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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un 07. 2022

내 아내는 네 잎 클로버 추적단

그런데, 행운은 어디에?

늦잠을 자는 아이와 그게 못마땅한 아내, 주말마다 두 여자의 전쟁은 발발한다. 어쩔 수 없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라 자처하는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외식을 핑계로 두 여자를 강제로 차에 태웠다. 차 안에서 팔자에도 없는 온갖 아양과 아재 개그를 무차별 살포하며 분위기를 반전하려는 노력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고 테이크 아웃 커피 하나씩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웃음꽃이 만발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무렵 주차를 하려는데 순간 단지 내 화단에 있는 클로버 밭이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모녀지간을 확실히 붙여놓을 수 있는 묘안이 떠오른 것이었다.


"딸, 내가 신기한 거 보여줄까?"

"뭔데?"

"잠깐만 있어봐."


차에서 내려 커피를 들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서 커피를 빼앗다시피 하며 말을 건넸다.

"당신, 오랜만에 초능력 좀 발휘해볼 생각 없는가?"

"갑자기 뭔 소리래?"

"딸년을 위해 감춰둔 능력 좀 써보시라고. 저기..... 저~~~~ 기 당신 홈그라운드 있잖아."

손가락 끝으로 클로버 밭을 가리키니 아내도 금세 내 말을 이해했다.


"난 또 뭔 소리 하나 싶었네."

그 말과 함께 비장한 자세로 클로버 밭에 뛰어든 아내를 뒤로 하고 다시 딸에게 돌아와서 한마디 했다.

"딸, 내가 장담하는데 네 엄마 1분 내로 네 잎 클로버 서너 개는 찾는다.”

"정말? 그게 진짜 가능해?"

못 믿겠다는 딸아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클로버 밭매는 아낙네 ‘버닝 이여사’님이 소리를 지른다.


"하나 찾았고~~~ 앗싸 또 하나 추가요. 아이고 여기도 있네."

순식간에 3개를 찾아서 손을 흔드는 아내를 보고 딸아이는 그저 감탄사만 연발했다.

"우와!! 나 네 잎 클로버 뽑는 거 실제로는 처음 봐."

"집에 코팅되어 있는 거 있잖아, 그거 전부 네 엄마가 그동안 모은 거야."


지인들에게 수없이 뿌리고도 이렇게나 많이 남았고 책장에 있는 책을 털면 적어도 100개 이상은 찾을 것이다


2002 월드컵 당시 16강 진출을 이루고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던 히딩크 감독에 빙의하여 이미 찾은 3개에 만족하지 못하고 종횡무진 밭을 누비는 아내를 보니 연애시절 생각이 났다. 만난 후 처음 맞던 내 생일날, 지갑을 선물하며 아내는 그 속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과 코팅이 된 네 잎 클로버를 넣어줬었다. 사실 그 나이 먹도록 네 잎 클로버 실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감동을 받았었다. '이 귀한 것을 어찌 저처럼 하찮은 이에게 주십니까?'라는 표정을 지으며 공손히 받던 내 두 손은 감격에 겨워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귀하디 귀한 네 잎 클로버라는 환상이 깨진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 아내 손에 이끌려 자취방에 끌려갔을 때였다. 아내를 덮치고 짐승이 되느냐 덮치지 않고 짐승만도 못한 놈이 되느냐 중차대한 기로에서 갈등하던 내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네 잎 클로버였다. 장식장 위에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져 있는 네 잎 클로버는 그 숫자가 웬만한 부추 한 단 정도쯤은 되어 보일 정도로 많았다. 적어도 아내 입장에선 흔하디 흔한 게 네 잎 클로버였다.


'아니, 이 여자 정체가 뭐지? 눈 밝기의 끝판왕이라는 몽골인인가? 어디서 이런 능력이?'


끝없는 궁금증 속에 문득 대학 다닐 때 후배가 내게 해 준 말이 생각났다. 연거푸 시험에 떨어지고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내게 후배는 "형님, 제가 교회를 다니지는 않는데요. 교회 다니는 제 친구가 해준 말이 있습니다. 사람에겐 한 가지 달란트(유대인들의 화폐단위, 최근에는 타고난 재능과 소명을 뜻함. 네이버 국어사전)라는 게 있답니다. 형님도 분명 한 가지 재능은 있을 겁니다.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라고 했었다.


그 말이 사실이고 이것이 하나뿐인 아내의 재능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아내의 숨은 재능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20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도 아내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했다. 나쁘게 말하면 무색무취요 좋게 말하면 조용히 내조만 하며 사는 아내를 볼 때마다 애잔함이 밀려온다. 틈날 때마다 하고 싶은 게 뭔지, 관심 있는 분야가 뭔지 물어보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그런 거 없어."


부모가 자식의 재능을 발견하고 지원하는 것 못지않게 아내의 재능과 관심 분야를 알아채고 아낌없이 뒷바라지하는 것 또한 남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결혼이란 것을 하기 전에는 그 모든 것이 쉽게 보였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연애시절, 다른 건 몰라도 하고 싶은 것 하나는 꼭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할 때만 해도 몰랐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를 줄은. 


20년째 내 지갑 속에서 나와 함께 하는 네 잎 클로버님

처음 받을 때만 해도 짙은 녹색을 자랑하며 파릇파릇하던 지갑 속 클로버잎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색이 많이 바랬다. 코팅을 하긴 했지만 오랜 시간 지갑 속에서 수많은 충격을 받아서인지 끊어진 곳도 제법 보인다. 이제는 지갑 속에서 꺼내 다른 곳에 보관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단순히 행운의 상징이란 의미보다도 아내가 내게 처음 해줬던 선물이기에 그 고마움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다.


몇 년 전, 로또만 하면 단 하나의 번호도 맞히지 못하는 아내에게 농담 삼아 당신처럼 꽝손인 사람은 내 평생 처음 본다고 타박한 적이 있다. 그때 아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것 보세요, 당신이 누리는 그 행운 내가 다 준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라고 했었다. 흘려듣기만 했던 그 말이 최근 들어 귓속에 맴돈다. 함께 한 시간을 돌아보니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행운'이란 단어를 '행복'으로 살짝 바꿔 아내에게 돌려줄 때가 된 것 같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덧)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내의 신묘한 능력이 산삼을 발견하는 쪽으로 발달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한 적이 있다. 네 잎 클로버 숫자만큼만 캤더라면 나는 지금 기부 천사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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