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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야니 May 21. 2020

두번째 스무살, 갭이어 여행을 떠나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 내려놓기

한마디로 대놓고 놀겠다는 소리를 있어보이게 포장해놓은 거다.

더러는 10년에 한번, 아니 어쩌면 평생에 한번 가지는 기간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미안, 2011년 제주에 정착한 이래 내 삶은 어쩌면 갭이어의 연속. 공식적으로 일한 날들이 단연코 일 안한 날보다 단연 더 많았다.

그래도 #두번째스무살 이라며, #갭이어 라며 굳이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그래, 떠난다.


놀며 쉬며 일하며 공부하며 배우며 보낸 지난 9년의 제주살이가 이제는 나를 등 떠밀며 이제 되었다,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준다.



삶의 무게가 주는 중압감을 콧김 한방으로 비웃어주기 위해.

오래된 욕조타일에 칙칙한 곰팡이처럼 피어난 무기력을 씻어내주기 위해.

사람들의 의뭉스러운 시선을 향해 "두번째 스무짤"이라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어주며.

그런 내게 누군가는 말했다.

안정된 일상 속에서 관계한 사람들과의 신뢰 속에서 찾는 평온이 진짜 행복이 아니냐고.

엄마로 살아온 누군가는 말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그 보람과 가치야말로 여자로서의 최고의 행복이라고, 이제 그 기회가 몇 년 남지도 않았다고.

그렇게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아빠는 말했다.

이제 아빠는 나한테서 희망을 버렸다고.

어.. 저기 아빠? 그 희망이란게..???


그러고보니 나는 15년쯤 전에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여자로서 졸업하면 적당한 곳에 취직하여 결혼하면 될 것을 굳이 해외로 나가야겠냐고 참 너도 별종이라고.

서른 넘으면 취직할 곳도 없고 받아주는데도 없는데 대체 뭘 믿고 그러냐고. 나중에 분명 후회할거라고.


걱정과 염려라는 포장아래 마구잡이로 내게 던진 말들은 분명 꾸덕하고 기분나쁜 폭력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응원해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다름" "틀림"으로 간주하며 던지는 언어적 폭력은 단연 정당치 못함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이래 늘 안주한 곳에서 떠나는 이가 있어왔다. 또한 늘 같은곳에서  안주해 온 이들도 있어왔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떠난 이들이 모두 불운의 사고로 생존치 못하더라도 인류는 살아남았을 것이다.

또한 떠나서 살아남아 다른 곳에 정착한 이들이 있었기에 불운의 사고로 원래 있던 곳에 남아있는 이들이 죽더라도 인류는 그 삶을 지속시켜나갈 수 있었으리.


9년전 제주에 와서 스스로를 조기은퇴자라 불렀던 나. 그 다음 나는 후리타(알바생)였지만 실상그냥 반백수. 한때는  신문사에서 기획일을 하였. 제주에 대한 애정으로 가이드나 문화해설 같은  일도 하였다. 민박일을 한 적도 있었고 제법 오랫동안 쉐어하우스으로 생활을 영위하기도 했다. 난데없이 공부를 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땄다. 짬날 때마다 요가를 했고 기어이 요가강사도 했다.


한마디로 들판의 망아지처럼 (커리어가) 천방지축이었다.

그 어떤 일도 시켜서 한 일은 없었. 남들이 좋다고 해서 좇아한 일도 없었다. 뭔가 결실을 맺을만하면, 이제 안정되어 돈을 좀 벌만 하면 갑자기 직업을 바꿨다. 잘 있던 곳에서 후다닥 뛰쳐나가기 일쑤였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사실 난 그게 재밌었나보다.

물론 안주하여 안정된 삶을 이어나가는 이들에게 나는 다소의 부러움과 확실한 존경을 가지고 있다.

좀체 할 수 없는 반복된 일상을 꾸준히 반복하는 것. 그럼으로서 그 삶을 안정적으러 유지해나가는 것. 그로 인해 가질 수 있는 달콤한 보상에 대해서도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의 "다 때려치우고 걍 떠나기" 역시 진지한 삶의 움틈이었다.

매순간 분명하고 오롯한 선택만이 나를 이끌어왔다.

해야한다고 하는 강압에 끌려가는 것. 틀에 갇혀 스스로를 한계짓는 것. 대저 할 수가 없다.

근데 그렇게 해왔는데 왠걸 그러고도 진짜 괜찮다.

이따구로 해도 시간은 겁나 많고 저금도 하고 이렇게 여행도 떠날 수 있다. 따로 노력하지 않고서도 소확행을 실천하게 된다. 시발비용으로 헛짓거리를 안하는 것만으로도 금전적인 여유는 있게 된다.

나는 일본어를 잘했다. 영어도 잘했다. 승무원일도 잘했다. 제주도전문가였으며 멋진 요가강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어쩌면 잘하던 것을 다 때려치우는 것. 그리고 다시 뭔지 모를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번 더 말하지만 나는 떠난다.

두번째 스무살을 맞이하며 떠나는 갭이어라는 핑계 아래,  시작은 있지만 그 끝은 알 수 없는 여행.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9년간의 제주살이처럼 이 여행도 분명 오색찬란 할 거야. 1년간 전 세계를 떠도는 신나는 모험으로 가득  거야

처음 목적지는 베트남입니다.
12월에 떠납니다.







.

.

.

라고 쓰고 12월에 정말 떠났습니다.


1년 세계여행을 목표로 떠난 내가 베트남 달랏의 요가 아쉬람에서 6개월을 꼬박 콕 박혀있습니다. 제주로 다시 돌아온 게 작년 여름초입입니다.  콕 박혀있다 하니 갭이어니, 신나는 모험이니 하는 말들이 무색해진 것 같지만..


두번째 스무살은 다르긴 다른가 봅니다. 내면의 여행이 이토록 흥미진진할줄이야요. 나를 아쉬람콕 시켜준 바이러스가 고맙기까지 하니까요.


이 이야기는 승무원이라는 직함을 버리고 제주살이를 선택했던 내가, 이번에는 눈을 감고 떠나는 내면의 비행을 시작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제주에서 요가를 지도하며 명상안내를 하는 "나라야니"라는 요기명을 가진 수련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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