까지 성역이었던 종묘가 신성불가침성을 잃은 게 단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20세기부터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종묘는 예술의 영감을 제공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서울특별시가 88서울하계올림픽 개최로 서울의 녹지 공간을 조성할 목적으로 종묘 공원을 조성하면서 종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이는 종묘의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아닌 그저 도시 재정비와 국가 이미지 개선이라는 부차적인 목적이 우선된 사업이었습니다.


view_1604561315108505.jpg 박생광, <제왕> (1982)


박생광(1904-1985)은 종묘의 예술적 가치에 처음으로 관심을 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회화 작품인 <제왕>(1982)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데 이들 모두 국가의 공식 행사가 거행될 때 착용하는 면복(冕服)과 면류관(冕旒冠)을 착용했습니다. 이 그림은 박생광이 태상왕인 태조 이성계(1335-1408), 상왕인 정종(定宗, 1357-1419)과 당시 국왕인 태종(太宗, 1367-1422) 이방원이 하나의 왕국에 동시에 존재했던 태종 즉위 초반 혹은 태상왕 정종, 상왕 태종과 당시의 국왕이었던 세종(1397-1450)의 즉위 초반의 상황을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그린 역사화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세 명의 군주가 존재한 건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며 이 시기 박생광은 《무속》 시리즈에서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를 자주 화면에 등장시켰던 걸 감안하면 제례 동안 고인인 역대 제왕들의 혼이 소환된 영적인 장면을 상상한 그림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박생광의 <제왕>은 종묘의 모습이 등장하는 몇 안 되는 미술 작품 중 하나입니다. 비록 종묘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한 건 아니지만 박생광의 <제왕>은 종묘의 정신성을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독특한 사례로서 종묘를 민족의 집단적 기억이 깃든 성소(聖所)로 재소환해낸 점에서 큰 의미를 지녔습니다.


스크린샷 2025-12-03 오후 1.56.37.png 배병우, <눈 덮인 정전> 《종묘》(1995)


박생광 이후 여러 미술가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종묘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표현해 냈습니다. 사진작가인 배병우(1950-)는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된 1995년 삼성문화재단의 요청을 받아 5년 동안 종묘에 관한 예술 사진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렇게 촬영한 흑백 및 컬러 사진 70점을 모아 《종묘》를 발표합니다. 그 중 눈 덮인 정전을 찍은 사진은 종묘의 건축적 아름다움에 집중해 종묘의 단순하면서도 장엄한 건축미학을 잘 보여준 작품으로서 유홍준 현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합니다.


스크린샷 2025-12-03 오후 2.06.36.png 조풍류, <종묘 정전> (2023)


회화 분야에서는 조풍류(1951-) 작가의 <종묘 정전>(2023)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2023년에 완성된 이 회화 작품은 종묘 정전의 붉은색 기둥, 잿빛의 기와를 비롯해 화면의 2/3를 차지하는 푸른색, 정전의 뒤쪽이자 하늘을 처리한 노란색의 네 가지 색채로만 구성되었지만 단순함의 미학을 극대화함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스크린샷 2025-12-03 오후 2.14.33.png 황명숙, <화가의 기억: 종묘 정전 드러잉4> (2020년대)


황명숙(1977-) 작가의 <화가의 기억: 종묘 정전 드로잉4 Expressing the Painters Memory:: Jongmyo shrine Ⅳ Drawing>(2020s)는 위에서 내려다 본 종묘 정전을 그린 그림입니다. 조선 시대 종묘 제례에 참여했던 당시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재 종묘를 관람하는 방문자들, 박생광의 <제왕>, 배병우의 《종묘》, 조풍류의 그림과 같은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시대는 다르지만 정전을 바라보는 시점은 일반적인 성인의 눈높이 수준의 시점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황명숙의 파스텔 그림에서는 위에서 내려다 본 종묘 정전의 모습을 보여주어 관람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종묘 정전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깊이감과 공간감이 결여된 종묘 정전과 그 주변의 환경들은 마치 몬드리안(Pieter Mondriaan, 1872-1944)의 회화 작품을 보는 것과 같은 기묘한 추상적 패턴성을 보입니다.


