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웬 Dec 07. 2021

"사장님, 저 짤리는 줄 알았어요."

그러게 적당히 하라 그랬잖아

주중에 일하는 새 근무자(이하 J군)를 뽑았다. 군대도 다녀왔고 주말에도 다른 점포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에 아내는 두 말하지 않고 채용을 했다. 포스기를 다루는 것부터 다른 여러 서비스 업무까지 다 숙련된 상태이니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고용주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군대를 다녀오긴 했지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3으로 시작하는, 아직은 어린(?) 나이라 큰 기대도 하지 않고 그저 손님과 큰 트러블이 없고 대형 사고만 치지 않기를 바랐다. 첫 주는 별일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보통 신입 직원이 오면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을 만큼 수시로 전화가 오는 게 정상인데 그런 일도 없었고 생각보다 고객 대응도 잘했다.


문제는 2주 차에 접어들면서 발생했다. 어느 정도 적응도 했고 낯을 익혔다는 판단을 했던 것인지 J군의 말문이 트인 것이다. 마치 영화 "달마야 놀자 (2001년)"에서 묵언수행을 하다가 실수로 말 한마디 내뱉은 이후 속사포 수다를 떨어대던 명천 스님(류승수)처럼 쉴 새 없이 떠드는데 그걸 매일 들어야하는 입장에선 혼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입고 다니시면 안 추우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이거 드세요.", "비염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등등 아내도 하지 않는 내 걱정을 왜 그리 많이 하는 것인지 교대 시간 20분 정도가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남녀노소를 가리고 말 많은 사람 딱 질색인데 어쩌다 이런 애를 뽑았나 아내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의욕과잉'이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잘해보려고 하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고용주 입장에서 봤을 때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야 대환영이지만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인데 J군이 꼭 그런 유형이었다. 결국 3주 차에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평소처럼 밤늦게 출근을 했는데 카운터 주변이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찌나 깨끗하게 치우고 닦았는지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전문 청소업체를 불러서 정리를 한 줄 알았다. 처음엔 아내가 뭘 잘못 먹고 실수로 청소를 한 것으로만 생각했다.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님을 잘 알지만.


알고 보니 J군의 의욕과잉이 빚은 참사였다. 조용히 불러서 한마디를 해주었다. "자네, 이제 죽은 목숨일세.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꿋꿋하게 버티시게. 우리 집사람 생긴 것과는 달리 꽤 난폭하다네. 그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나도 모르네. 부디 살아 돌아오시게. 그러게 적당히 하라고 내 그리 일렀건만."

J군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다.


다음날 날이 밝고 내가 예상했던 대로 아내는 눈앞에 있으면 당장이라도 잡아 죽일 듯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와 여직원들이 가게에서 쓰는 핸드크림이며 휴대용 세정제, 미니 스킨로션까지 모조리 쓰레기통에 집어넣었으니 아내 입장에선 화가 날 만도 했다. 가까스로 화를 진정시킨 후 행여 아내가 나한테 하듯이 애를 잡을까 걱정이 되어 너무 심하게 꾸짖지는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날 밤, 다시 출근을 해서 J군에게 물어보았다.

"괜찮아? 뭐라고 하던?"

J군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우와~~ 사장님, 저 짤리는 줄 알았잖아요. 사모님 그렇게 화내시는 거 처음 봤어요."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안 봐도 뻔했다. 땅바닥에 붙어 있을 정도로 자그마한 여자가 앙칼진 목소리로 샤우팅을 내뱉는 동안 키가 180cm이 넘는 J군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날이 밝고 주말 아침을 맞아 퇴근 후 아내에게 겁도 없이 말을 꺼냈다.

"그러게 진작에 정리 좀 해놓지 그랬어? 누가 봐도 쓰레기장 같은데 거기에다가 로션이며 핸드크림이며 화장품을 섞어 놓으니 처음 보는 애 눈에는 다 쓰레기로 보였겠지. 이제부터라도 정리 좀 하고 살아."

나의 진지한 조언에 아내는 그 큰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 뭐 사실 그 애가 좀 눈치 없게 갖다 버린 건 잘못이긴 하지만......"

무서운 눈초리에 잔뜩 주눅이 들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충 얼버무리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얼마나 호되게 당했던지 그 일이 있은 후 J군은 절대 '청소'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걸 못하는 스트레스를 입으로 푸는 것인지 여전히 말은 많다. 그래도 그런 시련(?)을 겪고도 굴하지 않는 그 모습이 대견하다.


그나마 우리 부부에게 사람 복이 있는 건지 그동안 일했던 직원들 중에 큰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래전 일했던 애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고도 여전히 연락이 되는데 상대적으로 최근에 일했던 애들은 모두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들 바빠서 그럴 거라고 이해를 하고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긴 싫지만 뭔가 인간적인 면이 사라진 것 같기도 해서 그게 씁쓸할 때가 있다. 과연 우리 J군은 훗날 일을 그만두고도 가끔씩 찾아올까? 애는 참 괜찮은데 말이 많아서 말이지.


그리고…


여전히 아내는 상품 진열대에 개인 물품을 하나둘 모으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J군, 자네 한 번 더 목숨을 걸 생각 없는가? 확 치워버리고 싶은데 내가 용기가 없다네.   사진 출처 : 본인 아이폰
매거진의 이전글 양 사장님, 친하게 지냅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