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으로 메주를 쑨다 한들
코리언 타임(Korean time)은 약속시간에 일부러 늦게 도착하는 행동이나 그 버릇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한국 전쟁 때 주한미군이 한국인과 약속을 한 뒤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오는 한국인을 좋지 않게 생각하여 '한국인은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시간관이다.'라고 하여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출처 : 위키백과
처음 데이트를 하던 그날,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와서 기다리며 서 있던 아내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오후의 햇살 속에서 눈이 부시도록 곱디 고운 자태로 길바닥에 발끝으로 그림을 그리던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달콤한 로맨스는 거기까지였다. 아내가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온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만남이 이어지며 아내는 5분씩, 10분씩 점점 늦게 약속 장소로 나왔다. 아내가 일부러 늦게 나온 거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아내는 코리언 타임을 철저히 증명하는 한국인이었다.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원래 여자들은 남자보다 준비하는 과정이 길다고 들었다. 화장하고 꾸미고 옷을 고르는 데만 기본 1시간 이상은 걸린다는 말도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리라. '남자가 그 정도도 이해 못해줘?', '너 만나러 이쁘게 치장하느라 그런 거잖아?' 미안하지만 그게 아니다. 난 아내가 이날 이때까지 제대로 화장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함께 살며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세상 느긋한 그 성격 때문인 거다.
그와 반대로 난 제대로 날이 선 칼날 같은 사람이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때 고향 대구에 살던 시절, 그 복잡한 동성로에서 후배와 약속을 하던 날 차가 막혀 도저히 약속 시간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아 택시에서 내린 후 전력질주로 달려 시간에 맞춘 적도 있을 만큼 약속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다.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 신뢰를 쌓고 인간관계를 유지한 사람이 바로 나다. 아내를 만난 이후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간 개념이 없는 여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영화를 볼 때면 항상 영화 상영시간보다 10분씩 늦게 도착하고선 원래 광고시간이 포함된 거라 괜찮다며 유유자적 커피를 뽑고 팝콘을 사는 사람이 아내였고 열차나 버스처럼 정해진 출발시간이 있는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도 여유만만 늑장을 부리다가 차 문이 닫히는 순간이 되어서야 타는 사람이 아내였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살다 보니 내게는 우울증 같은 게 생겼다. 애써 티를 내지 않아 아내는 눈치를 채지 못했겠지만 그때 나는 분명 아팠다. 탈출구가 필요했고 오래전 취미생활로 했던 기타가 생각나서 인근 문화센터에 클래식 기타 강좌를 신청했다. 1주일에 단 하루, 목요일 하루만 일찍 와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11시 수업 시작이니 10시 30분 정도까지만 오면 준비하고 출발하면 될 것 같았다.
아내는 정확히 2주, 그러니까 딱 이틀만 제시간에 왔다. 이후 조금씩 늦어지더니 급기야 한 달쯤 지났을 땐 11시가 다 되어서야 나타났다. 허겁지겁 챙겨서 뒤늦게 센터에 도착한 나는 그때마다 수많은 수강생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야 했고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정해진 기한을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중도포기를 하고 말았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려다가 오히려 악화가 되어 버렸다. 또다시 돌파구를 찾아 헤맸다. 이번에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서예교실이었다. 이동거리도 짧고 비용도 크게 들지 않고 무엇보다 시간대가 괜찮았지만 문제는 역시 아내였다. 분명 정해진 시간 내에 오지 않을 사람인데 어떡할까 고민을 하다가 꼼수를 쓰기로 했다. 아내에겐 11시 수업이라 말하고 12시 30분 강좌를 신청한 것이다.
회비를 입금한 날 아내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제발 이번만큼은 늦지 말아 달라고. 예상대로 아내는 큰소리를 뻥뻥 쳤다.
"이 사람이..... 이제까지 속고만 살았나? 나 못 믿어?"
대답을 잘해야 했다.
"응 못 믿어. 내가 당한 게 얼만데."라고 하는 순간 나올 대답은 뻔하다.
"그렇게 못 믿는 사람이랑 왜 같이 사는데?"로 이어져 무시무시한 여자들 특유의 무한반복 화법의 늪에 빠지고 만다.
비굴하지만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아내는 당연하게도 늘 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11시 수업 시작인데 일찍 오는 날이 11시 10분이었다. 서둘러 준비하고 출발해서 교실에 도착한다 해도 11시 20분. '내 그럴 줄 알고 다음 타임을 등록했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음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퇴근 후 수업을 받기까지 1시간 정도의 여유는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미리 가서 준비를 하는 동안 앞 타임 수강생들의 글을 감상하며 눈동냥으로 더 배울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인생 상담을 하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거의 대부분의 수강생이 자녀를 어느 정도 키운 후 소일거리로 나온 누님들이어서 편하게 고민을 얘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서예를 배운 그 시간이 내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바꾸려 하는 것은 피사의 사탑을 똑바로 세우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특히, 부부간에 서로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바꾸려 하면 충돌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며 포기해야 할 땐 포기하는 것인데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분명 둘 중 하나가 손익을 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 한쪽이 지는 편이 그나마 차선책이 될 수 있다.
나는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어차피 바꿀 수 없는 거라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편히 가지니 놀랍게도 아내가 다르게 보였고 아내에게서도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잔소리를 하고 협박을 하고 애걸할 때엔 들은 체 만 체 하던 사람이 내가 포기를 하니 스스로 달라지기 시작한 거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딸아이의 공(?)이 크다. 외모든 성격이든 자로 잰 듯 정확히 절반씩 우리 부부를 닮은 딸아이는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케 한다. 우리 두 사람의 성격을 합해서 중화된 성격이 나왔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딸아이는 그게 아니라 극과 극을 달릴 때가 많다. 가끔 젊은 시절 아내의 모습이 나올 때면 한 편으로는 두려운데 또 한편으로는 흐뭇해질 때도 있다.
언젠가 한번, 여행을 갈 때 출발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씻지도 않고 방바닥에 누워 뒹구는 딸아이를 보고 당장 밖에 내다 버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 내가 아내에게 딱 한마디 해준 적이 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기억 못 한다더니만 기억 안 나? 당신 나 처음 만날 때 저보다 훨씬 심했어. 지금 아주 미칠 것 같지? 나는 마음 들떠서 다 준비했는데 딸내미는 세월아 네월아 시간 허비하고 해야 할 것 안 하고 있으니까 아주 돌아가실 것 같지? 당신도 한 번 당해봐. 내가 그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내가 저 가시나 저거 때문에 미치겠다. 뭐 저런 게 다 있노? 저건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 모양이고?"
아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누굴 닮긴 누굴 닮았겠어? 당신 닮았지. 그것 참 샘통이다.'
부처가 되겠다는 사람이 이런 속 좁은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말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한낱 인간일 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