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H, READING,SUCCESS”라는 구호에 반대합니다.
2019년 5월 10일 Brooklyn Carroll St Station에 오전 8시 정도의 이른 시간에 간 적이 있다. 미국은 나에겐 아직 낯선 곳이라 이전에 들러 본 적이 없는 동네라면 내가 사는 곳과 아무리 가까워도 다시 먼 나라로 느껴진다. 역 근처에는 P.S. 58 The Carroll School이라는 초등학교가 있었고, 젊은 엄마들이 교통경찰용 조끼를 입고 건널목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지도를 하고 있었는데 이 모습은 나를 15년 전 즈음으로 시간 여행하도록 만들었다. 녹색어머니회 같은 거로 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피식 웃음이 나오고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살짝 나를 사로잡았다.
혼자 빙그레 웃으며 몇 걸음 걷다가 나는 더 재미있는 모습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CUMOM” 내가 아는 그 구몬? 크게 쓰여 있는 상호 옆의 작은 글씨 설명이 더 인상적이었다. “MATH, READING, SUCCESS” 여기는 한국이 아닌데. 국영수 위주의 교육은 여기서도 중요한가? 국영수를 잘하면 성공할 수 있나? 한국에서 얼마 전까지 수험생의 엄마였던 나는 잊고 있던 나의 젊은 엄마 시절 기억들이 떠올랐다.
딸아이는 어릴 적 참 영민하고 야무졌었다. 또래보다 어린 나이에 셈을 가르쳤는데 곧잘 이해를 했고 아이를 키우는 게 나의 능력을 발휘할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내가 만들어낸 성과에 혼자 도취하고 있었다. 다른 건 모두 양보할 수 있어도 내 아이의 학습 우위는 누구에게도 양보할 마음이 없는 독한 엄마 시절이었다. 다른 애들은 못하는 셈을 하는 능력을 지닌 딸을 자랑스러워하며 틈만 나면 은연중에 자랑을 했다. “지금 블록이 7개 있는데 몇 개가 더 있어야 10개가 되지?”, “음, 3개”, “아~~ 그렇구나 호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덧셈이 그냥 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속도의 경쟁으로 접어들었다. 4돌 정도에 익힌 실력으로 이제까지 수학 우등생이던 딸은 위기에 직면했다. 자기보다 수학을 잘하는 애가 나타난 것이다. 아이는 기특하게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도 친구를 구슬려 알아내어 내게 알려주었다. 그게 구몬이었다. 엄마에게 구몬을 하겠다고 요구했고 나는 거절했다. 거의 암기에 가까운 수학계산을 하느니 그냥 틀리라고 했다. 젊은 엄마의 자존심이었다. 학급에서 구몬을 안 하는 유일한 어린이였던 딸은 자포자기했고 수학에 자신감을 잃어가며 한 학기 정도를 보내다가 두 자리 숫자 덧셈 빨리 하기 단원이 넘어가자 안정을 찾았고 일 년쯤 지나자 구몬을 안 하게 해 줘 고맙다고 내게 말했다. 이미 그때쯤 엔 모든 아이들이 구몬에 질려 있는 상황이었고 학습지는 엄마와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의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는 국어 시험 주관식 답을 언제나 자기의 주관에 맞혀 써서 틀리곤 했다. ‘위의 글에서 지은이가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답:이순신 장군(실제 답은 작은 아버지였고 이순신 장군은 누가 봐도 위대하므로)’ 뭐 이런 식이다. 물론 글을 깊이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나는 아이에게 항상 강조했다. “말과 글은 표현한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할 때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을 왜곡이라 한다. 창의적인 해석 이전에 기본으로 통하는 마음은 서로 같아야 하고 이를 가르치는 것이 학교다. 글을 읽으며 딴생각 좀 하지 말아라” 나의 이런 조언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혀 아이에게 먹히질 않았고 수능 국어까지 영향이 있어 점수가 좋을 리 없었다. 그러다 아이는 대학에 들어갔고, 공모전이나 제안서 등에 글을 쓸 일이 생겼던 것 같다. 거기에 통과하기 위해 안달이 났던 아이는 이제 내가 뭐라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자기가 알아서 말과 글로 다른 사람에게 어필하려 노력한다.
아들 역시 구몬을 한다고 설친 적이 있다. 어려 서부터 물욕이 많았던 아이는 어린이날에 구몬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각종 선물을 자랑하는 친구를 보고 구몬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던 아이는 친구의 구몬 학습지를 보자마자 깨끗이 돌아섰다. 난 속으로 ‘넌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결국 내 아이 둘은 구몬을 해보지 못하고 이제 다 자라 대학생이 되었는데, 구몬이 성공을 보장하는 게 맞았을까? 난 아직 성공이 뭔 지 잘 모르지만 나에게 성공은 스스로 나를 인정할 수 있는 게 성공이다. 남이야 알아주던 말던. 하지만 내가 인정을 하려면 스스로 이루고 싶은 대상이 있어야 한다. 성공을 위해 지루하고 반복적이고 괴로운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자신의 의지로 그 시간을 이겨내는 것과 주위의 바람으로 견뎌내는 시간은 다르다는 생각이다.
구몬을 오래 시켰어도 내 아이들은 보통의 부모가 원하는 성공은 가지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 작은 것이라도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것을 찾아낼 줄 알고 그것을 이루는 게 성공이라 여긴다. 그런 과정을 위해서라면 구몬은 “MATH, READING, SUCCESS”라는 슬로건을 쓰면 안 될 것 같다. 서울에서 온 엄마도 그 정도는 아는데 브루클린은 아직 멀었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