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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Dec 22. 2022

결국, 귀마개를 사고 말았네그려

올겨울 귀는 따뜻하겠구나

국민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며칠 전 시작된 겨울방학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태어나 처음 교회란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교회에 가면 빵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동네 친구의 꼬임에 빠진 내게 목표는 단 하나,  공짜로 준다는 빵뿐이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를 장시간의 설교 끝에 마침내 받아 든 보름달 빵 한 봉지. 다른 친구들처럼 그 자리에서 뜯어먹고 말았더라면 모든 게 완벽했을 텐데 내 몸에 흐르는 효자 DNA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함께 놀자는 친구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고운 머릿결을 휘날리며 집에 돌아온 나는 평소 어머니께서 즐겨 드시던 보름달 빵을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어마마마~~!! 소자(小子) 아르웬, 평소 어마마마께서 좋아하시는 귀하디 귀한 보름달 빵을 구했기에 기쁜 마음 가득 안고 이렇게 달려왔나이다."

"오~~~ 장하구나, 내 아들. 그래, 이 귀한 것을 어디서 구한 것이더냐?"

"오늘이 그분 탄신일 아니옵니까? 길 건너 처어치(Church)에 가면 준다길래 소자, 귀찮음을 무릅쓰고 득달같이 달려가 받았사옵니다. 다른 빵이면 제가 먹었을 것이온데 마침 어마마마께서 좋아하시는 보름달이라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옵니다."

"무어라??? 네 감히..... 누가 네게 그런 경거망동을 하라 일렀더냐? 네가 거지더냐?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더란 말이냐? 저리 가서 당장 회초리를 들고 오너라!!"


그렇게 시작된 어머니의 매 타작은 아버지께서 퇴근할 때까지 이어졌다. 석가탄신일을 비롯해 매월 초하루, 지장재일, 관음재일 등에 빠지지 않고 절에 다니시는 독실한 불교신자이신 어머니 눈에는 내가 한낱 공짜 빵에 영혼을 팔고 사이비 종교에 발을 들이려는 철부지로 보였던 것이 분명했다. 3형제 중 유일하게 학급 석차가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날, 무단가출 후 해질 무렵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던 날과 함께 아르웬 개인사 중 '3대 매 타작의 날'로 기록되고 있는 그날 이후 내게 교회는 절대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될 공간이었고 모든 캐럴은 금지곡이었으며 성경은 금서(禁書)가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을 했으니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것은 애당초 내 머릿속에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 되는 단어였다. 게다가 피 끓는 20대 청춘 시절을 하염없이 모태 솔로의 지위를 유지하며 살다 보니 내게 크리스마스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잔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내가 처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 것은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부터였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만난 지금의 아내도 선물을 주고받는 살가운 성격이 아니고 크리스마스 또한 별 다를 것 없는 그저 1년 365일 중 하나인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한동안 잊고 살다가 딸아이가 자라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것이었다. 


받고 싶은 선물을 미리 아이에게 물어본 후 해마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내려오는 선생님의 구체적인 지령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자 삶의 활력소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 어른들이 몇 주일 동안 작당해서 만들어가는 미션이 한편으론 우습기도 했지만 선물을 받고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를 볼 때마다 어릴 적 선물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도 못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 묘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아이가 더 이상 산타 할배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이에 이르자 어느 순간부터 또다시 크리스마스는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동심 파괴를 하지 않기 위해 거금을 들여 샀던 크리스마스트리마저 베란다 다용도실에 처박혀 바깥세상을 구경 못한 지도 오래되었고 유일하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던 딸아이도 그 기간만큼은 선물과 무관한 시간을 보냈다.


다 늙어서 무슨 크리스마스냐는 나, 그런 선물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아내, 크리스마스 선물은 잠시 키핑 해뒀다가 묻고 따블로 가서 이듬해 자신의 생일 때 한 방에 모두 다 받겠다는 딸아이까지 세 명 모두 묵시적 합의가 이뤄진 상황이니 더 이상 우리 집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지난달, 생일을 맞아 꼭 받고 싶었던 선물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한 글을 올렸을 때 비르소미오 작가님께서 달아주신 첫 댓글, "혹시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와 다른 많은 작가님들이 말씀해 주신 '그냥 당당하게 셀프로 지르세요!!'라는 댓글들이 어느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듯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연말에, 수많은 브런치 북 프로젝트 수상작가들의 수상 소감, 탈락 작가들의 허탈한 심경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으려니 감정의 기복이 하루에도 몇 번씩 커다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거기에 더해 수시로 대체 근무자를 세워 놓고 만날 사람 다 만나며 즐기는 아내와 14만 원짜리 귀마개 하나 선뜻 사지 못하고 찜해 놓은 장바구니를 수시로 들락날락거리는 나를 보니 이게 사는 게 맞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자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었고 어느 날 새벽 뭔가에 홀린 듯 결제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아침 해가 뜨자마자 아내에게 나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귀마개 하나 질렀노라고 일방적인 통보를 한 것이 이틀 전이었고 내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제 오후 내 품에 안겼다.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는 내 문자 메시지에 아내는 마음에 드냐고 되물었고 나는 짧게 답했다.

"생각보다 조금 무겁긴 한데 따뜻해."

그 어느 해보다 힘들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2022년 겨울, 그나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챙겼으니 다행이다 싶다. 이제 귀마개를 장착하고 갈잎을 먹으러 가는 송충이처럼 카페에 가서 글이나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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