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친정 부모님에게 가서 이혼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창문을 열고 차를 한잔을 마셨다.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했다. 오늘 날씨는 선선하게 이제 여름의 더위는 지나가는 것 같다.
어젯밤 소송과 관련해서 인지대를 720,700원을 보내고 나니 완전히 접수가 끝난 느낌이 든다. 이제 친정 부모님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고 나면 더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청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마스크를 쓰고 출발했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는 길에 익숙한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어딜 나가시는지 외출복을 입고 나가고 있어서 차를 세우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 어디가? ”
“약속 있어서 근데 웬일이냐?”
“차에 타... 나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어.”
“나 10시까지 영등포에 가야 하는데”
“금방 끝날 거야.”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낮잠을 주무시다가 우리가 들어오는 소리에 일어나셨다.
두 분을 의자에 쇼파에 앉히고 그간의 이야기를 했다. 소파에 앉아 잠잠히 듣고 있던 엄마가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는다. 앞으로 진행될 재판과정을 설명하고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병원 근처에 가지 말고 그 근처 다니던 병원도 다 옮겨. 내가 처리할 거니까 병원에도 가지 말고..’라고 당부를 했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내 말 들었지?’
‘왜 그래야 하냐? 당장 가서 확 죽여버려야지.. 그런 놈은!’
그 말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1달 동안 집 나와서 피눈물 흘리면서 준비한 재판이야. 아버지가 그러면 재판에 불리해진다는데, 꼭 그러고 싶어? 일을 다 망치고 나면 시원하겠어? 아버지 화를 풀려고 내가 재산도 못 받고 쫓겨나야 속이 시원하겠냐고?”
복맞치는 감정에 소리를 지르니 엄마가 진정하라고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부모님의 반응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면서도 나는 오히려 화를 내고 왔다. 왜 그랬을까? 내 행동에 후회를 하면서도 난 아버지의 앞뒤 없는 말에 화가 나서
“ 내가 마지막으로 부탁하는데 그거 하나 못 들어줘? 그냥 가만히 있어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와 버렸다.
차에서 다시 한번 전화를 했다. 제발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달라. 내가 다 처리해야 내 재산이랑 애들 데리고 나올 수 있다. 아버지가 나서서 제대로 될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나의 속마음은 부모님이 가지실 배신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를 처음 만나고 온 엄마는 결혼을 반대하셨다. 시어머니가 빚변제, 아파트, 병원개원, 자동차 등 흔히 말하는 예단으로 열쇠 5개를 원했기 때문이다.
"널 이러라고 그렇게 힘든 공부시켰는 줄 아니?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결혼을 하냐구?" 그날 난 처음으로 엄마한테 맞았다.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군의관으로 관사에 사는 우리 집에 와 보시고, ' 이런 시골에서는 차가 꼭 필요할 거다'라면서 타고 오신 차를 그냥 주고 기차를 타고 돌아가셨다. 이외에도 부모님께서는 IMF시절에 전남편이 개업을 하면서 친정 근처에 개업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돈이 부족한 우리를 4년간 생활비 하나도 받지 않고 처가살이를 하게 해 주셨다. 그뿐 아니라, 친정집으로 걸려오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전화를 통한 욕과 협박을 사위가 힘들어할까 봐 걱정이라면서 아무 말 없이 버텨주셨다. 그리고 큰 아이 희원이를 초등학교 때까지 그리고 둘째 민우가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키워주셔서 내가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수많은 도움을 준 두 분이기에, 지금 두 분이 가지실 배신감이 나 못지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마주치지 않게 하고 싶었다.
두 분께서 병원으로 가서 난리를 쳐도 전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을 사람이다. 오히려 심하다 생각 들면 아마 경찰에 영업방해로 신고할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이 더 힘들어지실 것이고, 혹시라도 흥분하셔서 심장이 안 좋으신 아버지가 큰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친정에서 출발해서 아줌마 집 앞으로 가서 아줌마를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손을 잡고 얼굴이 너무 안 됐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 달간의 이야기를 하며 상간녀 김경아의 사진을 보여주니 깜짝 놀라셨다.
“8층에 살던 아줌마잖아요. 이 아줌마가 아빠 상간녀라고요?”
너무 놀라서 말을 잊지를 못하셨다.
“민우랑 희원이 부탁드려요. 특히 민우는 수능 전에 힘들 텐데 잘 챙겨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할게요... 근데 애들이 알면 나중에 어쩔까요?”
“애들한테는 수능 끝나고 이야기할 거예요. 그때쯤이면 이 새끼는 영주권 신청해서 상간녀 있는 미국으로 도망갈 거예요”
“그러면 어째요?”
