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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미 Feb 23. 2021

가끔씩 나는 <가만히 서있어>

그림책으로 마음 안기

그림책으로 마음 안는 시간,


“오늘 당신은,

당신의 하루에서

어떤 그림을 그렸나요?”






나는 지금 서있다.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상태이다. 억지로 한 발 내딛으려고 하자 마음이 그만두라고 한다.


마음에게 충실해서 서 있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편하다. 이런 감정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고민스럽기만 하다.


한참을 바쁘게 지내다가 어느 한순간 딱 정지된 것처럼 잉여의 시간들이 찾아왔다. 그 잉여의 시간에 걸맞게 난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가끔씩 나는
가만히 서있어.



어느 날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장면에 이끌려 가져온 그림책의 첫 장을 무심코 펼치자마자 이유를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과 마주하여 당황스럽기만 하였다.


‘가끔씩 나는 가만히 서있어.’ 이 한 문장에 온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잉여의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이제 좀 쉬고 싶다고, 쉬게 된다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고 조잘조잘 대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시간이 없어서 힘들다고 투덜투덜 대기만 했는데,


막상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당황스러웠다.

무언가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쉼이 오고 여유가 왔는데 마음의 불안도 같이 와버렸다.

마음의 평안함이 온전히 서있지 못하고 불안하게 나를  흔들었다.


조미자 그림책. 가끔씩 나는 / 도서출판 핑거



움직이지 않는 나,
움직이지 않는 세상.



나는 이 불안의 이유를 찾으려 한참을 고민했다. 나를 잘 아는 오래된 친구에게 묻기도 하였고, 책을 보기도 하였다.

과거로 가보기도 했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불편한 감정들이 나를 꽁꽁 묶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기력한 기운이 나를 덮고 있는 듯했다.


나의 멈춘 발걸음에 문제가 생긴듯하다. 마음도 같이 멈춰버린 듯하다.


무엇도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에서부터 불안이 시작된 듯하다.


나의 ‘불안’을 두고 친구와 열띤 토론을 나누었을 때 결국 해결책은 내가 갖고 있으니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을 객관적으로 찾기 위해 가만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꽁꽁 숨어버리고 싶은 날이 있어,
지금의 나의 모습처럼.
한참 동안 내 마음은 깜깜하고 아주 작은 방 같아.



어느 날엔가 요가매트에 누워 몸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움직여보았다. 의미 없는 동작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할까,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할까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다.  고요한 명상이 계속되었다. 고요한 명상 끝에 다 다른 생각은 뜻밖이었다.


뜬금없이 나는 스스로에게 칭찬을 내뱉고 있었다.


‘잘해왔는데 왜? 열심히 했잖아?’


내가 찾은 불안의 원인은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었다.

무엇인가 내 마음을, 노동의 대가에서 육체를, 타인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혹사하여야지만 잘했다고 개운하다고 이제 좀 사는 것 같다고 믿었던 것 같다.


조미자 그림책. 가끔씩 나는 / 도서출판 핑거


‘멈춤’이 이내 못마땅한 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오는 ‘불안’이 마치 내가 다 소비되고 쓸모없는 인간이 돼버리는 것은 아닐까.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불안이 점점 커져서 나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인생은 어쩜 늘 불안하고 불확실성의 연속일 텐데. 그 불확실에서 오는 불안을 막기 위해 우리는 늘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더더더 노력해야 해. 더더더 계속해야지. 끊임없이, 멈추면 안 돼...


나에겐 그동안 여러 속도의 발걸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린 편이지만 나만의 템포에서

빠르기도, 느리기도, 가만히 서 있기도 하였다.


모두 다 나의 모습인데 유독 멈추어 있는 발걸음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시간을 주지 않는다. 기다림 없이 다시 걸으라고 보채려고만 한다.


이러한 내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던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느껴야 하는 것은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일, 나를 잘 다독이고 나와 가장 잘 지내는 일,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즐겨야 하는 일. 결국은 알아차림


내가 빠르게 걸을 때의 이유

내가 천천히 걸을 때의 이유

멈춰 있을 때의 이유


다 이유가 있을 텐데. 우린 그렇게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지혜로운 존재일 텐데, 다그쳐봤자 불안해봤자 아플 건 나인 거잖아


나는 지금 이 감정에 충실해야겠다. 마음은 조금 아프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다시 빨리 걸으려 할 때 지금 멈춰있는 발걸음의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될지도 모르잖아.

조금만 시간을 주자,,




나는 다시 걸어가.
나의 리듬으로.
조미자 그림책. 가끔씩 나는 /도서출판 핑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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