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떠나고 싶은 남자 VS 도시가 좋은 여자
한가한 어느 휴일 오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문제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덩치에 맞지 않게 참새처럼 재잘거리고 아내는 바닥 친화형 몸뚱이를 인증하듯 요가 매트에 드러누워 시크하게 단답형으로 대답을 했다.
"나중에 우리도 나이 들고 은퇴하면 공기 맑은 곳에 전원주택 지어서 살면 어떨까 싶은데."
"지을 돈은 있고?"
"돈이야 뭐..... 지금처럼 열심히 살다 보면 그 정도는 모이지 않겠나?"
"아파트보다 추워."
"아니, 요즘 짓는 집들은 기술이 많이 좋아져서 이중삼중 방풍, 방한을 하니깐 딱히 그렇지도 않다던데...."
"교통이 불편해."
"일 있을 때마다 내가 충실한 기사 노릇을 하면 되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잖아."
"신경 쓸 것도 많고 관리하기 힘들어."
"내가 매일 잡초도 뽑고 잔디도 깎고 청소도 하고 반려견 키우면 똥도 치우고 다 할게."
"좁아터진 거실 청소도 안 하는 사람이?"
"아니, 자꾸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난 솔직히 도시생활이 너무 싫어. 매일 사람들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사람들에게 치이는 것도 싫고. 말년은 좀 조용히 살고 싶어서 그래."
"이 아저씨야. 누군 이렇게 살고 싶어 사나? 적어도 딸내미 지 갈 길은 잡아 놓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잠시 대화가 중단된 상태에서 마누라의 강력한 한 방이 날아온다.
"결정적으로 그런 곳에 가면 쥐가 마당을 뛰어다닐지도 모르는데 그건 어떡할래? 길냥이들 때문에 쥐가 없다고? 아마 길냥이들이 당신이 주는 츄르에 보답한답시고 죽은 쥐를 현관 앞에 물어다 놓을 수도 있을 걸?"
"그..... 그...... 그만!!!!!"
'쥐'라는 한 음절이 들리는 순간부터 이미 승부는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세상에서 마누라 다음으로 무서워하는 게 쥐라는 것을 잘 아는 아내가 최종 병기를 휘두른 셈이다.
회사 내 행사의 일환으로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을 제외하고 아버지께서 등산을 가시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가끔씩 등산객이나 등반대가 산에서 조난을 당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아버지께선 불같이 화를 내셨다. 아버지 입장에서 산에 가는 사람은 그저 할 일이 없는 배부른 사람이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 언젠가 어머니께 여쭤본 적이 있다.
"아버지는 산 얘기만 나오면 왜 저렇게 극도로 흥분을 하고 그런대요?"
"니 어릴 때 할아버지 댁 가면 집 앞에 보이는 그 산 있재? 시냇물 건너 할머니 산소 있는 거기. 너거 아버지가 4남매 중에 중간 이잖아. 고모는 여자라서 빠지고 큰 아버지는 장남이라 빠지고 작은 아버지는 막내라고 빠지니깐 일할 사람이 너거 아버지뿐인 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나무 해다가 지게에 지고 읍내까지 걸어서 팔고 오는 걸 계속했는기라. 언젠가 너거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눈앞에 있는 산만 없애면 자기도 형님이나 동생처럼 공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너거 아버지가 위아래 형님, 동생 학비 만드느라 평생을 산에 가서 나무만 해댔는데 산이 좋게 보이겠나? 그렇게 하고 싶었던 공부 한 번 못해본 게 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기라."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다. 이 나이 먹고 보니 세상일이란 게 그렇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누군가에겐 취미이자 즐거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지우고 싶은 기억이 될 수도 있고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아내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도시로 넘어오기 전까지 부모님이 하시는 농사일을 돕느라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겐 로망과도 같은 전원생활이 아내에겐 다시 하고 싶지 않은 힘든 노동의 시간들로 기억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1년간 주말 농장을 경험한 적이 있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때 딸아이보다 더 신이 나서 다녔다. 말 그대로 주말 농장이라 주중에는 인근 주민들이 어느 정도 관리를 해주시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차로 30분 넘는 거리를 달려 밭에 물을 주고 오기도 했고 온 여름 내내 땀을 한 바가지씩이나 흘릴 정도로 정성껏 가꾸고 키웠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엔 우리가 배정받은 밭 인근의 다른 분들 밭까지 관리를 해주기도 했었다.
그때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렇게 좋아? 이게 1년짜리 짧은 계약이니 이 정도지 이게 일상이 된다고 생각을 해봐. 절대로 지금처럼은 못할 걸? 당신은 처음이니까 마냥 신기하고 즐겁고 그런 거야."
아내는 아직도 전원생활에 미련이 남아 있냐고 내게 묻곤 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혼자 나가서 해. 은선이 아빠처럼 하면 되겠네. 그분 은퇴하신 후에 땅 사서 사과 농사짓고 계시잖아. 그러다가 얼굴 잊을만하면 집에 한 번씩 오시고. 그럼 서로 좋지 뭐."
"아니, 그건..... 적어도 내 기준에서 그건 별거에 가까운데 그렇게 살고 싶어? 굳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내 입장에서야 좋긴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하긴 했지만 내심 걱정이 되긴 했다. 내가 대형 출판사로부터 원고 의뢰를 받은 작가라면 하루 종일 집중해서 글을 쓸 공간이 필요하다는 명분이 있을 테고, 몸이 안 좋으면 요양을 한다는 핑계라도 대서 나가겠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따로 떨어져 산다는 것은 남들 보기에 썩 좋아 보이진 않을 텐데.
그렇다고 밤하늘에 펼쳐진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이른 아침 문을 열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맑고 상쾌한 공기 같은 전원생활의 낭만을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정말 내 꿈을 위해서 별거라도 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라도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황조롱이나 매 같은 맹금류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의 땅값을 알아봐야겠다. 망할 '쥐'때문에 걱정이 돼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