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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Nov 17. 2021

내 어머니의 딸이 되어 주세요

어머니께 딸을 선물한 아들

서른 넘은 비혼 주의자의 변심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중2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엌 바닥에 앉아 소리 죽여 흐느끼시던 모습 이후 처음 보는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내 얘기에 어머니께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내 죽거들랑 그때 가서 니 맘대로 살아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나 남은 한 놈이 끝까지 말썽이란 말인가.'

 

사실이 그랬다. 나이 차가 제법 나는 형님 두 분은 학창 시절 항상 전교 1,2등을 다투었고 대학에 가서도 성적이 우수해 등록금 전액 면제를 받았으며 두 분 모두 각각 대학원,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연구소에 취업을 하셨다. 그에 비해 나는 학창 시절 중위권에서 열심히 '그들만의 리그'를 펼쳤고 대학에 가서도 성적이 우스워 4년 내내 장학금 전액 면제를 받았으며 졸업을 한 후에는 오랜 기간 백수 생활을 하는 망나니 같은 짓을 했다. 말하자면 형님들은 집안의 보물단지였고 나는 애물단지였던 셈이다.


내가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효도가 무엇일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던 것이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완벽에 가까운 형님 두 분이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나는 그때 비혼에 대한 생각을 포기했다. 대신 부모님께 딸 같은 여자를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두 형수님 모두 나무랄 데 없이 좋은 분들이셨지만 다정다감하고 적절히 애교를 갖춘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기에 그 두 분의 빈 틈을 채울 수 있는 그런 여자를 만나리라 결심했다.


누군가는 그건 위험한 선택이라 했고 또 다른 이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거라 내게 말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 자신보다는 우리 가족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 특히 부모님께 잘할 것 같은 사람을 만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내 눈은 정확했지만 내 선택은.....


김경호라는 가수의 노래 중 'Delete'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 가사 중 '그해 내 생일 이렇게도 소중한 사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어머니께 선물한 그대 (후략)' 라는 부분이 있다. 아내는 그 가사에 나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연애할 때부터 나 몰래 혼자 열차를 타고 예비 시댁에 찾아가기도 했으며 부모님 생신이나 기념일 같은 것을 챙기는 것 외에도 젊은 연인들 사이에도 잘 챙기지 않는 각종 OO데이 때마다 빠짐없이 선물을 보내드렸다.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아내는 변함이 없다. 가끔 시댁에 다녀올 때면 집에 뭐가 필요한지 꼼꼼하게 체크해 뒀다가 온라인 쇼핑을 통해 필요 물품들을 보내드리기도 했고 시부모님을 찾아뵐 때면 부족한 솜씨지만 어른들이 잘 드시는 음식을 직접 해서 가져가기도 했다.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어머니 화장품이며 아버지 옷을 사 드리기도 했다. 적어도 부모님에게만큼은 완벽한 며느리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전화통화를 할 때 어머니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무슨 잘못을 해도, 실수를 해도 그 모습이 밉게 보이지 않으니 그게 우리 식구란 증거 아니겠나. 쟈(저 아이)는 그냥 내 딸이라 캐도(고 말해도) 될 정도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된 것이고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나와의 관계다. 시댁에는 훌륭한 며느리요, 현모(賢母)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자식에게도 꽤 괜찮은 어머니이면서 왜 내게만 악처(惡妻) 코스프레를 하는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내 눈이 너무 높고 기대치가 커서 그렇다고들 하는데 그걸 감안한다 해도 균형이 안 맞을 때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어차피 남은 인생 내가 안고 가야 할 문제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한계에 다다를 때가 있다.



행여나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도시락 싸서 따라다니며 말릴 정도로 무모한 생각은 아니지만 그에 따른 후폭풍은 온전히 본인이 떠안아야 할 책임이다. 버틸 자신이 있으면 하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일찌감치 생각을 접는 게 맞다. 잠시라도 떨어지기 싫을 정도로 보고 싶고 내 목숨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은 사랑이라도 세월이 흐르면 무뎌지는 게 부부 생활이고 결혼 생활이라는 점을 미리 염두에 두고 판단할 일이라 생각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부부간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 시댁(또는 처가)과 문제가 많다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 얘기를 들을 때면 내 선택이 그리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자식이 아픈 걸 지켜볼 때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시댁과의 갈등을 지켜볼 바에야 힘에 겨워도 차라리 내 한 몸 참고 버티는 편이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아내가 다시 태어나도 자기를 만날 거냐고 물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잣집 착한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집의 강아지로 태어나 짧고 굵게 호사를 누리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피식 웃었다. 그녀가 웃고 있다. 나는 진심을 말했을 뿐인데...... 눈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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