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은 원래 이러는 겁니까?
우리 집에는 1978년생 딸과 2008년생 두 명의 딸이 있다. 호적상으로는 모녀 관계지만 평소 생활하는 모습만 놓고 보면 모녀라기보다는 오히려 자매에 더 가깝다. 당장 머리채를 잡을 듯 싸우다가도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손잡고 나가서 두 손 가득 먹거리를 사들고 다정하게 들어오는 모습을 볼 때면 심히 당황스럽다. 지적 수준이 여전히 청소년기에 머물고 있는 천방지축 아내와 이제 갓 청소년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만드는 이런 환상적인 하모니를 지켜볼 때면 아직까지 멀쩡한 정신으로 살고 있는 내가 대견스러울 정도다.
그날은 두 자매, 아니 모녀 사이가 꽤 괜찮았던 날이었다. 오히려 그런 날은 더더욱 조심해야 됨을 수많은 경험과 탁월한 감각으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감은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출근을 하려는데 두 여자가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작은 가방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출근을 해서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한숨 돌릴 무렵 딸아이로부터 카톡이 왔다.
나이 오십이 넘도록 초딩 입맛을 가진 나는 여전히 김밥, 순대, 떡볶이에 환장을 한다. 그걸 알고 있는 두 여자가 나를 위해 스페셜 도시락을 만든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아내가 싸주던 김밥과는 또 다른 맛이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교대를 위해 출근한 아내가 물었다.
"딸내미가 해주니 맛있더나?"
"처음 싼 것 치고는 생각보다 잘 쌌더라. 먹을만하던데. 나야 1년 내내 김밥을 싸줘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잖아."
그렇게 대답을 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뭔가 뒷골이 싸늘한 이 느낌. 곧 닥쳐올 불행이 그려졌다.
예상대로 아내는 그날부터 줄기차게 김밥을 싸 댔다. 본인은 신경 써서 도시락을 싸주는 것이겠지만 1주일 내내 똑같은 김밥을 먹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성이 갸륵해서 인내심을 갖고 먹으며 은근슬쩍 눈치를 줬지만 아내는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중단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렇게 김밥을 먹은 지 일주일쯤 되던 어느 날 딸아이가 내게 말했다.
"아빠,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아빠 당분간 계속 김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아."
그게 뭔 소리냐고 물어보니 냉장고 안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무슨 소린가 싶어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이미 냉장실 절반 이상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김밥 재료들. 이 여자가 아무래도 김밥천국을 계약하고 온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많은 양의 김밥 재료들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김밥의 행렬 끝에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김밥은 좀 그러네."
"왜? 매일매일 먹어도 먹을 수 있다매? 안 질린다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 사람아. 크리스 에반스가 <어벤저스>에서 하루 종일 싸울 수 있다고 말한 게 진짜 하루 종일 싸우겠다는 그런 뜻이야?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어떡해?"
"알았어. 그럼 이제 안 하면 되지 뭐."
"그게 아니고. 제발 좀 중용의 미덕을 갖춰봐. 무슨 사람이 극과 극을 달려. 적당히 좀 하시라고요."
그러고 보니 오래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급식이 일반화된 지금과는 달리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가던 시절, "엄마, 난 엄마가 해준 오뎅 볶음이 제일 맛있어."라고 어머니께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내리 일주일 동안 오뎅 볶음을 반찬으로 싸 갔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나를 두고 '윤오뎅'이라 불렀을까.
이쯤 되면 여자들은 다 그런 것인지, 그게 아니라 주부가 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가족이 잘 먹어주면 '때는 이 때다. 언제까지 잘 먹나 내 끝까지 지켜보겠어.'라는 심정일까? 그게 아니면 '저렇게 잘 먹어주니 내 영혼을 갈아서라도 계속 해줘야겠어.'라는 심정인지 알 방법이 없다. 이제까지 같이 산 여자가 어머니와 아내뿐이니 알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