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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udentJ Apr 11. 2021

미국에서 느낀 문화적 차이

Pending, Private Space, Lawyer up

이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있을까? 자연현상을 빼고 인간이 만든 것 중에 원래 그런 것은 찾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하지만 원래 그랬던 것처럼 혹은 누구나 그런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일들이 많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의 햇수도 늘어나면서 여유도 생기고 뭐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좀 더 나쁜 쪽으로 말하면 자기만의 고집도 자리 잡으며 당연시 여기는 사회현상이 점점 많아지고 생각했던 바와 다른 일이 생기면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적 차이라는 걸 말만 들어봤지 나 역시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경우에나 문화적 차이가 문제가 될 거라 여겼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입지가 단단히 있고 미국에 가는 것은 그냥 비즈니스와 경험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으므로 문화적 차이가 있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면 대수랴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는데 나는 충분히 다른 문화를 존중할 자세가 되어 있는 현명한 국제 시민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철저한 개인주의이고 다른 사람의 일에는 별로 간섭을 안 하고 애들도 혼내지 않고 약속이나 법규도 잘 지킨다고 했던 것 같은데 과연 어떨지 기대되는 마음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미국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동안 나는 젊어짐을 지나 다시 어려지는 것 같았다. 모르는 게 많아 당황하고 어리숙한 모습이 20대의 나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몰라도 잘 물어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조금은 뻔뻔해져서 부끄러움 없이 질문을 잘한다는 점이다. 잘 모르는 분야도 다양해서 남들은 다 아는데, 이미 어렸을 때부터 아는데 나만 모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차라리 미국 남자랑 결혼해서 그에게 모든 걸 의존하며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더라면, 아니면 가족이 이민 와서 서로서로 배워가며 위로해가며 살 수 있었으면 하는 허황된 바람을 했다. 하나하나가 모두 낯설었지만 그중에 유독 적응이 안되거나 혹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이해 안 되는 일들이 있는데 바로바로 문제의 해결에 대한 가부를 결정하지 않는 pending, private space, 그리고 변호사가 언제나 필요한 lawyer up이다.


Pending은 지금도 잘 적응이 안된다. 회사일로 은행 송금을 하는 경우 돈이 바로 출금되는 게 아니고 이른바 ‘출금 중’인 것이 바로 pending이다. 돈이 나가면 나가고 아님 바로 상대편 통장으로 찍히든지, 가는 중은 뭔가? 송금수수료도 많은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이런 불편함 때문에 페이팔 같은 금융 핀테크 스타트업이 미국에 그렇게 많이 생겼나? 해외 송금은 더 답답했다. Pending이 며칠이나 걸린다. 처음 해외로 송금했을 때는 송금이 잘못된 줄 알고 여러 번 시도하다가 계좌가 정지되어 은행에 가서 물어보고 결국은 콜센터에 전화하여 해결했다. 두어 시간 전화기를 붙들고 이루어 낸 성과였지만 그것도 결국은 지금은 Pending이니 며칠 있다가 잘 송금이 됐는지 확인하라는 거였다. 

내가 이런 문화가 왜 이렇게 적응이 안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그건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느라 항상 멀티플레이어가 되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여러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피곤한 거라는 생각으로 상대편이 문제를 해결해서 적극적으로 내게 통지를 해주도록 해왔기 때문에 내가 기억했다가 다시 확인해야 하는 일은 싫어했던 거다. 어쩔 수 없이 싫은 건 싫은 거다 하지만 이런 제도의 장점은 하나도 없을까? 나는 답을 맹자의 한 구절인 불영과 불행(不盈科不行 물은 웅덩이를 채우고서야 비로소 흐를 수 있다)이라는 말에서 찾으려 한다. 뭔가 매듭짓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이 들고 난 이후에는 더 큰 뒷심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데 참는 힘이 부족하게 살아왔던 거다. 그래도 답답하기는 하다. 정부부처에 내는 서류도 접수가 됐는지 안됐는지 확인해 주는 연락이 한 달 이상 걸리기는 태반이다. 과연 일을 하고는 있는 건지 의심될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여기는 그런 것을.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자질구레한 민망함은 24시간 각오를 하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가면 잊히는데 한 가지 사건은 기억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뉴저지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이를 집주소인 뉴욕시로 바꾸려고 DMV라고 운전면허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무실에 간 적이 있다. 오래 기다리기로 오죽 악명이 높으면 ‘주토피아’라는 애니메이션에서 DMV에서 일하는 사람을 나무늘보로 표현했을까? 하여튼 오후에 도착하면 그 날 일정은 아예 포기하고 일을 봐야 하는 곳이 DMV다. 