aGvG5jrZgtu1dOHM2RGF3qFF8KI.jpg 종묘 정전 항공샷

종묘 일대에 정전을 내려다 볼 건물이 없기 때문에 이 그림에서의 경험은 작가가 직접 종묘 정전을 내려다 본 경험은 아닐 겁니다. 드론을 이용하거나 아니만 구글 어스를 통해 본 정전의 모습일테지요. 경험은 몸을 움직이고 직접 그 공간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재구성된 대상을 접하는 것 역시 경험입니다. 황명숙은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완전히 다른 시점에서 종묘 정전을 봤던 짜릿한 체험을 했었고 그 경험을 미술로 표현한 작품이 <화가의 기억: 종묘 정전 드로잉 4>입니다. 이처럼 박생광, 배병우, 조풍류와 황명숙에 이르기까지 종묘는 1980년대부터 한국 동시대 미술가들의 예술 창작의 영감을 제공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4. 종묘가 단순한 옛 건축물이 아닌 이유

욕망을 극복하고 예의와 격식을 준수함(克己復禮)과 간단하고 소박하여 화려하지 않음(簡素無華)의 미학을 추구하는 유교를 국교로 하는 조선 시대에 제작된 서화, 공예와 도자 등은 불교가 국교인 고려 시대의 미술들과 확연히 다릅니다. 미술사학자 고유섭(1905-1944)은 소박함, 인공미가 배제된 자연스러움을 지닌 한국의 미학을 ”구수한 큰 맛“으로 규정했습니다. 종묘는 ”구수한 큰 맛“이라는 한국의 미학을 매우 잘 보여주는 건축 유산입니다. 유교를 국가의 정치·사상 더 나아가 종교의 근간으로 설정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대 군주와 왕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의 건축물은 단순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균형미를 갖추고 근엄하고 엄숙해야만 하는 복합적 미학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8월기고문_사진03_三樂-1024x745.jpg 종묘 정전(宗廟 正殿): 국보 제277호


유교에서는 군주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천명(天命)을 잃어 군주의 자리를 잃을 수 있음을 경고하지만 기본적으로 군주를 정점으로 한 강력한 상하관계를 추구합니다. 조화와 질서, 안정은 유교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왕정 국가인 조선에서 군주는 국가 그 자체(Etat,c’est moi!)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유교는 신(神)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혼(魂)의 존재는 인정합니다. 군주는 죽어서도 나라의 안녕을 지켜야 하는 존재이고, 종묘는 그 혼을 제대로 받들어 조선이라는 국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종묘가 왕족인 전주 이씨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조선이라는 나라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스크린샷 2025-11-10 오후 4.36.16.png 보스, <고종 황제 어진> (1899)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합니다. 고종은 완전한 자주권을 지닌 국가이면서 조선을 계승한 국가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우리 민족 자체를 지칭하는 한(韓)을 국호로 선택합니다. 대한제국 선포는 자주 국가의 선포이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와 뿌리의 재정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한제국은 한민족의 역사는 고조선에서 부여 → 사국시대 → 남북국시대 → 후삼국시대 → 고려 → 조선을 지나 대한제국으로 이어졌다는 선언입니다. 이러한 원대한 국가관을 지녔지만 대한제국은 불법적인 한일병합으로 강제 병합되고 다시 조선이라는 명칭으로 회귀합니다. 순종(1874-1926) 황제가 붕어함으로서 한반도에서의 긴 왕정 체제는 막을 내립니다. 광복으로 국권을 회복한 후 한반도 역사에서 최초로 공화정을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이 본격 수립되었지만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 체제가 몰락하면서 독립해 탄생한 신흥독립국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비록 1910년부터 36년 동안 잠시 국권을 강탈당했지만 기원전 2,300년 단군 왕검을 시작으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가이며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과 정통성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광복 직후 곧바로 공화정 체제의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AKR20250419011900005_06_i_P4.jpg 종묘 정전 제실


