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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an 01. 2022

새해 첫날의 풍경

오늘의 일기

매일 밤에 출근을 하고 얼마 있지 않아 날짜가 바뀌는 삶을 살다 보니 내겐 새해 첫 날도 그저 그런 하루의 시작일 뿐이다. 평소와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새해를 맞아 성인이 되는 미성년자들의 러시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12월 31일 23시 50분이 넘어설 무렵부터 가게는 인산인해를 이루기 시작했다. 날마다 이 정도 손님들이 온다면 1년 안에 재벌이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무한 러시다.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 얼마 동안은 그 모습이 너무 싫었다. 거의 대부분 3~4명씩 무리를 지어 들어오기에 대여섯 팀만 들어와도 카운터에서 말하는 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럽기도 하고 행여나 젊은 혈기에 서로 부딪혀서 싸움이라도 나면 큰 일이기에 본의 아니게 현장 진행 요원처럼 수시로 정리를 해줘야 하는 업무 외 일을 하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인지 다년간 겪어온 경험에 의한 내성이 생긴 탓인지 갓 성인이 되어 흥분지수가 최고에 이른 아이들의 모습에 거부감이 없어졌다.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싶은 생각도 들고 내가 살았던 시절과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동안 억눌려 살았던 것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마음껏 누리고 싶은 그 심정을 이해할 위치가 된 것이다.


자정이 지나 2시간 넘게 폭풍처럼 이어지던 2003년생들의 행렬은 3시쯤 되어 잦아들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듯한 매장 내부를 정리하며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전날 오후부터 14시간 넘게 일을 하고 그제야 퇴근을 하는 아내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햇수로 벌써 18년째, 우리 부부가 사는 모습이 너무 불쌍하다고 야간 근무를 자원해 준 알바가 대신 근무를 했던 2007년 한 해를 빼고는 늘 같은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아내가 집에 도착했는지 전화를 걸 무렵 배송되는 상품들.

일요일 하루만 쉬고 매일 새벽 배송을 하시는 기사님께 신년인사를 드리고 본격적으로 새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나마 오늘은 새해 첫날이라 적게 주문했다


폭풍 뒤의 고요함을 느낄 틈도 없이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정리하고 분주히 움직이며 청소를 하고 자리에 앉으니 이미 일출 시간은 넘었다. 높은 산이나 바다에서는 이미 새해 첫날의 해가 보이리라. 이렇게   해의 시작을 맞이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재 시각 6시 23분.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자리에 앉아 월요일에 들어올 상품들을 주문하기 전 잠시 시간을 내어 글을 쓴다. 간간히 찾아오는 손님들 중 90% 이상이 2003년생이고 그중 대부분이 자정 무렵 왔던 아이들이다. 젊음이 좋긴 좋구나. 그렇게 마셔대고도 아직도 생생한 걸 보니. 잔뜩 꼬부라진 혀를 통해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하지만 그래도 다들 표정이 밝아서 보기 좋다.


이제 두 시간 후 집으로 간다. 다행히 오늘이 주말이라 근무시간이 평일보다는 짧다. 새벽 늦게 들어간 아내도, 새벽까지 엄마를 기다린 딸도 늦잠을 잘 것은 분명하니 집에 들어가기 전 어디 잠깐 바람이나 피러....... 아니, 바람이나 쐬러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가 이내 접었다. 새벽 몇 시간 동안 평소 하루 매출의 60%를 넘게 찍느라 몸상태가 말이 아니니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2022년의 첫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저 멀리 밝아오는 하늘이 보인다.

다시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올 한 해 건강하고 행복하고 안녕하기를 기원한다.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메인 사진 출처 : 마산 사궁두미 일출, 오래전 본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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