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Jul 01. 2020

까다로운 남자가 말하는 차 마시는 법

Tea Lover라면 한번쯤 생각해 보자

#차를 마시는 골든 룰(Golden Rule)


밀크티에 대한 글을 쓰면서 '차 먼저(Milk in After, MIA), 우유 먼저(Milk in First, MIF)'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있다. 20세기 초의 유명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조지 오웰이 대표적인 MIA 파벌이다. 영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인 그는 평생 '1984'와 '동물농장'을 포함한 13편의 소설과 수백편의 칼럼 그리고 에세이를 썼는데, 또한 진한 홍차를 사랑하는 영국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진이 몇 장 없는 걸로도 유명한 조지 오웰


심지어 각 잡고 칼럼도 썼다. 「한 잔의 맛있는 차 A Nice Cup of Tea」 에서 그는 말하기를 "나는 차를 완벽하게 끓이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식을 터득했는데, 그 방법이 열 한가지나 된다" - 이 11가지 방법 중에 우유를 넣는 방식도 포함된다. 대단하다. 약간 징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가 말한 11가지(!) 원칙, 즉 Golden Rules는 아래와 같다.

현재의 차 마시는 방법과 다소 다른 점도 있고, 중국차와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디테일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최고의 원칙을 정해두었다. 차 애호가라면 한번쯤은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 인도나 실론 홍차를 사용한다.

'중국 차를 마시고 나서는 현명함이나 용기, 낙천적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그의 편견이다. 다만 진한 홍차, 특히 영국식 밀크티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인도와 실론 홍차를 사용하는 것이 좀더 맛이 낫다. 게다가 조지 오웰 시절의 중국 차는 녹차의 이미지가 강했기에 더욱 그렇다.

실론은 현재의 스리랑카다. 원래 영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였고, 토마스 립톤이라는 전설적인 상인에 의해 '립톤 티 = 실론 티'라는 공식이 생기면서 차로 유명해진 곳이다. 현재도 수출 홍차의 양으로만 따지면 1,2위를 다투는 곳이기도 하다.


2. 차는 적은 양으로 끓인다.

적다는 게, 가마솥이나 큰 주전자에 끓이지 말고 티포트에 끓여야 한다는 것.


3. 티포트는 미리 데운다.

티포트 뿐 아니라 찻잔도 미리 따뜻한 물을 넣어 데워 놓는 것이 좋다. 귀찮을 뿐이다.


4. 차는 진하고 강해야 한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지만, 당시 조지 오웰이 쓴 바에 따르면 '1쿼터에 여섯 티스푼'이다.

현재 많이 사용되는 단위로 보면 950ml에, 1티스푼이 4g 정도이니 24g이 될 것 같다. 보통 300ml, 3g을 정량이라고 보기에 이 정도면 꽤 강한 차가 나오게 된다. 거의 3배에 가까운 농도!


5. 티포트에 차를 그대로 넣어야 한다.

인퓨저나 티백 등을 활용해서 넣지 말고 루즈 티(잎차, loose tea)를 넣어야 한다는 것.

티백도 요즘은 정말 잘 나오고 맛과 향을 잘 유지하는 제품들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잎차를 사용하는 것이 좀더 향과 맛을 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티포트 안에서 찻잎이 움직이는 것을 '점핑'이라고 하는데, 그 점핑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티백이나 인퓨저처럼 점핑의 공간을 제한하는 것보다는 잎차 그대로 쓰는 편이 낫다는 것.


티백에 들어 있지 않고 이파리 그대로인 잎차(loose tea)


6. 펄펄 끓는 물을 써야 한다.

사실은 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홍차는 95도 정도로 끓는 물을 쓰는 게 좋다.

(녹차는 다소 온도가 낮아도 무방하고, 오히려 낮은 온도에서 더 감칠맛이 우러난다고 한다.)


7. 차는 끓이고 나서 저어야 한다.

소위 '교반'이라고 부르는 티포트 흔들기. 우려난 차가 잘 섞이게 해 준다.


8. 조반용 컵(납작하고 얕은 컵 말고 원통형의 컵)으로 마셔야 한다.

보통 브랙퍼스트 잔(= 블퍼잔)으로 불리는 크고 둥근 형태의 찻잔을 의미하는데, 진한 차를 최대한 오래 따뜻하게 많이 마시고 싶어하는 오웰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부분.


9. 차에 우유를 타기 전에 유지는 따라 버린다.

원문대로라면 'cream'을 버린다는 의미인데, 지나치게 기름기 많은 부분은 버린다는 의미. 사실 현재 많이들 사용하는 우유에서는 특별히 신경쓸 게 없는 부분이다.


10. 차를 먼저 따른다.

여기가 '차 먼저, 우유 먼저'의 논쟁이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오웰은 말한다.

영국왕립화학협회는 우유를 먼저 넣는 것이 맛에는 더 좋다고 결론을 내렸다지만, 이것은 개인적 취향에 가깝다. 뜨거운 차를 먼저 넣고 우유를 넣는 것은 보통 상류층의 풍습이었고, 우유를 먼저 가득 부은 후 차를 따르는 것이 중산층 이하의 풍습이었다고 한다. 요즘의 도자기와 달리 예전에는 도자기의 내구성이 약한 경우가 많아서, 뜨거운 차를 부으면 파삭, 하고 깨져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그래서 TIF는 뜨거운 차를 먼저 부어도 깨지지 않는 질좋은 도자기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되었다고 한다.


11. 설탕은 타지 않는다.

러시아 스타일이 아니라면, 설탕은 타지 않는다는 것. 오웰 또한 자신이 이 부분에 있어서는 소수파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후추나 소금을 타는 것은 괜찮다고 말한다! 이건 진정한 마이너리티의 영역이다!)

참고로 러시아 스타일은 딸기잼 등의 달콤한 잼과 함께 차를 마시는 것이다. 잼을 차에 넣어서 마신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차를 마시고, 혹은 마시기 전에 티푸드를 먹듯 잼을 살짝 스푼으로 떠서 입안에 머금어 먹는 것에 가깝다.



어느 날의 티타임. 뜬금 토마토. 무엇이든 티푸드가 된다.


*출처: <코끼리를 쏘다>, 실천문학사, 2003


매거진의 이전글 어제 뭐 마셨어? 화를 달래는 차(Te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