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웬 Dec 21. 2021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잖니?

왠지 짠한 SNL 인턴 기자 주현영

"사장님, 저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둘게요."

2개월 남짓 일을 한 현이(가명)가 갑작스럽게 그만둔다는 얘길 했다. 자세한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몇 번의 실수가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괜찮다고, 누구나 초보 시절엔 통과의례처럼 겪는 과정이라고 다독였지만 이 일과 자신은 너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단호하게 말하는데 더 말해 무엇하랴. 대화가 길어질수록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걸 보고 설득을 포기했다.



최근 화제가 된 방송 중 SNL 코리아의 '인턴기자 주현영'이란 코너가 생각났다. 다들 주현영 기자가 말하는 20대 여성 특유의 말투에 열광하고 박장대소를 했지만 그 방송을 볼 때마다 내심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베테랑으로 보이는 앵커(안영미)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당황하고 말을 더듬고 급기야 화면 밖으로 줄행랑을 치는 그 장면이 마치 청년들의 현재 모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개그 프로그램 특성상 어느 정도 과장되었고 또 어떤 이의 말을 빌리자면 그 장면이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초년생들에게 과도한 완벽을 요구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풍자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보는 입장에선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소통의 부재'를 여기에 갖다 붙이는 건 과도한 비약일까?


언제부턴가 가게에서 일하는 근무자들과 나와의 관계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선을 넘지 않는 관계가 되어 버린 게 현실이다. 어느 정도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있던 사이가 철저히 비즈니스 관계로 변했다. 각자 정해진 시간 열심히 일을 하고 교대 후 퇴근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근무시간이 끝나자마자 짧은 인사와 함께 바람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면 뭔가 정서적으로 메말라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은 옳고 지금은 잘못되었다는 말로 비칠까 우려스럽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꼭 근무시간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맞으면 밖에서 만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기도 했고 가게 일과는 별도로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많았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에 대한 호칭이 언니에서 이모로, 이모에서 여사장님으로 바뀌는 동안 많은 게 달라졌다. 그게 단순히 많은 나이차에서 발생되는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아무 말 못 하고 꿋꿋하게 참고 버티는 게 최고의 미덕처럼 여기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할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말하고 바라는 게 있으면 떳떳하게 요구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는데 그에 비해 모든 결정이 너무 성급하고 충동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 모든 일을 결정하는 젊은 사람들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모 점포에선 퇴근 전 바닥 청소 좀 하고 가라는 지시에 '지금 저한테 갑질 하시는 겁니까? 노동청에 고발하겠습니다.'라며 유니폼을 던지고 나갔다는 웃지 못할 소식도 들었고 또 어떤 점포는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미성년자 동네 후배들을 시켜 담배를 구매하게 한 후 그 자리에서 자진신고를 해서 업주를 처벌받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업주와 근무자 사이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은 결과라 생각한다. 오죽하면 본사에서 정기적으로 내려오는 공문에 권장사항으로 근무자들과의 유대관계를 강조하는 문구가 포함이 되어 있을까.


선천적으로 입 떼는 걸 싫어하는 내가 사회 경험이 없는 20대 초반의 학생이 일을 하러 오면 꼭 해주는 말이 있다. 단순히 일을 하고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미리 사회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을 하라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엔 편의점만큼 좋은 곳도 없다고 말이다. 그 과정 중에서 하나라도 깨닫고 얻는 게 있다면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 도움이 될 때가 있을 거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현이는 다음날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순간적으로 분을 참지 못하고 말을 해서 죄송하다며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보겠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한순간 '요즘 젊은 애들이 다 그렇지 뭐.'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현이의 이번 결정이 앞으로 본인이 살아감에 있어 한 단계 더 성숙하고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에 현이가 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현이야, 내가 이 일 하면서 속칭 SKY 다니는 애들도 일을 시켜 봤는데 처음엔 다들 실수를 하더라. 아무리 똑똑해도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선 누구나 다 실수를 해. 그다음이 문제야. 그게 되풀이되면 문제가 되지만 대부분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고. 앞으로 어딜 가서 뭘 하더라도 무슨 일을 결정할 때 한 번만 더 생각하고 결정하자. 알겠지?"


설마 이 말 듣고 나를 꼰대 취급하진 않겠지?

그건 그렇고 우리 주현영 기자님은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건가 모르겠네. 한 번쯤 이겨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데.


표지 사진 출처 : SNL 코리아 방송 화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