“나랑 애들이랑 살면 되는데, 그전에 이혼소송이랑 재산분할 끝내고 도망가면 좋겠어요.”
“지금 이야기들 일부러 말씀 안 드린 거예요. 왜냐면 알고 계시면 그 인간 얼굴 매일 보기 힘드실까 봐. 근데 제가 소송을 시작해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어요. 아마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테니까 아줌마도 모른 척하고 피하세요. 아줌마가 알고 계신 것 알면, 바로 그만두게 할 거예요. 미리 준비도 하시라고요.”
“ 내가 알아서 잘할 거예요. 민우가 수능 때까지만 있으면서 챙겨주면 좋겠는데....”
“ 다음 주에 소장받고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비노릇 제대로 하라고 내가 나온 건데, 아버지로서 민우 수능 챙겨야죠.”
“어젯밤에 아빠가 저녁 먹으면서 그러더라고요. 어떻게 아들이 수능을 앞두고 있는데 집을 나가느냐고?”
인면수심의 어이없는 소리였다. 지가 피해자인 척하는 코스프레에 분노가 일었다. 그것마저도 이제 곧 끝날 것이다.
아줌마에게 추석 선물과 봉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를 탔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화가 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내비게이션이 가르치는 방향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서 다시 고속도로로 합류하려는데 눈앞이 깜깜해지고 갑자기 차가 막 달리는 느낌이 들리더니 옆 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컨테이너를 실은 커다란 트럭 안에서 창문이 열리고 젊은 남자가 소리를 지르는데도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문을 열고 너무 미안하다고 하고 차를 옆으로 빼겠다고 했다. 내 차의 왼쪽이 쭉 긁히고 트럭의 문 앞이 긇혔다. 둘 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나는 다리의 힘이 풀려서 제대로 서있을 수 조차 없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죽고 싶었나?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핸들을 잡다니...’
보험사에 전화를 하고 사고번호를 보내주고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사진을 찍고 차로 돌아왔지만, 다시 도로로 들어가면서도 내가 운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영혼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내 이성이 내 몸을 떠나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운전하기 싫고 아무 생각이 없더니, 아버지와의 다툼에 너무도 속상해서 온통 그 생각뿐이다 보니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자동차 서비스센터에 가서 문의를 하니 5일은 걸리고 400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고 한다. 머리를 숙이고 내가 왜 이렇게 오늘 일을 저지르나 하는 생각에 암담했다. 답답함에 소리라고 지르고 싶었다. 오늘은 도무지 되는 일이 없었다. 앞으로 계속 이러면 어쩌지?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다.
오늘 차를 맡기면 다음 주 목요일 회의에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차를 다시 끌고 집으로 왔다.
먼저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었다. 참 버겁다.. 내가 이혼하는데 왜 이리 이해를 받고 설득해야 할 사람이 많을까? 둘이 헤어지는데 과정도 복잡하고 이제 지저분한 돈 싸움만으로도 버거운데,,,,
지영과의 약속에 갈 수 없다고 문자를 했다. 차 사고를 내고 집에 있다고 하니 오후에 집으로 오겠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깨니 지영이가 내가 부탁한 소주를 2병 사 왔다. 저녁을 차려먹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재료들을 써야 하니...
코코넛 오일에 고기를 굽고 밑반찬을 두 개의 쟁반에 각각 챙기고 지영이가 사 온 한우 곰탕과 햇반을 챙겨서 준비를 했더니 지영이가 묻는다.
“너 집에서도 이렇게 챙겨줬니?”
“그럼... 왜?”
“네 전남편은 정말 복을 찬 거다... 마누라가 이렇게 이쁘게 챙겨주는 밥 못 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복에 겨운 줄 모르고 섹스에 환장해서 지저분한 상간녀랑 살면서 지가 살림하면서 고생 좀 해봐야 알지.”
“살림보다는 섹스가 더 중요한가 보지.. 뭐”
지영의 말이 날 위로하기 위한 거란 걸 알면서도 위로가 된다. 그 어떤 욕을 한 거보다도 지복을 지가 찼다는 말이 왠지 날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기뻤다.
저녁을 먹고 지영을 보내고 혼자 공원을 걸었다. 1시간 반정도 걷고 슈퍼에서 찬거리를 사서 들어와 누웠다. 너무 흥분해서 빨리 씻고 수면제 먹고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누웠는데, 2시간도 못 자고 눈이 떠져 버렸다. 오늘은 수면제도 효과가 필요 없나 보다. 소주를 한잔 담아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기를 쓰며 앞으로 내가 겪을 일들이 얼마나 많을지,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이렇게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