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외로운가요? 저도 그렇답니다
"밤에 혼자 있으면 안 무서워? 많이 심심할 것 같다."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누님과 안부 문자를 주고받던 중 내게 물어봤던 것들이다.
당연히 무섭지. 강도가 칼을 들고 뛰어들까 봐 무섭고 술 취한 사람이 난동을 부릴까 봐 무섭다. 심심하진 않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심심할 틈이 없다. 예상외로 새벽에 찾아오는 고객이 제법 있는 편이며 정해진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그보다는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이 더 크다. 특히 동이 틀 무렵, 새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전까지의 고요함은 외로움을 더 강하게 만든다.
연말이 되면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씩씩하게 뒷문을 활짝 열고 뛰어 들어와 "안녕 오빠~~"를 외치던 그녀.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18년 가을 무렵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타냐(가명)라고 소개한 그녀는 태국에서 왔다는 얘기만 했을 뿐 그 외에 그녀가 무슨 일 때문에 한국에 왔는지 와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모른다.
타냐는 2~3일에 한 번씩 친구 2명을 데리고 왔는데 올 때마다 스낵, 컵라면과 함께 캔맥주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항상 특정 브랜드 맥주만 고집을 했었는데 그 맥주가 본인 입맛에 꼭 맞다며 넉넉히 준비해달라는 뜻으로 "오빠, 호OO 마니 마니~~"를 외치곤 했다.
몇만 원씩 되는 금액을 수수료 없는 현금 결제로 해서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어딜 가서도 주눅이 들지 않을 듯한 그녀 특유의 씩씩함과 웃는 얼굴만으로도 그녀는 내게 최고의 고객이었다. 계산을 하고 남는 거스름돈은 늘 카운터 위에 있는 저금통에 넣었고 그때마다 타냐는 눈을 감고 두 손 곱게 모아 기도를 하곤 했다.
12월 중순쯤으로 기억한다. 타냐는 여느 때처럼 뒷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평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얼굴에 웃음기도 없었고 늘 목청껏 소리치던 "오빠~~"라는 호칭도 쓰지 않았다. 이전과는 달리 풀이 죽은 듯한 표정에 걱정이 되었다.
"타냐~~ 어디 아파? You look sick."
"타냐.... lonely.... so lonely.... my friends......... 갔어...... go home."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같이 있던 친구 둘이 한꺼번에 태국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게 되었다고 했다. 타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뭔가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데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그 찰나의 순간 문득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떠올랐다.
"You are not alone, I am here with you~~♬"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그 가사들이 어떻게 생각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노래 한 소절을 불렀고 그 노래를 듣는 순간 타냐의 얼굴은 활짝 펴졌다.
"오빠~~ 머씨써...... 오빠~~~ 조은 사람."
타냐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며칠 후 해가 바뀌어 2019년 첫날을 맞았을 때도 타냐는 가게를 찾았다. 씩씩한 목소리로 "오빠~~ Happy new year!!"를 외치던 타냐는 겉보기엔 예전과 다름없었으나 어딘가 모르게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왠지 측은한 느낌이 들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그 신세나 해마다 새해를 가게에서 맞는 내 신세나 처량하긴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더 이상 타냐는 우리 가게를 찾지 않았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타지로 떠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도 몇 개월 간 보면서 정이 들 만큼 들었는데 말이라도 하고 떠났다면 좋았으련만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가오는 새해가 되면 만 3년이 된다. 타냐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다시 만나면 나를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다. 가끔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태국 여행길에 우연히 타냐를 만나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그게 현실 속에서 이뤄진다면 타냐에게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사실 그 때 나도 많이 외로웠다고.
불러줬던 그 노래, 나 자신에게 자주 불러주던 노래라고 말이다.
메인 사진 출처 : 본인 블로그 (진해 수도 매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