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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삼 Mar 02. 2023

안네를 꼭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는 또래였던 내게 '빨간색'으로 기억됐던 였다. 일기가 쓰여졌던 시절, 유대인이었던 안네의 존재가 새빨간 금기로 터부시되기도 했지만, 그녀 은신처서 발랐다는 빨간색 매니큐어 뇌리에 강렬히 박힌 영향이 컸다. 당장 내일 수용소로 끌려가 죽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그녀는 한결같이 목욕재계를 하고 손톱 손질을 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누군가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마치 세상이 자신을 억압해도, 자유로운 삶의 의지를 꺾을  없다는 선전포고 같은 결연함이 느껴졌다. 스스로를 가꾸는 행위가 누군가에겐 결연한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는 걸 내가 처음 깨달은 것도 바로 그 때였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어제, 안네의 이모 뻘이 된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내 기억이 왜곡된 탓인지, 아니면 새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빠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안네의 일기」 완역본에서는 매니큐어 색깔 따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저 손톱 손질을 했다거나, 매니큐어를 칠했다는 표현이 전부였다.) 그러나 다시 만난 안네는 여전히 10대 소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고, 현명하고, 매력적이었다.


안네 프랑크, AFP.


 비록 그녀의 몸은 비좁은 은신처에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처칠 휘하의 연합군 상륙작전을 조망했고, 2차 세계대전의 양상이 점점 독일군에 불리해지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영국 BBC와 독일 방송, 네덜란드 방송 등 유럽 각국 언론사의 보도를 접한 영향인지 그녀는 미래의 저널리스트를 꿈꿨는데, 사실 국제 정세의 핵심을 읽어내고 이를 객관적 시각으로 기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미 그녀는 저널리스트나 다름 없었다. 당시 자신을 둘러싼 네덜란드인들의 자국 중심주의적 사고를 비판적으로 짚어낸 것도 눈에 띄는 부분 중 하나였다.  


 "(네덜란드인들은) 영국이 지금 자기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해. 다들 영국이 네덜란드를 하루빨리 구해낼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그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거야. 아니, 왜 그게 영국의 의무야? (...) 물론 독일이 군사력 증강에 힘쓸 때 영국이 잠만 자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독일과 국경을 맞댄 다른 나라들도 잠들어 있었던 건 똑같잖아. 타조처럼 자기 머리통을 모래에 파묻는 식으로 정치를 했으니 어차피 승산이 없었지.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이제 그 사실을 깨달았고. 그러니 영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지금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거지."


 안네는 또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장단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기에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찾을 수 있었다. 자기애라는 뿌리가 단단했기에, 다른 누구와 연을 맺어도 쉽게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긍정적인 마음 가짐은, 은신처에서의 위태롭고 고달픈 삶마저 향후 저널리스트나 작가로서 쓸 수 있는 멋진 자양분으로까지 삼게 했다.   


 "가볍고 경박한 내 천성은 진지한 천성보다 항상 먼저 튀어나오고, 그래서 늘 우위를 차지하지. 단지 절반의 안네에 불과한 이 천성을 밀어내버리려고, 변화시켜보려고, 어떻게든 숨겨보려고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넌 상상도 못할 거야. 그런데 안 돼. 왜 안 되는지는 나도 몰라. (...) 나는 부자가 아니야. 나는 예쁘지도 않아.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영리하지도 않지만, 난 행복해. 앞으로도 행복해지고 싶어. 난 행복한 천성을 타고났고, 인간을 사랑하며, 인간을 의심하지 않아. 다른 모든 사람이 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보고 싶어."

 

  "나는 그동안 자주 울적하기는 했어도 절망에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은신처의 삶을 일정의 위험한 모험으로, 어느 정도는 로맨틱하고 흥미로운 체험으로 받아들이려고 해. 그래서 우리가 겪는 모든 궁핍을 일기에는 마치 재미있는 오락거리인 양 묘사하고 있잖아. (...) 해방이 다가옴을, 자연이 아름다움을, 내 주변의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지를, 그리고 내가 겪는 이 모험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지를 생각해. 그런 내가 절망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


 또한 안네는 자신이 언젠가 여성남성 동등해지는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길 원했는데, 일기에 적힌 상황 인식을 보면 그녀는 이미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


 "직도 해답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의문 중의 하나는, 왜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여자들이 남자보다 훨씬 열등한 치에 있는가 하는 점이야. 누구나 그 점이 잘못되었다고 말들은 해. 하지만 난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겠어. 나는 거대한 불의의 원인을 꼭 찾아내고 싶어. (...) (여성은) 여성의 존엄성을 획득해야 해. 남자들은 어딜 가나 존경의 대상이 되는데 왜 여자들은 거기에 아예 낄 수조차 없는 거지? (...) 여자들의 임무가 아이의 출산이라는 시각은 앞으로 점점 바뀌어갈 것이라고 나는 믿어. 그리고 불평하지 않고 큰소리치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그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가는 여자들에게도 사람들도 그에 걸맞은 경의와 존경심을 표시하리라고 생각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늘 고민하는 내게, 그녀는 심지어 좋은 부모가 되는 법까지 알려줬다.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아버지마저, 자신이 힘들었던 순간 전혀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이유를 냉철하게 분석한 글을 통해서.


