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통증과의 사투 끝에 맞이한 오후는 평온하기보다 가혹했다.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가라앉았고, 머릿속은 날카로운 송곳에 찔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대로 누워만 있으면 정말 무너질 것 같았다. 살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갓 지어 따끈따끈하고 부드러운 진밥을 그릇에 담고, 뜨거운 물을 자작하게 부었다. 입안이 까칠해 아무것도 넘기기 싫었지만, 소금김 한 장을 얹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짭조름한 김의 감칠맛이 죽어있던 미각을 깨웠고, 뜨끈한 밥알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자 비로소 몸속에 미미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억지로 기운을 내어 씻고 외출 채비를 했다. 찬 공기가 닿지 않게 마스크를 고쳐 쓰고 두툼한 머플러를 목에 칭칭 감았다. 현관문을 나서 병원으로 향하는 길, 평소라면 가뿐했을 발걸음이 오늘따라 천근만근 무거웠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은 고역이었다. 마침내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목이 아주 심하게 부었네요. 몸살 기운이 강하니 무리하지 마세요." 청진기 너머로 들려오는 진단은 예상보다 무거웠다. 엉덩이 주사 한 대를 맞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내려갔다.
약국에서 건네받은 봉투는 묵직했다. 봉투를 열어보니 알약의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한 번에 넘겨야 할 약들이 손바닥에 가득 찼다. '이걸 다 먹어야 버틸 수 있구나' 싶은 생각에 쓴웃음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약을 챙겨 먹고 잠시 소파에 기대어 쉬었다. 약 기운 때문인지 몸이 조금씩 진정되는 느낌이 들 때쯤, 시계는 이미 학원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쉴까 말까 수백 번 고민했지만, 결국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까 메고 왔던 가방을 다시 어깨에 챙겨 메고, 마스크와 머플러로 무장한 채 다시 문밖으로 나섰다. 지독한 통증을 뚫고 밖으로 나가는 이 발걸음이, 오늘 하루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나만의 작은 승리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