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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Aug 02. 2022

정말 친절한 사장님이시네요

저는 결코 친절하지 않아요

장사를 하며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 중 하나가 많은 사람들이 작은 것에 감동하고 또 작은 것에 불쾌해한다는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에 잘못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싸우기도 하고 반대로 작은 행동 하나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스스로 평가하기에 나는 결코 친절하다고 말할 수 없는 불량 자영업자이긴 하지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얼떨결에 친절행 열차를 탑승하게 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반경 100미터 이내에 저가형 커피 전문점이 줄지어 들어서기 이전까지 우리 점포는 웬만한 카페를 능가할 정도로 커피를 많이 팔았다. 특히 지금처럼 파우치형 아이스커피 매출이 높아지는 여름철이면 커피 머신에서 내려 먹는 원두커피를 포함해 하루 100잔 이상의 커피를 판매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지금은 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성비를 따지는 고객이나 늦은 밤 또는 이른 아침이면 커피를 마시기 위해 꽤 많은 고객이 우리 가게를 찾는다.


그런 분들 중에는 서비스가 마음에 든다고 하시며 애써 우리 가게까지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신다. 겨우 커피 하나 팔면서 무슨 대단한 서비스가 있을까 궁금하시겠지만 사실 내가 하는 일은 별로 없다. 파우치 커피를 가져오면 가위로 잘라서 아이스 컵에 부어 드리고 빨대 포장지를 벗겨 고객이 바로 꽂아 드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지극히 단순한 행동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사소한 것에 진심으로 감동을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 직접 해주시는 거예요?"

"우와~ 이렇게 해주는 편의점은 처음입니다."


그게 감동받을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와 내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알아서 잘 하지만 조심성 없는 일부 고객들 중에는 아이스컵을 깨트려서 바닥에 얼음을 쏟는다든가 컵에 커피를 붓다가 컵을 엎어버리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정도로 끝이면 다행이지만 간혹 카운터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쏟은 커피가 카드 결제기에 들어가거나 카운터 위에 진열된 상품을 젖게 만들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고객에게 맡겨두고 모르는 척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선제 대응을 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고객이 카드를 꺼내서 결제를 하고 다시 카드를 챙기는 그 5~10초 정도의 시간 동안 멀뚱멀뚱 고객을 바라보고 있는 것보다는 그 시간을 이용해 커피를 직접 부어드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 시작된 것이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일은 전자레인지 조리 상품을 판매할 때도 벌어진다. 우리 점포는 특이하게도 전자레인지가 카운터 뒤편에 있다. 내가 이 일을 처음 배울 때만 해도 전자레인지는 카운터 주변에 위치해 있는 게 당연하게 생각되던 때였다. 그 후 반조리 식품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고객들의 이용 빈도가 증가하고 카운터 쪽의 공간 부족족까지 더해져 위치를 옮기는 점포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처럼 시식대 주변에 두는 것이 대세가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예전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가끔 카운터에 있는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직접 데워드리는 모습을 보고 고객들이나 본사 직원들이 대고객 서비스가 뛰어난 점포로 착각하며 칭찬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고 사고를 치는 고객들의 뒷수습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실토를 해도 친절을 넘어 겸손하기까지 하다는 말까지 들을 때면 없는 쥐구멍을 찾아서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700W 가정용과 1,000W 업소용의 출력 차이를 모르고 집에서 하던 대로 조리했다가 낭패를 보는 고객, 진공포장 상태 그대로 돌려서 상품이 터져 어쩔 줄 모르는 고객, 은박지로 포장된 상품을 넣었다가 불을 내는 고객까지 수많은 유형의 사고를 볼 때마다 만에 하나 저러다가 내부에서 폭발이라도 일어나 고객이 다치기라도 하면 큰 일이라는 생각에 직접 해드리는 게 낫겠다 마음먹은 것이 졸지에 친절로 둔갑을 한 것이다.


이런 경험은 우산을 판매할 때도 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늘 하던 것처럼 외부포장을 벗긴 후 가위로 가격표를 잘라내고 우산 내부에 끼어 있는 파손 방지용 포장지까지 제거하고 고객에게 드렸더니 "정말 친절하시네요. 사장님 맞으시죠? 역시 사장님은 뭐가 달라도 달라요. 알바들은 절대 이렇게 안 하거든요."라고 말하는 고객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 또한 마음에서 우러난 친절은 아니었다. 그냥 판매만 하고 나 몰라라 하면 고객들은 십중팔구 문을 열고 나가면서 포장을 벗기고 가격표를 떼서 버린다. 그게 몇 번 반복되면 점포 앞은 비닐 포장지들 가득한 쓰레기장이 되고 가뜩이나 미끄러운 바닥에서 행여 누군가 빗물에 젖은 비닐을 밟고 미끄러져 다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내가 지게 된다. 나는 그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걸 친절로 받아들이니 민망하기 이를 데가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절대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에서 시작된 일련의 행위들이 작은 것에 감동하는 고객들을 만나 '친절'이란 그럴싸한 포장으로 덮인 것일 뿐이다. 다만, 그런 행동들을 하며 내가 뭔가를 바란 적은 없다. 본사 <고객의 소리>에 칭찬 글이 올라오기를 기대한 적도 없고 고객으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한 것도 아니다.


위에 열거한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인간관계에 대해 잠깐 동안 생각을 해봤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겪어본 바로는 그 관계가 어떤 관계든 모든 불행은 서로가 생각하는 기대의 엇갈림에서 비롯되었었다. 만약 주는 쪽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말고 사심 없이 해주고, 받는 쪽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오래도록 꽤 괜찮은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까? 얼떨결에 팔자에도 없는 친절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 내가 이제는 친절이 몸에 밴 체질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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