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나라야니 May 17. 2020

나의 제주 욜로라이프 비하인드 스토리

제주살이 9년차의 고백

2009년에 엄마와 제주에 집을 보러왔다.
제주에 살며 게스트하우스를 해보면
재밌지 않겠냐며 남자친구가 쉐프니까
게하랑 레스토랑을 하면 딱이지 않겠냐며
제주도 푸른밤 노래를 흥얼거리며
엄마랑 둘이서 신나게 돌아다녔다.


십여채의 집을 보았지만
담에 와서 또 봐야지 하며 다음으로 미뤘다.
좀 더 예쁘고 큰 집을 사려면
열심히 돈을 더 벌어야하지 않겠냐며.
엄마에게 담에 또 보러오자며.

그 때 신이 애틋한 마음에
내게 따스한 손 내밀어 준 것임을 모르고
난 새침하게 No thank you를 말하며
뒤돌아섰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 선택을 강요치 않았지만
스물 아홉, 내 생에 선택지는 많은 줄 알았다.
다음은,
언제나 다음에 올 수 있는 건 줄만 알았다.


제주에 다시 돌아온 것은 2011년,
난 혼자였다.

함께 게하를, 레스토랑을 하자던 남자친구는
세상 저 반대편, 유럽대륙의 끝에 가버렸다.  
그리고 엄마는 이 세상을 아예 떠나버렸다.

비로소 알았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 때
얼마 없었다는 것을.

그 때 2009년이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연인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을.
그 때 신이 내게 선택의 기회를 준 것을
나는 모른체 하고 말았다는 것을.



엄마는 뒤돌아보면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뒤돌아보았을 때 없을 거라고는 한번도,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내게 엄마는 마치 무적처럼 죽지 않는 존재였다.

해외에서 좀 더 돈을 벌어 빚 없이 제주에
집을 사는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며.
돈 더 벌어올게, 하며 미련없이 제주를 떠났는데.

그랬던 내가 돌아온 2011년의 제주엔
가족도, 연인도, 심지어 통장도, 사랑도,
그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모든 것이 욕심이었다.




해외에서 꿈이었던 승무원 생활을 한 것도,
전 세계에 돈을 뿌리며 여행을 다녔던 것도,
제주에서의 행복을 뒤로 미룬 것도,  
유럽대륙 저 끝까지 이력서까지 대신 봐주면서
연인을 돈 벌라며 보냈던 내 모든 마음들은,

행복이 아니었다.
사랑이 아니었다,
추악한 욕심이었다. 

만약 그 때 작은 집 하나를 구해 제주에 왔다면
엄마와 마지막을 몇 년은 더 함께 였을텐데. 
소박한 게스트하우스와 단촐한 레스토랑을
알콩달콩 열었더라면 우린 함께였을텐데.
주 5일에 예약만 받고 브레이크타임을 가지고
큰 돈 욕심없이 저마다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이 곳에 얼마나 많은데
그 땐 그걸 믿지 못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했고, 그도 믿지 못했다.
바보같이 남들이 하는 말이 옳은 줄 알았다.
책에 쓰여진 말이, 통계가 맞는 줄 알았다.

세상에 없던 길은 가면 안되는 줄 알았다.

나의 Inner voice는 허무맹랑한 망상인 줄 알았다.

신념도 지조도 없이,
어리석은 불안만 믿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욕심이었다.  
그 모든 것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무치게 후회가 되었다.
그 모든 선택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생은 결코 길지 않았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나를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5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우리 엄마. 
웃는 모습이 호탕했던 그는 그 때 40살.
매년 천혜향을 보내며 애정을 과시했던,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J언니는 그 때 36살,
미소가 참 예뻤던, 한밤중 울음소리와 함께 부고가 날아온 K는 30살,
부푼 가슴을 안고 여행을 떠난지 이틀만에 관에 실려 돌아온 N은 26살,
승무원이 같이 되자며 날 꼬셔놓곤 자기도 금방 오겠다더니 결국 강을 건넌 H는 25살,
내가 인턴으로 뽑아 반년이나 함께 일한
수줍은 취준생 B는 그 때 고작 23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름방학을 맞이하기도 전에 떠나버린 H는 20살이었다. 겨우, 20살.

죽은 자들은 말이 없어서
어떤 마음으로 떠나갔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생은, 서럽도록 짧았다.
기다리라며 돌아선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다.

100살까지는 너끈히 살줄만 알았거늘
잠시 잡은 손을 놓은 앗차하는 그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홀홀히 떠나들 갔다.  

세차게 뺨을 얻어맞았는데도
믿기지 않는 사실에 제 뺨을 여러번 쳐야했다.

한 밤중의 전화가 두렵고, 
소식 들었나요?라는 말에 심장 쿵 떨어진다면,
생의 덧없음을 조금은 알고 있는 걸까.



2011년, 나는 이 섬의 모퉁이를 혼자
비틀거리며 걸으며 한 걸음 한걸음
그렇게 가슴팍에 낙인을 찍듯 통탄했다.
후회했다.

몇 번이나 무릎을 세우려다
비참하게 고꾸라지고 또 고꾸라지기를
수없이 반복 할 때 난 생각했다.
내일일지도 모르는 언젠가 세상을 마감할 때, 
지금처럼 모든 게 욕심이었다고
읊조리게 된다면
삶이 후회로 가득차 있을 뿐이라면...나는...





.
.
.

그로부터 9년.
이제 나는 행복을 아끼지 않는다.

오늘 만난 당신을
내일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기에.
당신에게 베푸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오늘 핀 꽃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을.
뒤로 미루지 않는다.

내게 내일은, 다음은, 미래는 없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만 있을 뿐.
오늘밤 내가 죽게 되더라도 오늘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이 나와 함께 오늘 행복했다고 말해준다면.

YOLO: You only live once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의 욜로라이프의
비하인드스토리는 이런 거였다.

간신히 일어날 수 있게된 그 날들 이후, 
제주에서 내 멋대로 살아온 지난 9년을
후회하지 않는다,
단 한번도 이 삶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깊이 후회하고 있기에.
그 때 엄마와 좀 더 시간을 보낼 걸.
그 때 연인을 세상 반대편으로 보내지 말걸.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이를테면,
나의 가족, 친구들, 골목길과 폭낭,
우리가 주고받는 미소, 계절에 따라 피는 꽃,
깨끗한 공기와 귀밑머리를 간지럽히는 바람..
이 작고 커다란 것들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들숨에 깨닫고 날숨에 감사하는
그런 나날들에 또렷이 의식을 집중하고 있다.

큰 돈과 화려한 경력과 번듯한 명함 대신
나는 이 소박하지만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몹시 열심히 살고 있다.

간절히 소망하며.

내일일지도, 어쩌면 반백년 후일지도 모르는
내 생의 마지막에 내가 지금처럼 말할 수 있길.

내게 생은,
사랑이었다고.

후회가 아닌,
순간 순간의 행복이었다고 .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제주살이러의 내면비행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