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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an 01. 2023

성인(成人)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참 좋을 때긴 하지

아마도 편의점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리라.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밤 11시 50분이 넘을 즈음이면 가게 안팎이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1월 1일 00시가 되어 날짜가 바뀌는 순간을 기념(?)해 합법적으로 술과 담배를 사려는 청소년들이다. 올해는 2004년생, 첫사랑까지 갈 것도 없이 아내와의 사이에 우여곡절이 없었더라면 자식뻘 되고도 남을 나이의 아이들이다.


복사해서 붙여놓은 듯 똑같지는 않았지만 올해도 비슷했다. 바구니 가득 술과 안주를 고르고 대기 중인 아이들, 00시 땡 하면 총알같이 카운터를 점령하고 담배를 사려는 아이들, 얼마 전 포르투갈 전을 먼저 끝내고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결과를 기다리는 우리나라 축구 대표 선수들처럼 날짜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아이들까지 각양각색의 모습을 볼 때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이윽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너도나도 한마음이 되어 숫자를 센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우와~~' 크지 않은 함성과 함께 카운터는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바로 옆에서 계산을 하는 아내와 그 옆에서 엄마를 도와 일하는 딸아이에게 새해 인사를 할 틈도 주지 않는 아이들. 뻔히 알면서도 하나하나 신분증을 확인하고 축하인사를 건넬 때마다 신분증을 받아 드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그중에는 미처 말도 꺼내기 전에 자진해서 내 손에 쥐어주며 자기 것도 봐달라며 떼를 쓰는 아이도 있고 굳이 할 필요도 없는데 꼭 한 번은 넣어보고 싶었다며 주민등록증 감별기에 신분증을 넣는 아이들도 있다. 발급받은 후 지갑 속에 고이 간직되었을 한눈에 보기에도 눈이 부실 정도로 윤기가 좔좔 흐르는 새 주민등록증을 보면 그동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짐작이 되기도 한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고 아이들과의 1차전이 끝날 무렵 아내와 딸을 먼저 집으로 보낸 후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2차전을 맞을 시간이 된다. 00시에 술을 구매한 아이들이 모텔에 방을 잡고 부어라 마셔라 해서 적당히(?) 취기가 도는 시간인 새벽 서너 시쯤이면 다시 술을 사기 위해 가게를 찾는다. 괜히 내 앞에까지 와서 배시시 웃는 여자 아이도 있고 "더 아딕 멀떵함돠. 더는 덜때 수레 튀하디 아나씀돠.(저 아직 멀쩡합니다. 저는 절대 술에 취하지 않았습니다.)"라며 누가 봐도 만취상태인데 아니라고 우기는 아이도 있다.


취객들이라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인 나이기에 평소 같았다면 그런 모습 하나만으로도 짜증이 밀려오는 게 정상이겠지만 만취 상태에서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엿보여서인지, 아니면 너무 많이 겪은 데서 오는 익숙함 때문인지 그 모습이 보기 싫지만은 않았다. 꼰대로 낙인찍힐까 두렵기도 하고 아직 본인들의 적절한 주량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리해서 마시다가 행여 사고라도 발생할까 싶어 어르고 달래듯 "너희들 좀 많이 마신 거 같으니 이거 두 병 정도만 빼자. 이 정도만 해도 남은 시간 기분 좋을 정도는 될 것 같은데."라며 슬며시 소주 두어 병을 빼는 게 어떠냐고 설득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내가 말한 대로 따른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나가고 이내 들어온 여자 아이 둘은 사이좋게 담배 한 갑씩 샀다. '제발 신분증 검사 좀 해주세요.'라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는 것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자 휴대폰 케이스에서 꺼내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아이고, 축하드려요. 세상을 다 가진 거 같으시겠어요. 성인 되니까 좋아요?"

"네, 그럼요."

그녀들이 나가고 문득 그 나이 무렵의 나도 저렇게 좋아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단 한 번의 시험에 모든 것이 결정되던 선지원 후시험 학력고사 제도에서 시험을 망쳐버린 나는 시험을 치른 12월 중순에서 합격자 발표가 났던 1월 중순까지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었다. 가족들 모두 내 눈치만 보던 시기였고 1989년의 마지막 날도, 1990년 첫날도 이불속에 드러누워 멍하니 한숨만 쉬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만약 그때도 지금처럼 합격자 발표가 빠르고 편의점이란 게 존재했더라면 나도 지금의 아이들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잠깐 상상을 해봤다.


돌이켜보면 나는 성인이 된 기쁨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뭔가에 떠밀리듯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었다. 유년기를 거쳐 청소년기를 지날 때까지는 그렇게 더디게 흐르던 시간이 성인이 된 이후에는 미처 그 나이에 적응하기도 전에 새로운 나이를 받아들여야 할 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갓 성인이 된 기쁨에 빠져 행복에 겨워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 기쁨의 이면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책임과 또 누군가를 책임져야 할 의무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문제들을 오롯이 혼자 힘으로 맞서고 해결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 주둥이가 달싹거릴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서 그래선 안된다고 뜯어말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서라 말아라. 때가 되면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인데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잖아. 너 새해 첫날부터 꼰대가 되려고 작정했니? 제발 네 앞가림이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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