 "(아빠는)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려고 했는데 그 손길이 나에게 전혀 와닿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아빠가 잘못된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이야. 아빠는 항상 나를 어린아이로 대했어. 내 문제를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로 여기고 접근을 했던 거지. (...) "네 나이라면 다 겪는 현상이야" 혹은 "다른 여자애들도 다 하는 일이지" 또는 "저절로 다 지나갈 거야"라고 했는데, 나는 이런 말을 듣기 원하지 않았어. 다른 모든 여자애와 똑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지기를 원하지 않았단 말이야. 오직 안네만을 위한, 안네만의 방식으로 다루어지기를 원했지. (...) 한 가지는, 나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으면 나 또한 그에게 마음을 열 수가 없는데, 아빠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아빠와 나를 이어주는 신뢰의 다리에 아예 발을 디딜 수조차 없었던 거야. 아빠는 나를 대하면서 단 한 번도 '나이가 더 많은 아버지'의 시점을 버리지 못했어. 그러니 아빠는 비록 예전에 나와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지금 나의 젊은 친구로서 내 고민을 공유하고 나눌 수는 없는 거지. 아무리 아빠가 그러려고 노력을 한다 해도 말이야." 

 

 그녀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글 예찬론자이기도 했다. 스스로 글을 쓰고 싶어하고 또 그것을 위해 정진할 수 있는 능력을 준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릴 정도였다. 자신의 재능이 신문 기사나 책을 쓰기에 충분하지 않다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글을 쓸 생각이라며 부단히 글을 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도 결국에는 지켜냈다.


 "글을 쓰고 있으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려. 근심은 사라지고 용기가 솟아오르지. 아, 궁금해 죽겠어. 나는 언젠가 정말로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정말로 저널리스트나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란단다! 글로써 내 생각, 내 이상, 내 환상, 뭐든 다 표현할 수가 있으니까.  (...) 나는 남편과 아이 말고도 내가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일 또한 갖고 싶어! 세상 대부분의 사람처럼 헛되이 살다가 헛되이 가고 싶진 않아. 내 주변의 사람들, 동시대에 살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기쁨을 주는 존재, 뭔가 유용한 존재가 되고 싶어. 나는 계속 살고 싶어. 내가 죽은 다음에까지 말이야."

                                                                          

안네가 가족, 지인들과 함께 기거했던 은신처를 고증을 거쳐 가상으로 재구현한 사진.  www.annefrank.org/en/anne-frank/secret-annex/attic/

 

  그녀는 그녀의 바람대로 지금까지 60여 개 언어로 나치의 만행을 포함한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생생히 고발한 저널리스트이자 투지의 기록을 남긴 작가로서 전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토록 오랜 기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숱하게 많겠지만, 자신의 고통 속에서도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아량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스스로는 은신처 창밖으로 얼굴도 못 내미는 삶을 살았지만,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밖으로 나가 홀로 자연을 만나라는 위로의 조언도 남겼다. 내 삶이 팍팍한데, 나보다 더 팍팍한 생활자를 위한 조언이라니. 확실히 그녀는 소녀라는 말보다, 대인배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두려움을 가진 사람, 외롭거나 불행한 사람에게 가장 좋은 처방은 밖으로 나가는 거야. 어디라도 좋으니 밖으로 나가서 완전하게 혼자 있어보는 거야. 하늘과 자연과 신만을 벗할 수 있는 곳으로. 그렇게 할 경우, 오직 그렇게 할 경우에만 이 세상의 본래 모습을 느낄 수가 있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신의 뜻임을 알게 될 테니까. 이런 세상이 있는 한 어떤 경우에도, 어떤 괴로움에도 어디선가 분명 위안이 다가올거야. 자연이야말로 추악하고 괴로운 일들을 잊게 해주는 훌륭한 위안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80년 전 그녀가 건넨 담담한 위로는, 그녀보다 훨씬 더 안락하고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니 당신도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 안네를 꼭 다시 만나보시길. 나 혼자만 다시 보기에는 그녀는 여전히 너무나 멋진 사람이니까.






※ 참고 : 「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 저자, 배수아 번역, 책세상 출판. 2021/11/15.

(다른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에도 완역본이 있다. 어떤 책이든, 가급적 완역본으로 만나보시길 추천드린다.)


※ 참고 : 안네가 살았던 은신처를 간접 체험해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 아래 링크를 누르면, 그녀가 살던 공간이 얼마나 좁고 남루했는지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The Secret Annex | Anne Frank House

https://www.annefrank.org/en/anne-frank/secret-annex/at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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