그러한 관점에서 종묘는 단순한 조선시대의 건축 유적이 아닙니다. 조선에서 가장 상징적인·핵심적인 공간은 법궁(法宮)인 경복궁(景福宮)도, 경복궁 서쪽의 사직단(社稷壇)도 아닌 종묘입니다. 종묘는 조선 시대의 역대 27명의 군주들과 왕비들의 신위와 더불어 태조로부터 4대조의 - 목조(穆祖 1204-1274), 익조(翼祖, ?-?), 도조(度祖, ?-1342), 환조(桓祖, 1315-1360) - 신위도 모셔져 있습니다.


img_jongmyo_story_bg_06_00.jpg 종묘 공민왕신당(恭愍王神堂)


흥미롭게도 정전과 영녕전은 아니지만 별도의 신당에는 고려의 제31대 군주인 공민왕(恭愍王, 1330-1374)과 정비(正妃)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1365)의 신위도 모셔져 있습니다. 조선은 고려를 멸망시키고 건국된 국가라는 점에서 이는 “병주고 약주고”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러한 조치는 조선이 고려를 계승한 국가라는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조선 개국을 주도한 인물들과 이후 조선 왕조에서는 고려 왕족인 개성 왕씨의 고려는 공민왕으로 끝났고 이후의 왕들은 - 우왕(禑王, 1365-1389), 창왕(昌王, 1380-1389), 공양왕(恭讓王, 1345-1394) -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최후의 고려 왕들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조선이 고려를 계승한 국가라는 걸 상징하기 위하여 조선의 종묘에는 그들이 인정한 정통성을 지닌 고려 최후의 국왕인 공민왕 부부의 신당을 조성한 겁니다.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대한제국의 폐망 이후, 우리 민족은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대한민국을 수립하였고 이렇게 성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고조선부터 시작된 우리 민족이 현대에 이룩한 정통 국가입니다. 공화정인 대한민국에게도 종묘가 중요한 공간인 건 대한민국이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을 계승한 국가로서의 정통성을 입증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묘는 그저 과거 조선 시대의 옛날 건물, 한 때 왕족이었던 전주 이씨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화유산 더 나아가 성스러운 공간인 의미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tMTkkMuBAXDRdSJIOqtKZQZDBlrUNone.jpg 종묘대제 중


5. 개발과 보존 사이, 종묘의 미래는?

새로 발표된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 변경을 지지하는 해당 지역 토지주들의 불만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이미 서울시는 종묘의 문화적 가치를 고려한 개발안을 마련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변경안은 그 합의를 뒤엎는 것으로서 자칫 잘못하면 종묘의 문화적·역사적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까지 위협 받을 수도 있기에 우려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현대적인 고층 빌딩숲 사이로 역사적 건축물이 남아 있는 현재 도시풍경(cityscape)은 서울이 전 세계 다른 도시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매력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이미 수립된 세운4구역 개발계획은 그러한 서울의 매력을 유지할 수 있을만한 적정 수준에서 도출된 계획입니다. 약 35층 높이의 건축이 아닌 20층 높이의 건축물로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오늘날의 서울의 미감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win-win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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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K-Pop Demon Hunters》(2025)의 대히트로 전 세계인들이 방문하고 싶은 세계적 수준의 관광도시로서 거듭난 서울의 근본 중의 근본으로서 서울의 구도심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종로, 그 중에서도 특히 한민족의 역사가 단군 할아버지로부터 21세기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종묘 일대까지 개발주의가 우선되는 게 우려스럽 습니다. 종묘는 단지 옛 건물이 아니라, 절제된 건축미로 한국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동시에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는 예술의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공간입니다. 개발과 보존, 두 가치가 충돌하는 지금, 우리는 후손들에게 이 성스러운 공간을 어떻게 물려주는 게 정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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