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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Oct 19. 2022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는 반드시 온다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금방 일어날 수 있다면

한 자리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하다 보면 세월의 흐름을 체감하는 경우가 있다. 가게 인근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려서 아내와 아이 손을 잡고 우연히 찾았다가 나를 보고 놀라는 손님도 있고 오래전 인근에서 장사를 하다가 그만두신 후 주변에 볼 일이 있어 오랜만에 들렀다가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일하고 있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시는 분도 있다.


때로는 손님으로 또 때로는 주변 이웃으로 함께 하셨던 그런 분들과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화 말미에는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 오래 했으니 돈 많이 벌었겠다는 것과 장사가 잘 되니 아직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 아니겠냐는 근거 없는 추측들이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늘 똑같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거 아니면 할 게 없으니까 그냥 버티는 겁니다. 제가 무슨 기술이 있어 이 나이 먹고 취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밀리지 않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거란 생각으로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죠."


장사꾼 말은 절반은 맞고 나머지 절반은 엄살이라는 말이 있듯 듣는 이에 따라서는 겸손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사실이 그랬다. 다른 걸 하려고 해도 모아 놓은 재산이 없으니 선뜻 도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취업을 하고자 해도 내세울 경력도 없을뿐더러 은퇴할 시기가 다 된 나이 먹은 사람을 채용할 회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언제부턴가 한 우물만 고집스럽게 파는 사람들을 미련한 사람 취급하는 세상에서 20년 넘게 오직 한 길만 바라보고 살아온 결과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 의기소침해지고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안고 산다.


작년 봄 신문 기사를 통해 김하경이라는 배구 선수의 인생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네모 박스 참고) 프로 입단 후 항상 백업 선수였고 구단에서 임의 탈퇴 처리하는 바람에 실업팀 선수로 전락하는 좌절도 맛보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버틴 덕분에 다시 프로에 재입단해서 마침내 주전 선수로 도약하고 마침내 국가대표로 발탁된 김하경 선수의 성장 스토리는 내게 큰 감동을 가져다주었다.


비슷한 사례는 미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댄 잰슨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첫 올림픽 출전에서 4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혜성처럼 나타난 댄 잰슨 선수는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과 세계 신기록 작성을 여러 차례 기록하며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지만 유독 올림픽에서만큼은 메달을 따지 못하는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네 번의 올림픽에 출전할 때마다 넘어져서 실격 처리되거나 레이싱 도중 강하게 불어온 바람의 영향을 받아 저조한 기록으로 메달을 따지 못했던 댄 잰슨 선수는 전성기를 훌쩍 넘겨 도전한 마지막 올림픽, 마지막 경기에서 기적처럼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자신의 첫 메달로 금메달을 장식하게 된다. 주종목인 500미터 경기 중 마지막 코너에서 또 한 차례 중심을 잃으며 메달 수상에 실패한 그였기에 마지막 경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현저히 낮아진 상황에서 그가 세계 신기록까지 작성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훗날 그는 본인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규혁 선수(올림픽 출전 6회 동안 노메달)가 선수생활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을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으니 마지막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압박과 부담감 속에서 실패를 거듭하던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에야 비로소 목표를 이루었다.


위 두 가지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과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처해진 상황이 쉽지 않아도 절대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는 것 등이다.


돌아보면 늘 그랬다. 곧 꺼질 것처럼 보이던 불씨가 되살아나듯 때를 기다리며 참고 견디다 보니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섰고 수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이 되곤 했다. 비록 지금은 우리 부부 모두 몸이 상할 정도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마지막을 해피엔딩으로 장식할 거란 한 가지 기대만큼은 버리지 않고 산다. 댄 잰슨 선수가 본인의 선수생활 마지막 경기를 금메달로 화려하게 마무리한 것처럼 말이다.


드래프트 2순위로 프로에 입단한 김하경 선수는 본인과 같은 포지션에 있는 선수가 부동의 국가대표 세터 김사니 선수였기에 백업 선수로 프로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김사니 선수의 부상으로 인해 주전으로 도약할 기회를 얻었으나 구단에서는 트레이드를 통해 다른 선수를 영입하면서 또 한 번 주전 경쟁에서 밀린다.

이후 김사니 선수가 부상에서 회복하고 같은 포지션의 선수가 3명이 되자 김하경 선수가 필요 없어진 구단에서는 김하경 선수를 임의탈퇴 처리하고 결국 김하경 선수는 프로가 아닌 실업팀으로 자리를 옮긴다. 좌절을 맛보고 실업팀에서 2년간 선수생활을 이어가던 중 옛 스승이 감독으로 있던 프로 구단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재입단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위치는 백업 선수였고 다음 시즌 주전 세터가 다른 팀으로 옮겨 마침내 주전으로 올라서나 했지만 또다시 구단에서는 FA 시장에 나온 선수를 새로 영입하면서 또 한 번 주저앉게 된다.

선수 입장에선 황금 같은 20대 초반 시절을 그렇게 보낸 김하경 선수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구단에서 FA로 영입한 선수가 학폭 사태로 팀을 무단이탈하면서부터였다.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주전으로 도약한 김하경 선수는 명장 김호철 감독의 조련 아래 실력도 급성장했고 지금도 프로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부산대 곽한영 교수 페이스북 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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