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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Oct 17. 2020

그럼 남의 돈 받는 게 쉬운 줄 알았니?

임대인도 보통 일이 아니다

초보 임대인 체험 수기에 쓴 바 있지만, 우리는 반지하의 공간을 전체적으로 리모델링한 후에 세입자를 받기로 했다. 처음으로 '세입자(임차인)'가 아니라 '임대인'의 입장에서 전월세 시장을 바라보게 되다 보니 여러 가지 난항도 많이 겪었다.


집을 구하던 심정으로는 '최대한 가성비가 좋은 집, 안전한 대출 수준, 상식적인 집주인' 등이 중요한 조건이었다면 입장이 바뀐 지금은 '내 집의 가치를 적정하게 매겨서 최대한 빨리 상식적인 세입자를 찾을 것'이 지상 과제가 된다.


현재는 더 이상 임대를 주고 있지 않지만, 당시 느낀 것은 '임대도 마냥 쉬운 일이 아니네'였다. 물론 배부른 소리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래는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그 동안 우리가 깨달은 몇 가지 포인트들이다.




1. 내 공간의 가치를 낮출 필요는 없다

주변 시세를 알아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아무리 임대인이 월세를 많이 받고 싶다고 해도 부동산에서 (잘 안 나갈 거라며) 반대하기 때문에 결국 협의를 하게 된다.


물론 여러 방을 가지고 있고 많은 거래를 하는 부동산의 VIP에게는 좀더 좋은 조건을 제안하며 더 신경을 써 주기도 하지만 난 VIP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초보 임대인일 뿐이었으니까.


나름 역세권에, 평탄하고 다소 넓은 도로를 끼고 있었기에 우리는 적정한 가격이라고 생각해서 부동산에 보증금과 월세를 1차로 제안했다. 원룸 혹은 투룸의 경우엔 보통 보증금 + 월세 x10 수준을 전세 가격이라고 보고, 시세에 맞춰 월세를 조정하게 된다.


그러나, 투룸이고 전체 리모델링과 인테리어도 다 했지만 메인 타겟인 대학생들이 몰리는 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부동산에서는 조심스럽게 가격을 낮추자는 의견을 보내왔다.


이 때 꽤 고민했다. 부동산의 말도 분명 일리가 있었으니까. 실제로 주변에 내놓은 매물들을 관찰해 보기도 하면서 여러 생각을 했지만 결국은 이 금액이 무리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서너 팀이 매물을 보고 간 후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소식을 전하며 부동산 사장님은 「 젊은 사람들이 리모델링 예쁘게 잘 해 놓으니까 좀 비싸도 - 말에 뼈가 있다 - 나가네요! 다른 집주인들한테도 좀 권해야겠어~」 라며 웃음을 지었다.



2.계약 전에 현재 상태를 찍어둘 필요가 있다

보통은 '현 상태 그대로'를 기준으로 계약을 하게 되는데, 원칙적으로는 계약 기간이 끝나고 나면 세입자에게는 원상 복구의 의무가 있다.


물론 개인 대 개인으로 이루어지는 임대차 계약에서 원상 복구를 철저하게 요구하는 경우는 그리 못 보았지만, 법인 명의로 된 건물에서는 벽지 망가진 것도 다 체크해서 보증금에서 제한다 카더라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부분은 미리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좋다. 특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라면 더욱 더. 벽지와 바닥(상대적으로 저렴한 마감재인 장판의 경우)은 보통 임차인이 바뀌면 다시 해 주지만, 가끔 소모품이 아니라 기초적인 부분이 망가져 있는 경우도 뒤늦게 발견된다.


나중에 계약이 끝나고 나서 서로 좋은 얼굴로 헤어지는 것이 바람직한데, 아무리 초라한 집이라도 일단 내 집이 망가졌다 싶으면 주인 입장에서는 속이 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책임 소재가 애매한 경우에는 서로를 원망하게 되는 경우도 꽤 겪었기에, 계약 직전에 기록을 남기는 게 여러모로 유용했다.



3. 계약서를 신중하게 써야지

임차인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임대인에게도 계약 사항은 더없이 중요하다. 기본 임대차 계약서에 없지만 특별히 요청하고 싶은 것들은 특약 사항에 넣을 수 있다. 반려동물 관련 조항이나 흡연 등에 대한 내용도 보통 특약에 넣는다.


우리의 경우 임차인의 사정상 보증금 일부를 계약 시작일보다 조금 늦게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보증금 지급일과 그보다 늦어질 경우의 조치에 대해서 특약에 넣고 계약을 정리했다. 우리는 별일 없이 잘 받았지만, 사실 돈 문제는 깔끔하게 정리하고 계약을 시작하는 것이 마음 편하긴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계약 합의 전에 서로 만나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직감이란 꽤 정확한 데가 있어서 만났을 때 느낌이 별로 좋지 않은 경우는 그 끝도 별로 좋지 않았다. 관상은 진정 과학인가 임차인이었을 때, 임대인이었을 때 공히 적용되는 내용이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표준 계약서. 다만 내 이름 적는 위치가 지금까지와는 다를 뿐.


4. 임차인이 온 후의 관리는?

내가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만났던 연남동 투룸의 임대인은 나이 지긋한 노부부였는데, 명절이나 연말연초에는 항상 세입자들에게 선물을 해 주시곤 했다. 큰 선물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관리하던 건물의 원룸/투룸 수, 그리고 그 세입자들의 수를 떠올려 보면 그 마음을 쓰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때의 경험때문인지 나는 임차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 아예 별도의 건물에서 임차인을 받고 있는 경우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우리처럼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도 갈등은 발생하기 마련. 특히 시설에 대한 책임을 어느 범위까지 져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법적으로(민법) 정한 내용은 '사용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는 의무'를 임대인에게 지게 하고 있기에 보통 시설의 기본 구조, 전기/난방/수도 관련된 것들은 임대인이 책임을 진다. 다만 집 사용에 무리가 없는 부분이고 비용이 크지 않은 경우 임차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도 전세인지 월세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전세는 좀더 규모가 큰 소모품까지 임차인이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어 보였지만, 월세는 천차만별이었다.


임차인으로 살던 시절이 훨씬 길었기에 직접/간접 경험상으로 보자면 양쪽의 협의가 중요했던 것 같다. '큰 비용이 들지 않는 한에서는 세입자가 한다'는 것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벽지가 손상되었다는 이유로 '쌩돈' 주고 갈아야 했다며 분노를 토하던 월세 사는 친구도 있었고, 반면에 세입자가 새벽에 전구가 소모됐으니 갈아달라고 하는 바람에 편의점에 뛰어갔다가 와야 했던 임대인 친구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어려움과 고민을 토로할 때마다 엄마가 했던 말은 항상 같았다.

 그럼 남의  먹는  쉬운  알았니?  

그래, 이 말은 항상 옳다.


※ 브런치북도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ousei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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