그날도 불친절의 표본인 DMV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하염없이 기다리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종종걸음으로 달려간 내 마음도 몰라주고 담당 직원은 내가 내민 서류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매일 비슷한 서류를 볼 텐데 뭐 그리 뚫어져라 들여다보나? 뭐가 잘못됐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녀가 들여다보는 내 서류를 같이 보는데 갑자기 그녀가 내게 뭔가 물어봤다. 나는 대답을 하면서 그 내용은 여기쯤 있다고 서류의 어떤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그녀는 소스라치는 반응을 하며 자기 구역을 넘어오지 말라고 내게 경고했다. 그녀는 나에게 온몸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때는 2020년 이전이라 팬데믹 상황도 아니었고 그녀의 테이블은 조작 40CM 정도의 폭이었으며 우리 사이에는 가림막 같은 것은 없었으니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그녀의 공간이 어디까지 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기세에 눌려 입을 다물고 기다렸지만 매우 기분이 상했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태도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절차는 마무리되었고 나는 지겹고 불쾌한 공간에서 나와 집으로 갔다. 별일이 아니라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기억이 씻어져 나가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그 기억이 계속되어 나는 현지 사람에게 어제 일을 얘기하며 혹시 인종차별 적인 행동이 아닌지 물어보았다. 그는 나를 위로하며 그런 것은 아니고 그녀는 Private Space를 원했을 거라고 얘기해줬다. ‘젠장 거기서 무슨 프라이빗 스페이스냐?’라는 생각이 들어 나의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전에 미국 사람에 대해 들었던 거짓말을 안 한다, 교통질서를 잘 지킨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 등등은 내 짧은 경험으로는 ‘사람마다 다르다’이다. 어릴 때부터 인종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철저히 받는다고 하지만 DMV의 그녀는 내 서류를 들여다보는 게 짜증이 났음이 분명했다. 차별을 당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차별할 기회가 있으면 더 한다는 것은 그 예가 다양하고 지금 2021년 미국은 아시아인 혐오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차별에 대해 철저히 교육받았다는 그들이 이게 웬 말인가? 차별과 무시는 너무나도 확연히 존재하며 그것은 계란을 마주치면 꼭 어느 한쪽, 아주 미세하게 약한 쪽이 먼저 깨지듯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이민자의 땅이라는 뉴욕, 맨해튼에서 언제까지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내가 개인적으로 여유로운 마음으로 조용히 그녀에게 조목조목 따지는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만이 진정 존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줬으면 하는 태도로만 남을 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그녀는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결론 내고 그날의 기억을 잊으려 애쓸 뿐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의 비즈니스는 변호사가 없이는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것이 매우 어렵다. 한국에서 15년 이상 사업을 하면서 변호사를 만날 일이 없었는데 미국에서는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변호사 먼저 만나야 했다. 좀 규모가 있는 회사와 계약이라도 하려면 변호사의 검토가 필수이고 직원을 채용할 경우에도 사업을 확장하면서 회사 지분을 분할하는 경우에도 변호사와 같이 하는 게 필수이다. 개인적으로도 차 사고가 났을 때,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등등 무조건 변호사를 선임한다. 심지어 지인이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병원에 다녀오자마자 변호사에게서 받은 전화가 열 통이 넘는다고 했다. 미국인들은 법을 좋아하나? 아니면 변호사의 수가 너무 많아서 인가?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 분쟁에 대해 객관적인 제삼자가 필요해서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는 점점 책임질 용기를 갖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가 되어간다. 


내 경험으로는 내가 한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할 때 15년 전 처음 회사를 할 때보다 지금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하다. 새로운 운영기법, 마케팅 기법이 나오고 노동시장이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변해감에 따라 나는 내 기준이 과연 맞는지 의심이 되었고 의심을 푸는 방법은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우리도 사회가 복잡하고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문제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외부의 조력자가 모든 일에 나서야만 하지만 어떤 일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거다.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피곤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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