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아직 어릴 적 종각의 우동집에서 서빙 알바를 할 때였다. 어리둥절했던 알바 초에 어느날 우동그릇을 내려놓다가 실수로 엎어버렸다. 불행히도 그릇은 여자손님의 스커트 위로 반쯤 쏟아졌다.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운 국물이었는데!
당황한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고 손이 덜덜 떨리며 그대로 머릿속이 정지되어버렸다.
사장님이 튀어나오고 급한대로 수건으로 닦고 정리를 하고 다시 우동을 내오는 동안 나는 여전히 혼이 빠져있었다. 연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내게 그 여자손님은 오히려 자긴 괜찮다고, 나더러 놀라지 않았냐며 걱정해주셨다.
오래전 일인데도 아직도 그 여자손님의 목소리가 선명히 생각난다. 회사원이었던듯 고운 H라인 스커트를 입었었다. 점심시간에 난데없이 우동 날벼락을 맞았다. 그런데도 우동집을 뒤돌아 나설때까지 되려 나를 걱정해주셨다.
그 날 이후로도, 나는 살면서 무수한 실수를 해왔다. 의도치 않게 실수하여 엉망진창인 상황을 만들거나, 누군가를 상처입히기도 했다. 반대로 내가 모함받기도 하고, 누군가의 실수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누구나 살면서 여러가지 실수를 한다는 걸 알았다. 살면서 참 여러가지 날벼락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배워가고 용서하고 용서받는 기쁨이 있음도 알았다.
" 나에게 무슨 일이 닥쳤는지, 누가 나를 상처입히고 모욕을 주었는지에 집중할 것인가. "
" 내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그리고 거기서부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집중할 것인가. "
우리는 자주 감정과 습관의 동물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언제나 '깨어있는 의식'은 그 선택지를 주며 알아차림의 기회를 열어주었음 또한 배워나간다. 사방이 꽉 막힌 답답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우리는 이와 같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음을 배워나간다.
20년전 우동을 엎은 대참사에 너그럽게 대해주신 회사원언니께 감사드립니다. 그때 그 초보알바는 역경을 딛고 몇년후 세계적인 외국계항공사에서 훌륭한 서버로 거듭났답니다. 그리고 종종 베풀어주신 친절함을 떠올리고 세상의 따뜻함을 느낀답니다.
실수해도 괜찮아.
나 자신에게도, 그 누군가에게도.
우리는 이 곳에 뭔가를 배우기 위해 왔으니까.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옴.옴.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