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w 인천 캠퍼스, 새벽이슬의 사계
13화 이 밤의 끝을 잡고
따뜻한 녹차 향이 잔잔하게 퍼지는 거실. 새벽이슬은 따뜻한 차를 마시는 아들, 한월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의 굳은 다짐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아, 하루의 고단함을 녹여주는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함께 설거지를 하는 시간, 그녀는 한월이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학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 한월이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이야기했다. 친구들과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읽었던 책에서 어떤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이런 평범한 일상이 그녀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었다.
"엄마, 오늘 친구들이랑 공원에서 축구했어! 나 오늘 골 넣었지요!"
한월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새벽이슬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방학인데 무슨 축구?"
"응! 동네 친구들이랑 같이 모여서 미니 축구했는데, 진짜 땀나도록 뛰었어. 나 오늘 골 넣었다니까, 엄마!"
새벽이슬은 아들의 열정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우리 한월이 멋진 축구선수 되려나 보네."
"아냐,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야! 골 넣는 것도 재밌고, 친구들이랑 같이 뛰는 것도 재밌고. 축구는 그냥 재밌는 거지!"
"그래, 우리 한월이 재미있게 노는 게 최고지!"
둘의 대화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 한월이가 자신의 방으로 향한 뒤에도 새벽이슬은 한참 동안 거실에 앉아 있었다. 잠시나마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 준 아들의 순수한 꿈을 생각하며 그녀는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내 내일의 현실이 그녀를 짓눌렀다. 오늘 회의에서 들었던 팀장의 질책이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생산량을 맞추지 못했다'는 차가운 말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늘 부족한 것만 같았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새벽이슬은 늦은 밤, 거실에 홀로 앉아 자신의 지난날을 되짚어보았다.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이 엄마가 된 후 경력이 단절되고, 다시 일터로 돌아오기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밤낮없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아이를 돌보면서도 놓지 않았던 희망들. 그렇게 얻어낸 소중한 직장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그녀가 몇 주째 고민하고 있는 서류들과 함께, 야간대학 수업 시간표가 펼쳐져 있었다. 한월이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방학이라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지만,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빡빡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의 질책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인력을 더 투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생산량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새벽이슬은 머리를 쥐어싸고 고민했다. 이미 모든 방법을 다 찾아본 것 같았다. 그때였다. 문득, 며칠 전 팀원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팀장님, 기계 공정 중에 5분 정도 멈추는 구간이 있는데, 그 시간을 활용할 수 없을까요?"
"5분? 뭘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아뇨, 그게…"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죠. 지금은 하던 대로 진행하시고요."
당시에는 무시했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적은 가능성이라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녀는 멈췄던 기계 공정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꼼꼼히 살펴보니, 공정이 멈추는 5분 동안 다른 작업자가 다른 공정의 일부를 미리 준비해 둘 수 있는 방법이 보였다.
'이거다!'
새벽이슬의 눈이 반짝였다. 비록 큰 변화는 아닐지라도, 이 작은 효율 개선이 전체 생산량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새로운 공정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피곤함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아들을 위한, 그리고 자신의 자존감을 위한 싸움이었다.
새벽 2시. 새벽이슬은 마침내 새로운 공정 계획표를 완성했다. 종이에 빼곡히 적힌 글씨들을 보며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것이 최선의 답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다음 날 출근길, 새벽이슬의 발걸음은 어제보다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