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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May 30. 2022

셀프로 '1+1 행사' 하시겠다는 거?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생산자와 판매자

2013년에 '이거 바꿔조', '브라우니 물어'와 같은 유행어로 꽤 인기를 끌었던 개그콘서트 <정여사>라는 코너가 있었다. 그 코너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당연히 어느 정도 과장이 들어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적어도 현실판 정여사 님을 실물로 영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2014년쯤으로 기억한다. 자정을 갓 넘긴 시각,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옷차림의 40대 여성이 들어왔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스낵 코너에서 스낵을 하나 사서 시식대에 앉아 먹는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특이한 점은 자연스럽게 손을 넣어 과자를 꺼내 먹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찾듯 먹는 내내 봉지 내부를 한 번씩 뚫어져라 본다는 점뿐이었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카운터로 온 손님은 다짜고짜 과자를 새 걸로 바꿔달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과자가 정상 제품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손님으로부터 봉지를 받아 들고 겉면부터 살폈다. 유통기한도 이상 없고 포장이 찢어진 것도 아니고 육안으로 보기엔 별 문제가 없는 제품이었기에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고객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이 과자 마니아라서 잘 아는데 원래 과자 모양이 이렇잖아요?"

손에 쥐고 있는 과자 한 조각을 내밀며 손님이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잔뜩 톤이 높아진 목소리로 고객은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상적인 건 몇 개 안되고 나머지는 다 부서지고 토막 나고 그랬어. 내가 웬만하면 그냥 참고 먹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애."


다시 한번 봉지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봉지 안에는 부서진 조각들이 모두 합쳐 정확히 7개가 들어있었다. 온전한 과자 조각으로 치자면 두 개도 안 될 적은 양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촬영한 비슷한 제품 사진, 정상 제품(좌)과 그 고객이 파손품이라 우긴 조각들(우)


이상이 있으면 처음부터 교환을 요구했어야지 거의 다 드시고 이러시면 곤란하다고 말했더니 고객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억지로 참고 먹긴 했는데 다 먹고 나니 기분이 나쁘다 이거잖아요."

너무도 당당한 태도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포장지에 적힌 '파손품은 판매처에서 교환하라'는 문구를 들이밀며 새 제품으로 바꿔달란다.


거기에 적힌 파손품의 기준은 포장에 이상이 있거나 도저히 먹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파손을 말하는 것인데 이번 경우처럼 몇 조각 부서진 것만으로는 교환이 안된다고 말해봤지만 막무가내였다. 사실, 몇 푼 안 되는 금액이라 그냥 손해를 보고 교환을 해줄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 고객의 행태로 봐서는 다시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를 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억지를 쓰는 태도가 괘씸해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그 고객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새벽 시간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여기저기 전화를 할 기세였다. 소비자보호원, 본사, 제조업체를 들먹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며 악을 썼다. 어이없는 행동에 기가 막혔지만 애써 외면을 하며 점포명과 주소, 내 이름까지 찍힌 영수증을 발행해서 줬다. 양심이 있으면 신고까지는 못하겠거니 생각했지만 그 고객은 예상외로 강적이었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제조업체로부터 전화가 왔다. 본인을 영업지원팀 대리라고 소개한 직원은 고객과 1차 통화 후 확인차 전화를 했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직원은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대충 예상은 했습니다만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사장님 마음고생 심하셨겠네요. 점포 주소 불러주시겠습니까? 지점 통해서 퀵으로 한 박스 보내드릴 테니 두 봉지는 그 고객님 드리시고 나머지는 사장님 드시든가, 판매를 하시든가, 단골 고객님 있으시면 나눠드리세요."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만류했지만 직원은 회사의 방침상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며 이해를 해달라고 했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생산자와 판매자이고 이슈가 되고 알려지기 시작하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은 업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쩔 수 없이 약자의 입장이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서둘러 진화를 하는 방법밖에 없음도 알지만 분명 이건 잘못된 처리 방식이라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날밤 그 진상 아줌마는 '거봐, 내가 이긴다고 했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의기양양하게 과자 두 봉지를 들고나갔다. 따라가서 뒤통수라도 한 대 쳐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은 거의 잊고 살지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 있다.  

몇 년 전 개그 콘서트 폐지 예정 소식에 어느 누리꾼이 게시판에 썼던 짧은 문장. 

'현실이 개그 프로그램보다 더 웃기니 개그 콘서트가 폐지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어쩌면 우리는 픽션을 훌쩍 뛰어넘는 논픽션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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