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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Dec 27. 2021

사람,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요?

저는 점점 의심병 환자가 되어 갑니다

경기도 어느 도시에서 장거리로 택시를 이용한 20대 여성 두 명이 잔액이 없는 교통카드를 기사님께 주고 그대로 줄행랑을 친 사건이 있었다. 요금은 8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으로 택시 요금치고는 꽤 많았다. 기사님은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했지만 얼마 후 경찰로부터 범인 추적이 힘드니 신고 취소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엉겁결에 신고 취소서를 작성한 기사님은 억울한 마음에 언론에 제보를 했고 현재는 재수사 중이라고 한다.


처음 그 영상을 보고 든 생각이 경찰이 과연 강력범 검거하듯 최선을 다 한 것이 맞냐는 의문이었고 두 번째는 앞으로 저 기사님은 손님이 차에 탈 때마다 예전처럼 고객을 대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였다. 믿고 사는 사회를 늘 꿈꾸지만 가끔씩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젊은 사람들이 70대 어르신을 대상으로 그런 사기를 치다니 세상을 그렇게 살고 싶을까?



내가 영업을 하는 곳은 관공서 인근이라 주변에 공영주차장 시설이 밀집해 있다. 운영하시는 분이 장애인이거나 국가유공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 분들도 엄청난 중노동에 시달린다. 근무시간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보통 아침 9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간혹 차 키를 찾아가지 않을 때엔 새벽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킬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다음날 출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내게 차 키를 맡기고 퇴근을 하시는데 대부분의 고객들이 정상적으로 계산을 하고 가지만 가끔씩 얌체 짓을 하는 인간들이 있다.


지갑이 차에 있어서 그러니 차 키를 잠깐 주면 다시 와서 계산하고 가겠다 해놓고 그대로 사라지는 사람, 배기량 3,000cc 이상의 외제차를 주차하고는 경차라고 우기며 50% 할인해달라고 하는 사람, 사지 육신 멀쩡한데도 장애인 차량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50% 할인해달라는 사람, 주차비를 미리 선결제했으니 차 키를 내놔라는 사람 등등 다양하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희한하게도 고급차,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다들 그런 식으로 해서 큰돈을 벌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의심 많은 성격인 내겐 사람에 대한 막연한 불신까지 생겼다.


이런 일들은 우리 가게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급히 나오느라 카드 하나만 들고 왔는데 카드를 잘못 들고 와서 그러니 일단 물건부터 먼저 주면 안 되냐고 하는 사람, 나중에 송금해 줄 테니 계좌번호 적어달라고 하는 사람, 인근 가게 간판 이름을 대며 심부름 왔다고 하는 사람까지 그 유형도 가지각색이다. 장사를 처음 시작했을 땐 순진하게도 이런 사람들을 모두 믿었었고 그때마다 나는 늘 뒤통수를 맞았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자정을 갓 넘기고 날짜가 바뀐 시점에 여성 고객 한 분이 들어왔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날짜가 바뀌면 거의 모든 금융권들이 시스템 점검을 위해 모든 거래가 중지가 된다. 은행이나 카드사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 정도 결제도, 송금도, 출금도 되지 않는다. 이 고객분도 거기에 걸렸다. 정확히 00시 01분에 결제를 시도했으나 당연히 되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엔 기다렸다가 결제를 하거나 그냥 조용히 물건을 두고 가는 일이 많은데 이 고객은 급하다며 나중에 송금해줄 테니 계좌번호를 적어달라고 했다. 거절하자니 겨우 돈 몇 푼에 사람이 쪼잔해 보일 것 같고 그렇다고 덜컥 믿었다가는 뒤통수 맞을 거 같기도 하고 난감함에 어쩔 줄 모르다가 속는 셈 치고 번호를 적어드렸다.


나가면서 00시 10분까지 점검이니 정확히 11분에 꼭 송금하겠노라 얘기를 하고 갔는데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입금을 알리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 무슨 사정이 있어서 늦어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또 이렇게 속았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마음이 심란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4,900원에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냐고 말을 하겠지만 그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이렇게 또 당하면 약속을 지키는 선량한 사람까지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는 게 제일 큰 문제라는 거다.


내겐 30분처럼 길게 느껴졌던 3분의 시간이 흐른 후 은행의 알림 문자가 왔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돈을 받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아직까지 믿을 사람이 있다는 점이 더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와 함께 짧은 시간이나마 고객을 믿지 못했던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래전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설마 그럴 리가 있냐는 얘기였다. 미국에 사는 지인은 그게 한국이니까 가능한 일이라 했다. 미국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부분 그냥 기다리든가 돌아간다고 했다.


언젠가 한 번은 만취 상태로 들어온 고객이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자는 것을 깨워서 보냈더니 자기 지갑을 훔쳐갔다고 난동을 부린 적도 있다. 경찰이 오고 CCTV를 확인한 후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다.


길거리를 걷다가 누군가 내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상황의 위급한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어떻게든 내가 책임을 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 같다. 조금 야박해 보이긴 하겠지만 선뜻 나서서 돕겠다는 장담은 못하겠다. 섣불리 돕겠다고 나섰다가 후폭풍이라도 발생하면 그 감당은 누가 해야 할까? 이런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부디 앞으로의 세상은 좀 더 믿을 만한 사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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